[에필로그] 2018.06.23.

<에필로그>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나흘이나 흘렀다! 시차 적응이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이 오자마자 미팅 가랴, 국제도서전 참석차 서울까지 올라가랴, 친구들 만나랴 상당히 바빴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까지 챙겨보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이제 좀 시간이 난다.

짐 정리는 이틀에 걸쳐서 끝냈다. 관세까지 물어가며 가져온 와인은 차곡차곡 정리해두고(아까워서 못 마실 것 같다. 내일 백화점 가서 한국 수입 와인 사와야 할 것 같다), 양가에 보내드릴 꿀이나 차는 따로 챙겨놓고. 각종 옷가지는 세탁기가 해결해 주었고, 새로 사 온 식기류나 커피 프레스 같은 것은 식기세척기가 애써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젯밤부터 오늘 사이에 빵 하나를 만들었다! 프랭땅 백화점에서 사 온 복합 깡빠뉴 밀가루(알고보니 소금까지 다 들어있었다!)에 이스트를 (너무 많이) 넣고, 꽤 오랜 시간 발효를 한 끝에 결국 빵 두 덩이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오른쪽 검지 끝에 2도 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급한대로 마데카솔 케어를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 타이핑을 하고 있다)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발효’가 돼서(한국 기온이 너무 높다) 좀 사워한 맛이 난다. 처음에 막 따뜻할 때는 맛이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나니 적당히 짜고 적당히 시큼해서 좋다. 뭔가, 흔치 않은 빵 맛이다. 손을 다쳐서 다음 판을 못 하고 있는데, 며칠 뒤에 다시 시도해봐야지.

뭔가 이 기록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 다만, ‘외국에서 한달 살기’같은 뻔한 얘기 말고. ‘나를 찾아 떠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테마 말고. 얼마전 한 일본인 작가는 ‘여행을 떠나야 나의 검색어가 달라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 냈는데, 꽤 재미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무릎을 탁 치는, 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잘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야마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쩌면, 다녀온 뒤의 달라진 내 삶과 생활패턴 같은 것이 더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파리에서의 지난 한 달은, 나를 찾는다거나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의 차원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이를 갈고 떠났던 그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멋있게 살아보는 게 내 목표였다. 나를 거세게 차 버린 못된 전 애인에게 복수하듯 미녀가 돼서 나타나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본 적은 없다만…) 후회되는 순간들을, 시간이 흘러 다시 만회해 보는 것. 그렇게 내 한을 하나씩 하나씩 녹여가는 것은, 이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만한 일인 것도 같다. 뭐, 내가 원한이 있어서 다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그때로 돌아가기보단, 그때의 그 공간에서 잘 사는 모습을 실현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잘 있다 왔다. 다음에 또 간다면, 또 다르게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하루] 2018.06.18.

대만 타이페이 공항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8시간 정도 더 가야한다. 에바항공은 유독 자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잘 들어주는 모양인지, 나 또한 결국 자리를 한 번 바꾸어 주고야 말았다. 사실 전에 앉았던 자리는 조금 덥고, 뒷사람이 좌석을 발로 많이 차서 은근히 불편했는데, 나로선 차분하게 작업할 공간을 찾은 셈이니 괜찮다. 기내식도 한국에서 올 때보다 훨씬 낫다. 해산물 특별식을 시켰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나오기도 한다. 자리가 안쪽이라 화장실에 자주 가기 힘들어 음료 주문을 충분히 못 하는 것은 좀 아쉽다.

10년 전 한국에 돌아가는 길은 눈물이 났었다. 오늘은, 아주 기분이 좋다. 사실 캐리어가 6kg이나 오버되는 바람에 핸드캐리로 짐을 잔뜩 빼야 했고, 그렇게 카운터를 오락가락 세 번이나 했는데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잘 웃고, 즐겁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의 지난 한 달 파리 생활이 나름대로 만족스러워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집도 가족도 그립기도 하고 말이다. 음, 어쩌면 어젯밤에 와인을 그렇게 마시고도 기껏 3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조금 떠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언니가 사준 les bleus 옷을 입고 한국까지 왔다. 코 밑엔 며칠 된 뾰루지.

소감을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잘 왔었다. 아주 잘 살고 간다. 눈 감고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있던 곳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만큼 많이 다녔다. 우리나라로 치면 7층인 원형 계단을 올라 왼쪽 두 번째 방. 문을 열면 창 밖으로 키 큰 나무의 정수리만 보이는 곳. 창문을 열면 나뭇잎 부딪는 소리가 근처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그곳에서 나는 소파베드 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책상 의자를 붙인 채 달그락 거리는 소리는 내가며, 딱딱한 곳에 발 뒤꿈치를 붙이고 새우잠을 잤다. 파리의 오뉴월은 참 춥고 참 뜨거워서, 창문을 닫고도 이불을 덮는 날이 있었고, 창문을 열고 모기에게 뜯기는 날도 있었다. 방의 전구는 나갔고, 몇 개 안 남은 불빛에 의지하며 신문을 읽고, 기록 작업을 했다. 눈이 조금 나빠진 것 같다.

지난 한 달에 대해 통계를 내 보자면,

– 모두 29일치의 신문을 구입하거나 구해서 봤다.

– 정확히 2권의 신문 스크랩북을 완성했다. 노트 마지막 장까지 다 썼다.

– 11곳의 미술관에 갔다. 작은 갤러리들은 너무 많이 가서 수를 따지기가 어렵다.

– 2번의 공연을 갔다. 피아노 리사이틀과 대만 현대무용이었다.

– 1번의 대형 컨퍼런스에 갔다. (VIVATECH)

– 1번의 대형 스포츠 행사 직관을 갔다. (Roland Garros)

– 각기 다른 6 그룹(또는 개인)의 지인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 모두 6점의 책을 샀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은 1,2권으로 돼 있지만 여기선 한 점으로 친다. 잡지는 제외.) 두 점은 영어책, 네 점은 불어 원서다.

– 방에서 한 달 동안 9병의 와인을 먹었다. 그중 절반은 하프보틀, 절반은 750ml다.

– 11곳의 불랑제리에서 빵을 먹어봤다.

– 가장 많이 걸은 날은 6월 15일 금요일이다. Fitbit 측정치로 2만5,582보 걸었다.

– 하루 평균 11577보를 걸었다. (아이폰 도보수와 fitbit 측정치 중 큰 값들에 대해 평균)

– 표준편차는 아이폰이 더 작다. 아무래도 핏빗은 차는 날도 있고 가끔 충전하느라 놓고 갈 때도 있으니.

– Fitbit으로 측정된 20일에 대해, 하루 평균 406.3분, 즉 6시간 46분을 잤다.

– 가장 자주 산 식료품(물, 와인 제외)은 마늘이다.

– 제일 맛있었던 물은 Mont Roucous다. Languedoc 지역 물이라고 한다.

– 여섯 종의 치즈를 사 먹었다.

– 한 번의 감기와 한 번의 발톱부상을 겪었다.

– 시내 교통비로 44.7유로를 썼다(공항왕복 제외). 꺄르네(10장권)를 세 번 끊어서 남은 표는 동생 주고 왔다.

– 신발 두 켤레를 버리고 왔다. 닳아버려서.

– 살은 ?kg 찐 것으로 추정된다. 체중계가 없어서 전혀 알 수가 없다만 찐 것은 확실하다. (얼굴이 동그래졌다!)

– 집에 돌아가는 길 캐리어 무게는 36.4kg이다. 열심히 기내용 짐으로 덜어냈다.

이정도면 꽤 바람직하게 살다 가는 것 같다. 내가봐도 참 부지런하다. 어제 고모부 말씀대로 신랑과 같이 오거나, 혹은 신랑이 나 있는 동안 잠깐이라도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오게 될 것 같다. 마음같아선 박사과정 중에 이쪽으로 비지팅 스칼라나 혹은 박사후과정을 여기서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여행은 지나가고 나면 사실 많이 잊혀지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꽤 기억이 많이 남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기록을 거의 매일같이 열심히 했다. 나는 이 한 달을 나에게 투자했다. 하루하루를 값지게 사는 법을 다시금 익혔다. 집에 가면 바게트도 직접 굽고, 끼쉬도 해 먹고, 신선한 야채를 넣은 부리또도 해 먹을 것이다. Bien d’être, 즉 ‘잘 사는 것’이 이 곳에서도 화두다. 미국과 좀 톤은 다르지만, 유기농 음식을 챙겨먹고, 비싼 것보다는 좋은 것을 따지며, 나의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배워간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어가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

파리는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살라고.

[하루] 2018.06.17.

날이 밝았다. 며칠째 아침에 7시면 깬다. 떠날 날이 돼서 그런지 잠자는 시간이 아까운 걸 몸이 느끼나 보다. 그래서 평균 수면 시간이 다섯시간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파리 마지막 날인지라 좀 고민을 해 봤다. 파리 식물원에 갈까, 티렉스를 보러 자연사박물관에 가볼까, 갔던 곳에서 브런치를 우아하게 즐겨볼까, 피에르 에르메에 가서 마카롱을 사 갈까 등등. 일단 여섯시 좀 넘어서 고모 댁에 가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 한 달을 좀 차분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쌓아둔 사흘치 르몽드를 스크랩하고, 기록을 정리하고, 최근 ‘입덕’한 마크롱 기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있다.

점심은 집 아래 피자집으로 갈 생각이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 한 번도 그곳에서 끼니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다… 까지 쓴 뒤에 내려갔는데, 피자집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이 곳에서 한 끼를 못 하고 간다. 아쉽지만, 오히려 그런 의무감에서 자유로울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가끔 그곳 종업원들이 나에게 봉쥬르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어 주었지만 말이다.

짐 싸다 지친 나…

그렇게 맥도널드에 갔다.

앵발리드에서 열린 파티에서 한 젊은 사업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파리의 맥도널드를 안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유럽에서 매출이 가장 높다! 최대한 몸에 좋게 하는 유기농이다!” 그래서 솔직히 궁금은 했었다. 문 닫은 피자집대신 15구의 맥도널드에 갔다. 유기농은 무슨. 그냥 햄버거다. 파리에 관광객이 하도 많은 데다 외식 물가가 워낙 비싸니 유럽에서 제일 잘 나가나보다 싶었다. 그래도 솔직히 맛은 있었다. 햄버거는 무조건 맛있는데, 유독 더 맛있던 것 같다. 이곳의 스페셜 오퍼로 골든치즈버거 세트를 시켰더니 8.5유로 정도 나왔다.

디저트로 바닐라 선데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그게 녹을까봐 안절부절 못 하며 그걸 들고 빵집에 들른 뒤 앵발리드 공원까지 나갔다. 아이들 놀이터 앞에서 먹고 있었더니, 미국인 가족이 나 보고 예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She’s Pretty라고 했다, 분명히) 그리고는 아이들의 아빠는 내게 그 버거를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다. 친절하게 알려주었는데 아이들이 “그냥 안 먹을래”라고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그 아빠는 어깨를 으쓱해했다. 내 보기엔 그 본인이 먹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종일 짐을 쌌다. 이놈의 짐은 싸고 또 싸도 줄지를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한 달을 사는 동안 짐이 늘었다. 이미 한국으로 7kg이나 보냈는데도 상당한 것을 보니, 몇 개는 버리고 가야겠다. (후에 첨가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내가 산 투명한 보울과 방에서 쓰던 모노프리 컵은 모두 두고 왔다) 늘 그렇듯 배낭이 납작하게 각이 잡혀있는 스타일이라 들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얼 내가 그리 꾸려가는가 싶었는데, 무거운 녀석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깜빠뉴 밀가루 (복합) 1kg

– 유기농 프랑스 밀가루 65T 1kg

– 와인 무려 4병 (아페레티프 1병, 레드-화이트-디저트 각 1병씩)

– 꿀 3병

– 유기농 올리브 오일 500ml 1병

– 이탈리아 리조또 쌀 500g

이것만 해도 벌써 10kg은 될 것 같다. 무게가 추가로 나오면 그냥 돈을 내고 부쳐야겠다. (후에 추가하는 말이지만, 여기는 비용 추가가 안 된다. 그저 30kg로 맞춰야 한다. 다행히 32kg까지는 HEAVY 태그를 달고 허용해 주었다) 짐을 들고 내려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기는 하다. (후에 다시 추가하는 말이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잘 내렸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 후…

독일이 멕시코에게 완전히 ‘말려’ 1대 0으로 지는 꽤 충격적인 월드컵 경기를 본 뒤 서둘러 고모댁으로 갔다. 고모와 석희는 몇 주 전에 만났지만, 고모부와 수아는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수아는 너무 훌쩍 커버렸고, 고모부는 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 고모부를 보고 있자니, 뵙고 있는데도 그리움이 밀려왔다! 수아는 정말 어른 여자가 다 돼서 뭔가 든든했다. 고모는 손이 많이 갈 것만 같은 부리또 재료를 잔뜩 준비하셨는데, 멕시코가 축구 이긴 걸 알아서 하신 건 아니었다. 종종 채소가 먹고 싶을 때 이렇게 해 드신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해 먹어야지. 생각보다 할 만 할 것 같다.

고모댁이 Porte-de-vanve라는 것인데,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정도 걸린다. 파리 2존의 교외지역으로, 일산이나 분당쯤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 방브 벼룩시장도 아주 유 명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여튼, 오랜만에 가니, 정말 길을 못 찾겠더라.

가족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하니 좋았다. 수아의 친구(영어권)가 있는데도 내내 한글을 써서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방언 터지듯 가족들끼리 한국말을 늘어놓는 것이 좋았다. 직관적이고, 감정도 그대로 전달이 된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것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가족들이 그럭저럭 자기 식대로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아서 좋았다. 난시가 심해 밤 운전이 불안한데도, 고모는 굳이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공항에 데려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말이다! 참고로 우버를 타면 40~50유로로 공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와서 참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추임새 같은 것을 많이 들었다. ‘압!’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톤도 높다. 내가 그걸 따라했더니 다들 식탁에서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하이톤으로 했기 때문이다, 마치 강아지처럼. 아무튼, 우압! 이런 느낌인데, 영어로 치면 Oops 같은 추임새란다. 뭐 물건을 살짝 떨군다거나, 그런 때에 쓴다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바게트 쉐프도 그렇고 마켓에서의 점원들도 그랬다. 괜히 내 입에 붙어서, 나도 그 표현을 쓰고 있다. 추임새는 참 잘 옮는다. 큰일이다. 한국 가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잠을 잘 수 없는 밤이다. 남은 코르시카 와인은 다 먹었다. 부르고뉴는 절반 가까이를 버려야할 것 같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밤바람도, 귓가를 스치는 나뭇잎 소리도 다 그리울 것이다. 실컷 감상하고 있다.

내가 늘 신문을 사던 집 앞 서점.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와서 서운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주유소. 갈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략 리터당 우리돈으로 2000원 정도 했다. 

6월 중순, 밤 9시 반쯤의 샹젤리제. 7-8월에 가면 11시에 이런 풍경이다. 가운데서 찍으려던 건 아니고, 단지 신호가 짧아서 중간에 걸려 있었다;

파리의 공유 전기차. 그런데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파리 시장이 이걸 없애려고 한단다. 그래서 언론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내 친구 말에 따르면 너무나도 편하다고 하는데, 막상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은근 사용할 때 까다롭다고도 했다.

알렉상드르3세교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저씨. 이런 너무나도 흔한 풍경.

내가 있었던, 몹시 안전하고 (비싸고) 친근했던 동네. 몹시 그리워할 구역.

[하루] 2018.06.16.

핏빗에 기록된 공식 걸음수가 23,938보다. 16.42km를 걸었고, 2,731kcal를 소모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정말 무릎 뒤가 뻐근했다.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많이 떠든 날이었다.

러시아월드컵 프랑스전이 열렸다. 그간 상당히 기대했던 게임이라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프랑스 축구협회에서 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에펠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는 삼색기를 페인팅했다. 목덜미에는 파리생제르망의 음바페 이름이 새겨진 스카프를 둘렀다. 15구에 있는 Café Primerose 라는 곳에서 지혜언니와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낮 12시부터 게임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11시 40분쯤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 뒤로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우리는 참 적당한 때에 잘 와서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좋아했다.

 

만국기가 달린 천막 아래로, TV는 앞뒤에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틈틈이 축구도 볼 수 있게끔 설치가 돼 있던 것이다. 대화를 중요시하는(a.k.a.말이 많은) 프랑스스러움이 이런 데서도 묻어났다. 나만 너무 응원응원 느낌인가 싶어서 움츠릴때 즈음, 프랑스 국대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몸에 휘감고, 얼굴에 나보다 길게 삼색기 페인팅을 하고- 뭐 이런 사람들로 카페가 가득 찼다. 이번에 파리시에서 테러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리 응원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래서 카페들이 이렇게 가득 찼나 싶기도. 뭐 하긴, 원래도 카페나 브라세리에서 본다고도 했었다. 스포츠펍이라는 게 많지 않은 나라고, 우리처럼 호프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하… 이 친구들도 참 맛있었다..!!!

샤르도네를 마시고, 오늘의 ‘특별’ 칵테일을 홀짝이며, 연어 타르타르와 비프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꼬박 챙겨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축구 경기를 봤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워낙 호주가 잘 뛰었다. 지난 평가전때도 느낀거지만, 프랑스 아트사커는 ‘수비전’ 앞에서는 좀 시들시들하다. 호주 입장에선 워낙 강팀을 만났으니 당연히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치게 되는데, 그래서 하마터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뻔 했다. 다행히 막판에 포그바가 한 골을 넣어 2대 1로 프랑스가 ‘간신히’ 1승을 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곳의 응원 분위기였다. 내 뒤로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대여섯이 둘러앉아 부모님들과 함께 축구를 봤는데, 그렇게 막 시끄럽게 들떠있거나 하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도 조용조용히 서로 축구 얘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아쉬운 순간이나, 혹은 골이 들어가는 순간, 패널티킥이 성공하는 순간 등에는 함성, 환호성, 비명, 고함 같은 것이 짧고 강렬하게 터졌다. 다들 정말 축구에 집중을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음식을 천천히 즐겼다. 차분하게, 그러면서 즐겁게 관전. 그게 참 좋았다.

홈피에 올라간 우리 모습…ㅎㅎ

카페 사장은 나와 언니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하프타임때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프랑스인 여자가 와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사진을 찍어갔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외국인들 눈에는 내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쟤는 왜 프랑스를 응원하나’싶었을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한국에 가면 한국을 (어찌됐든) 응원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프랑스 경기는 계속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 어린 선수들이(평균 만 26.4세) 어서 적응을 해서 정말 일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 동안 계속 이들 기사를 접하고, 미디어를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만. 지혜언니가 FFF에서 무려 ‘Les Bleus’ 티셔츠까지 선물로 사줬다! 흐으…고마워.

경기가 끝나니 참으로 알딸딸했다(그게, 칵테일에 보드카가 좀 들어가서…). 우리 둘 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에펠탑을 지나, 앵발리드를 뒤로 하고, 세느강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세로 발을 옮겼다.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던 작품들이 다들 잘 있는지,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관전은 해 줘야 하니 말이다. 이번 파리 체류 기간동안 못 갈 줄 알았던 곳을, 이렇게 언니와 함께 오게 됐다. 예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쇠라, 시슬레, 피사로의 작품이 요즘은 더 마음에 든다. 인상주의 중심으로 1층과 5층만 빠르게 둘러봤는데도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다섯시 반에 문 닫을 때까지 꽉 채워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나온 것이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인데,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지드래곤이 좋아할 맛이다. ㅎㅎ

튈르리 정원을 가로질러 지드래곤이 자주 간다는 루브르 뒤편 일본우동집(sanukiya)으로 갔다가, 오페라를 지나 엘리제 궁 앞에 다다랐다. 그래, 진정한 덕후라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그의 사는 곳은 보고 가 줘야지.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의 덕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너무 입덕이라는 것을 자주해서…) 샹젤리제 근방 카페에서 ‘밤 9시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내가 주장하는 바 : 여기는 밤에 에스프레소 마셔도 잠이 잘 온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며 걸었다. 15구의 언니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Dupleix 역을 지나 너리 위 철길을 따라 내 방으로 돌아왔다. 파리의 낮과 밤을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언니와 헤어지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우리 또 만나. 서울에서 보자. 아니면 내가 독일로 갈게. 괜히 길에서 서성이며 계속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마크롱은 안녕하신지.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며 살았다. 너무 잘 살다 가서 미안할 정도로. 그래도 어느정도 성공은 한 것 같다. 10년 만에 다시 와서 멋있게 있다 갈 것이라는 내 다짐이, 얼마만큼은 지켜진 것 같다.

[레시피] 2018.06.15 – 브로콜리 뇨끼

브로콜리와 회향이 생각보다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언니와 함께 남은 음식도 해치울 겸 저녁은 내 방에서 해결했다. 뇨끼 남은 것과 브로콜리, 회향의 조화가 어마어마했다.

브로콜리 뇨끼

재료 : 브로콜리 하나, 회향 작은거 하나, 뇨끼 한 줌, 양송이 두 알, 생크림 조금, 소금, 후추

레시피 : 브로콜리와 회향, 양송이를 한 입에 먹기 좋을 정도로 사각사각 썬다. 올리브유에 충분히 볶다보면 재료들의 향이 풍부하게 올라온다! 이후 뇨끼를 넣어 2~3분 정도 볶아준다. 뇨끼가 ‘알 덴테’의 느낌이 되면 생크림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졸여준다. 끝!

포인트 : 채소들을 조화롭게 잘 볶아줘야 풍미가 더 잘 사는 것 같다. 엄청 맛있다. 핵꿀맛.

그리고 이 친구들은 정말 절-대로 못 잊을 것 같다…

[하루] 2018.06.15.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최고의 경기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매치가 열려서 지혜언니와 방에서 1664 병맥을 비우며 관전했는데, 스페인의 어마어마한 공격력과 호날두의 원맨쇼에 감탄했다. 뭔가, 결승전을 미리 본 듯한 기분이다. 최고의 경기를 보고, 반짝이는 에펠탑을 본 밤이다.

이 슛이 정말 최고였다. 호날두의 멋진 프리킥! 세번째 골!

대학동기가 독일 본에서 건너왔다. 나의 마지막 파리는 그녀와 함께 보낸다. 언니는 낮에 도착했고, 내가 사는 건물 3층 쯤에서 몇 년만에 재회했으며, 웰컴 드링크로 코르시카 와인을 마시며 서로 너무나 좋아라 했다. 전날 내가 갔던 프랑스 음식점에 갔지만 시간이 늦어 식사가 힘들었고, 대신 일본인들이 많이 간다는 몽파르나스 타워 옆 크레페 집에 갔다. 푸짐한 샐러드와 엄청 큰 이곳의 트래디셔널 크레페는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시드르는 크게 달지 않으면서도 풍미가 살아있었다. 언니도 여기에 수년 전에 6개월쯤 살았다고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파리를 이야기하며, 그리고 내가 첫날에 느꼈을 그 감동을 그대로 실감하고 있는 언니를 보며, 문득 떠날 날이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지나 큰 길을 걸어 생제르망 성당까지 갔다. 거기에서 또 골목을 지나 센느강으로 나아갔다. 퐁 뇌프를 건너 시테섬을 돌며 꽃시장을 지났는데 한참 철인 라벤더의 향이 무척 진했다. 작고 색이 진한 꽃들은 없던 ‘식물 물욕’까지 일으켰다. 문익점처럼 씨앗을 숨겨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풍토가 안 맞아 자라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노틀담 성당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고, 문득 몇 주 전, 그러니까 나도 파리에 막 적응하던 시절에 오셨던 회사 선배와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 여길 더 잘 알았더라면, 더 좋은 곳에 모셔가서 더 맛있는 것을 맛보게 해드리고 더 나이스하게 돌아다녔을텐데 싶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온통 프랑스 국기 색으로 알록달록한 hotel de ville 앞을 지났다. 하얀 천막이 여럿 있길래, 당연히 여기서 내일 축구 응원이 있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헌혈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일요일까지 진행된다고 써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번 월드컵에 대해 테러 위험이 아주 높아진 만큼 도시에 큰 스크린을 걸어놓고 하는 응원전은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바에 가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Place d’italie 근처에 120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엄청 큰 식당이 있는데(BigMama라고 하는) 거기를 갈까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세계유산으로 지정 직전인 브라세리에 가서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날씨가 정말 쨍-하고 갰다. 계속 해가 들어서 일부러 그늘로 다녀야할 정도로. 목이 타는 우리는, 마레 지구의 꽤 코지한 카페에 우연히 들어갔다. 일본인 내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바리스타가 삼색기를 얼굴에 그려넣고 커피를 주문받고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칵테일 캔에 커피와 얼음을 넣어 쉐이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서빙된 아메리카노는 아주 크리미했다! 그래, 저 칵테일 쉐이커를 사가야 해, 라는 물욕이 또 들었다. (일명 ‘샤케라토’라는 것이 바로 이 쉐이킹을 한 아메리카노라고 한다. 샤케가 shake라고…) 흠, 내일 한 번 지나다니다가 봐야겠다.

곧 축제가 시작되는 이곳 마레지구!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숍들도 가 봤다. Merci라고 하는 편집숍은 마치 홍대 앞, 가로수길의 매장을 풀어놓은 듯 발랄한 디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한국인도 많았다) 많이 본 듯한 Merci 마크의 에코백과 팔찌가 시그니처처럼 매달려 있었고, 하필 ‘여름’ 컨셉이라 바닥에 흰 모래까지 깔아 두었다. 어린 한국 어린이가 큰 소리로 울어대는 것을 들으며, 아, 여기 정말 유명한 숍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지만, 막상 그들의 드높은 취향은 인정한다. 결국 신랑 신발 하나를 사 가지고 나왔다.

이후 르봉마르쉐에서 타르틴을 올려먹을 작은 팬케익과 1664 병맥주 여섯병(어허, 오해 마시라. 250ml 들이 미니 병맥이다!), 그리고 이곳 멜론을 사가지고 나왔다. 멜론은 어찌 골라야할지 몰라 언니와 서로 과일 냄새를 이야기하며, 물컹한 정도를 토론하며 사가지고 왔는데, 그 덕인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멜론을 골라왔다. 새로 산 큰 중식도를 트렁크에서 꺼내야 하나 싶었는데, 내가 가진 작은 칼이 쑥 들어갈 정도로 아주 부드럽게 잘 익은 녀석이었다. 여기에 전날 산 프로슈토를 얹어 먹었는데, 또 그 맛이 환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멜론이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 이제야 맛보게 됐다는 게 아쉬울 정도. 남은 날 동안 부지런히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심 내 봐야 하루에 반 통도 못 먹겠지만)

함께 맥주를 마시며, 캐비어 타르틴을 얹어 먹으며, 빵을 베어 물고 남은 뇨끼를 해치우며, 틈틈이 축구 화면을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언니도 나도 연구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여기에 얽힌 숱한 비리와 문제점과 시스템의 한계를 한참 이야기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느끼게 되는 것들을 한참 들었고, 사람의 관계와 매력적인 캐릭터, 힘들었던 우리의 이십대 젊은 날 같은 것을 하나씩 짚었다. 호날두에 뒤늦게 ‘입덕’한 언니는 경기를 정말 즐겁게 봤다. 다행이었다, 원래 축구를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려 독일에 사는 언니에게 축구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게 돼서, 이 재밌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게 돼서 정말 보람찼다. (‘보람’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써 본다)

집 근처에 FFF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형석오빠 고마워요…ㅎㅎㅎ

유니폼 뒤에는 마킹도 해주는데, 유니폼 디자인이 넘나 구려서…… ㅠ_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모자다. 결국 손에 든 것을 샀다.

이건 주변 모노프리에서 파는 아이템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구비하였다…

벌써부터 설렌다. 사실 별 이변이 예상된다거나하는 빅매치는 아니겠지만, 프랑스전을 프랑스에서 보게 돼 너무 좋다. 아침에는 7kg어치 택배를 한국으로 보내고(37유로 정도 들었다! 우체국보다 10유로 넘게 저렴하다. 한인택배 최고!) 한인마트에서 언니에게 줄 불닭볶음면 한 봉지를 산 뒤(1유로에 할인행사중이었다!), 바로 FFF 프랑스 축구 협회로 달려갔다. (그 전에 당 충전을 위해 아침식사겸 근처 베이커리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위스식 초콜릿 페스츄리와 카페 한 잔이면 세상 행복한 파리생활.

결정장애가 올 뻔 했지만, 침착하게 하나만 자알 골랐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챙이 납작한 모자를 사고(은근 어울리는 것 같다. 좀 젊어 보이는 듯도) FFF를 거울에 비추면 ㅋㅋㅋ가 된다는 것에 자꾸 재미있어 하면서 또다시 이렇게 모자 콜렉트를 진행했다. 티셔츠가 조금만 더 예뻤어도 또 살 뻔 했다. 다행히 이곳 디자인은 난해하고, 투박하다. 건너 모노프리에 가서 구매대행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티를 몇 팩 샀다. 서점 아저씨가 서비스로 줘서 참 맛있게 먹었던 초콜릿도 1+1 묶음 두 팩을 샀다. (그러고보니 이거 할인 쿠폰이 있는데… 더 사야 하나 싶다) 응원에 필요한 페이스 페인팅 마커까지 샀으니, 뭐 이걸로 응원 준비는 끝났다. 이제 경기만 하면 된다!

참 많이 그리울, 7-15구 사이 풍경. 나는 이 철길을 따라 방향을 알았다.

신발이 참 많이 닳아서, 버리고 왔다.

그리고 한인마트에는 없는 게 없다.

[레시피] 2018.06.14 – 캐비어 타르틴을 올린 보리빵과 이탈리안 프로슈토를 올린 포알란

사실 오늘은 레시피라고 할 것이 없긴 하다. 대신 이곳 재료를 ‘날로 먹은’ 것을 좀 남기고 싶어서 레시피로 올린다. 뭐, 이것도 일종의 레시피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전식을 본식처럼 먹었는지 알려드리고, 또 나도 나중에 기억하고자.

여기 와서 내가 참 좋아하게 된 것(원래도 좋아했지만)이 바로 타르틴(tartine)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그 tartine은 타르트를 뜻하고, 여기의 타르틴은 얇은 밀가루 반죽빵 위에 올려먹는 각종 토핑을 뜻한다. 푸아그라도 일종의 타르틴인데, 사실 몹시 좋아하지만, 이제는 거위가 불쌍해서 더이상 먹지 않는다. (이러고 오늘은 캐비어를 먹었다… 샥스핀은 아니니까…)

캐비어 타르틴을 올린 보리빵과 이탈리안 프로슈토를 올린 포알란

재료 : Poilâne 빵, 얇은 보리빵, 이탈리안 프로슈토, 캐비어 타르틴, 치즈 약간

레시피 : 그냥 다 올려 먹는다.

포인트 : 이거 먹으려면 프랑스에 살아야 한다. 한국엔 없다.

맛 : 짜다. 그리고 계속 입에 맴돈다. 또 먹고 싶다. 은근 양이 많아서 배부르다.

그리고 와인 : Clos Poggiale 2016, Corse, appelation d’origine protegée, Jean-François Renucci

오늘은 어제 산 코르시카 화이트 와인을 뜯었다! 이 와인은 아주 스파이시하다. 그러니까, 약간 탄산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상한 맛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이래봬도 상한 와인 감별사다. 진짜 기가막히게 잘 알아맞힌다) 아주 신선한 가운데 톡 쏘는 맛이 있어서 참 독특하다. 약간 대낮에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일 대학 동기가 여기 오면 웰컴 드링크로 제공할 예정이다. (후후)

포도는 Vermentino라는 종이다. 아무래도 코르시카가 이탈리아쪽이다보니 포도 이름도 이렇다. 아, 참고로 AOC와 AOP의 차이가 좀 있는데, 전자는 Appelation d’Origine Controlée, 후자는 Appelation d’Origine Protégée 다. 둘다 맛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와인 외 식료품에 대해서는 AOP가 더 많은 편이다. 찾아보니까 AOC는 프랑스에서만 주로 쓰고 있고, AOP는 유럽 전체에서 통일시킨 마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마크에 대해서도 급이 참 여러가지다. Mis en bouteille부터 Appelation Bordeaux Controlée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다 배웠지만 지금은 잊어버렸고, 개인적으로는 아펠라시옹 ‘지역’ 콩트롤레 와인을 주로 찾는 편이다.

[하루] 2018.06.14.

아무래도 짐을 부쳐야겠다.

사실 여기 와서 뭘 많이 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올 때부터 23kg쯤 되는 가방을 들고 왔다. 돌아가는 길은 늘 그렇듯 양 손이 더 무거운 법.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고생이 극대화된다. 고로, 오늘은 우체국에 들러 가격을 알아봤고, 5kg짜리 국제 소포 박스 하나가 46유로라는 것을 확인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오면서 참 여러모로 합리화를 했다. 내가 고생하는 비용보다 낫지, 지구를 위해 내가 여기에 버리고 가는 것보다 낫잖아? 등등. 문득 그 돈이면 내가 좋아하는 뭐뭐뭐를 사거나 먹거나 할 수 있을텐데 등등의 복합적인 감정.

그러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 보니, 6kg까지 33유로에 부칠 수 있는 한인택배가 있다고 한다! 얼마 차이 안 나는 것 같아보이지만, 이정도면 많이 나는 것이다. 마침 매장도 집 옆이다. 무게 나가는 것들(어차피 안 볼 거면서 들고 온 책들도 짐이 됐다)을 꾸려서 내일 아침 9시부터 부지런히 들러봐야겠다. 뭔가 은근히 고민되던 것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내일부턴 대학 동기가 독일에서 이쪽으로 건너온다. 사실 온전히 홀로 파리를 즐기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고모 가족들과 식사 약속이 잡혀있다) 이 날을 어찌 보낼까 고민을 좀 했다. 오르세 야간 개장(목요일엔 9유로에 들어갈 수 있다)을 갈까, 어디 펍에서 러시아 월드컵을 감상할까, 다시 라파예트 백화점에 도전해 볼까 하다가 그저 발이 가는 대로 옮겼다. 아, 사실은 위장과 전두엽이 반응하는 곳으로 먼저 갔다.

몽파르나스 타워 인근, 파스퇴르 지역에 있는 한 작은 프랑스 식당에 갔다. 전날 구글맵으로 미리 찾아본 곳인데, 일단 한국인의 평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평이 있는 곳은 잘 안 간다. 한국인이 너무 많이 와서….) 점심 식사를 전식+본식 또는 본식+후식 해서 24유로에 파는 곳이다.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 전식으로는 렌탈콩 샐러드 위에 얹은 새우요리를 먹었고, 본식으로는 흰살 생선이 들어간 바삭한 타코롤 같은 것을 먹었다.

정말 훌륭했다. 새우는 아주 따뜻하면서도 육즙이 살아있는데다 신선하고 쫄깃했다. 렌탈콩은 적당히 새콤하고 짭짤했다. 흰살생선 롤은 정말 바삭하고, 생선이 아주 좋았다. 그 안에 들어있는 채소들도 조화로웠다. 한국에 가서 한 번 해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과 호박, 그리고 향이 강한 허브를 오래 데워주고, 이걸 밀가루로 만든 판판한 반죽에 펴 바른 뒤, 버터도 살짝 발라주고, 흰살 생선을 얹어 말아주면 될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시크릿 소스가 들어갈텐데, 머스타드나 레몬이면 충분할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한 만화가의 전시장인데, 아주 마음에 들어서 포스터 한 장을 사 왔다.

여기에서 조금만 가면 부르델(Bourdelle) 미술관이 있다. 이 양반이 누구냐면, 로댕과 같은 시대를 산 조각가다. 그렇다고 비운의 조각가라는 뜻이 아니다. 둘은 절친이었고, 사제지간이었다. 부르델이 로댕의 조수로 일을 했는데, 로댕이 꽤 키워준 모양인지, 아님 여유를 준 모양인지, 자신의 아틀리에까지 만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대신 그의 조각은 뭔가 전략적으로 입지를 달리 한 느낌이랄까. 로댕이 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조각했다면, 부르델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인물들을 다소 많이 했다. (로댕이 죽은 뒤로는 살아있는 사람도 많이 한 것 같긴 하다. 예를 들어 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초상을 이렇게 완벽하게 한 작품은 처음이라며 매우 만족해하며 조각 뒤편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래선지 선이 아주 둥글고, 부드러운 편이다. 로댕 영향권에 있었으면서도 까미유 끌로델이 다르고, 부르델이 다르다.

아나톨 프랑스 본인이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는 본인의 조각상

부르델의 사부이자 동료였던 로댕 조각상 옆에서. 부르델이 본 로댕과, 로댕 본인이 본 부르델은 꽤 다른 것 같다…

아무튼 이곳 미술관은 심지어 무료 입장이다. 내가 머무른 1시간 45분동안 각기 다른 어린이 무리가 두 팀이나 왔다. 참고로 부르델은 샹젤리제 인근에 있는 떼아트르 드 샹젤리제(샹젤리제 극장) 디자인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댄스, 코미디, 노래,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 한 가지 등 모두 네 가지를 극장 벽에 부조로 떠서 새겨넣었다. 극장에 들어가본 게 5년 전인데, 내부가 참 화려했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그 내부를 바로 부르델이 디자인한 것이다. 에펠탑 앞에 있는 구스타브 에펠의 조각상도 부르델이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에펠은 에펠탑 뿐 아니라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파리에도 ‘원조’인 미니어처가 있다)을 설계하기도 했다.

또한 이 미술관은 실제 부르델이 머물며(다시말해 120년도 넘은 곳이라는 뜻이다) 직접 작업을 하던 스튜디오이자 살롱이었다. 나무냄새가 물씬 풍기면서, 정말 오래된 건물 느낌이 팍팍 났다. 그의 작업실 너머 방에서는 청동조각상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비디오가 나왔다. 돌 같은 재질로 만든 조각에 본을 떠서 물라쥬(틀에 액체화된 금속을 흘려보내 틀을 뜨는 것)를 하는 것인데, 이게 이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할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본을 뜨고, 꺼내서 또 뭔가 바르고, 입히는 작업을 계속 한다. 나중에 진짜 청동을 입히는데, 그 과정도 어마무시하다. 정말 수천 도가 넘을 것 같은 불에서 인간이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기계화가 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반쯤 완성한 조각을 아주 섬세하게 다듬어줘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하나같이 아주 조심스러워서, 정말 예술품을 복원하는 사람들, 판을 뜨는 사람들 모두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직업적 자부심이 엄청날 거란 생각도 들었고. 그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요즘 여기서도 핫한 북한 코너.ㅎㅎ

진심으로 사고 싶었던 음바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집으로 사들고 온 책. 생각보다 상당히 재밌다!

미술관에서 나와서는, 몽파르나스 타워 인근을 떠돌았다. 자라 매장에 들어가 살 게 없는 걸 확인하고 나왔다. 이번에 와서 한 번도 안 들어갔던 fnac(전자제품 및 도서 판매점)에도 들어가 마크롱과 브리지트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책 두 권을 샀다. 책이 가볍고 작고 저렴해서 너무 좋다(여기서는 ‘주머니본’이라고 한다. 내 손보다 조금 큰 책이다. 한권에 7000~9000원 정도 한다). TV가격도 이곳이 유독 저렴한 것 같았다. (유로임에도 불구하고!) 삼성TV(55인치)나 LG 고급TV(65인치)가 200만원도 안 한다. H&M에 들어가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 얇은 가디건을 샀다. 신랑의 공연용 티셔츠도 두 벌 샀다. 이곳의 앱을 깔자, 10% ‘웰컴’ 할인 쿠폰이 나왔다. 이곳의 팁 중 하나가 이거다. 정확한 주소까지는 필요도 없고, 파리의 번짓수만 있으면(예를 들어 나는 7구라 75007이다) 웬만한 상점의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르 봉 마르쉐도 그렇고, H&M도 그렇고. 이걸 가지고 할인 쿠폰을 다운받거나 포인트를 쌓을 수도 있다.

Poilâne 이라는, 이곳의 유명하다는 빵집도 근방이라 찾아갔다. Pain traditionel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이토록 불친절한 곳은 처음이었다. 위키피디아를 읽어보니, 이 빵집 주인이 꽤 상업적인 성공을 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이정도의 빵은, 오히려 같은 값에 르봉마르쉐 파티셰리 코너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에릭 케제르의 이틀 지난 빵이라거나. 그런 의미에서 르봉마르쉐도 갔는데, 와인 두 병을 결제할 때 계산대에 한국인 직원분이 계셨다. 내 신용카드를 보고 알아봐 주셨다. 이것저것 좀 더 물어볼걸 그랬나 싶었지만, 귀찮게 해드리긴 싫어서 잘 사서 나왔다. (나는 내 선택을 믿는다!)

이 길의 끝까지 가면 내 원래 목적지인 소르본느 앞 Cafe le Sorbon이 나온다. 그런데 이미 짐도 많고, 발도 아프고(사실 며칠째 왼쪽 발이 계속 안 좋다. 지난번 발톱 부상 이후로 계속.) 해서 구글 맵을 켰더니, 바로 근방에 시앙스포(SciencePo)가 있다. 명품 가게가 빼곡한 작은 골목을 지나자 시앙스포가 나왔다. 학교 본관 건너편에는 빨간 글자로 시앙스포 서점과 도서관이 있었는데, 서점 안에는 이 학교의 굿즈도 작게나마 팔고 있었다! (안 예뻐서 안 사왔다)

이곳은 프랑스 최고의 인문과학 그랑제꼴 EHESS

그리고 정치학의 최고봉, 시앙스포.

십일 년 전에, 내가 교환학생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그 당시에, 사실 내가 가장 가고 싶던 학교는 시앙스포였다. (연세대와 시앙스포는 교환학생 제도가 마련돼 있었고, 현재도 건재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유독, 내가 교환학생을 갈 시기에는 시앙스포에 자리가 나질 않았다. (내 뒤로는 좀 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T.O.가 난 HEC로 가게 됐다. 만약에 내가 HEC가 아닌 시앙스포에 왔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HEC는 내가 기대하던 학교도 아니었고, 내가 하던 공부도 아닌데다가, 관심있는 분야도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많이 방황을 했었다. 시앙스포였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파리에서 살고 있었거나, 혹은 한국에서 정치에 (어줍잖게) 발을 담갔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HEC때와 똑같이, 아등바등 살다가 어서 한국에 가서 기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서둘러 귀국을 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이래저래 아쉬운 마음에 시앙스포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가 해피아워 맥주를 마셨다. 1664가 오늘은 그다지 맛이 없었다. 이제 진짜 떠날 때가 됐나보다. TV에서는 때마침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을 하고 있었다. 조금 보다가, 한국 축구만큼이나 재미가 없어서 그냥 나왔다. 집에 와서 보니 러시아가 사우디를 5대 0으로 눌렀다고 한다.

[레시피] 2018.06.13 – 가지구이와 버섯 뇨끼

개인적으로 가지를 아주 좋아한다. 점심때 호박 구운 것을 먹어보고 너무나 맛이 좋아서 가지도 구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븐에 굽는 것만 못 하겠지만, 여기 와서 강제로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있는 만큼, 가지고 있는 도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가지구이와 버섯 뇨끼

재료 : 튼실한 가지 하나, 토마토, 회향 같은 채소들, 뇨끼+버섯+베이컨 조합, 치즈

레시피 : 가지는 한 입에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른다(맘같아선 길게 잘라서 굽고싶었지만 오븐이 없으니!), 토마토도 마찬가지 사이즈로 잘라주고, 회향은 좀 더 작게 자른다(안그럼 향이 너무 강할 것 같다), 그리고 올리브유에 볶아준다! 소금 간을 맞추되 치즈 뿌릴 것을 생각해서 너무 짜게 하진 않는다. 그릇에 덜어놓고 그 사이 버섯과 베이컨을 볶고 어느정도 익으면 뇨끼를 넣는다. 이후 에멘탈 치즈를 솔솔 갈아주면 끝!

포인트 : 가지는 너무 물러지게 구워도 안 되고, 너무 덜 구워도 안 된다. 풋내가 나기 때문! 적당하게 굽는 게 포인트. 음, 그 적당함은 ‘내 취향’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나는 풋내나는 가지를 좋아하나, 아니면 물러진 것을 좋아하나.

*전에 썼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왔을 때 생뇨끼를 한 번 삶았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생뇨끼는 그냥 2~3분 정도 아주 조금만 기름을 두른 뒤 볶아주면 된다고 한다. (설명서에 써 있다) 다만 냉동 뇨끼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혹은 그것도 잠시 꺼내두었다가 녹으면 바로 불에 볶아도 될 듯. 확실히 식감도 맛도 더 좋더라.

[하루] 2018.06.13.

지난 밤에 술을 종류별로 이것저것 신나게 섞어서 많이 마셨더니 아침에 내내 숙취가 왔다. 레드, 화이트 각각 한 잔에 샴페인도 세 잔쯤 마신 것 같다. 거기에 리카르도 같은 식전주도 마셨고. 문득 내 몸을 보니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해졌다. 며칠동안 정말 신나게 먹어서 그렇다. 버터, 빵, 크림, 소금, 뭐 살이 안 찔 것이 없다. 오늘은 좀 자제를 할까 했지만, 며칠 안 남은 판에 더 맛있는 거나 잘 먹고 다니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숙취부터 해결하겠다며 아침부터 야무지게 스크램블을 해 먹었다.

오전에는 졸다 깨다, 비몽사몽으로 르몽드를 읽고 오리고 붙였다.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는데, 확실히 관점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문체부터가 아주 제3자의 느낌이랄까. 대신 도쿄와 중국, 미국, UN 등 여러 입장차이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선 당장 통일이냐 아니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곳에서는 Geo-political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그간 벼르고 벼르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이를테면,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떨어진(그러니까 바로 옆에 있는) 미슐랭 스티커가 잔뜩 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그곳이 평일 점심에는 오늘의 요리에 대해 15유로에 판매를 한다. 다른 메인요리나 앙트레, 디저트 같은 것을 생각하면 사실 꽤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데, 점심 식사 값으로는 나쁘지 않다. 나에게 남은 주중 점심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쓰기로 했다. 다만 내일은 맥도널드에 갈 수도 있다! 유럽에서 맥도널드가 가장 잘 되는 곳이 프랑스라는, 그러니 꼭 맥도널드를 가라는 말을 들어서다. (어제 만난 스타트업 대표가 아주 침이 마르도록 맥도널드 찬양을 했다. 프랑스 맥날은 오가닉이라며!)

식사는 정말 프렌치였다. 메뉴는 다음과 같다.

Suprême de pintade

Fermière rôti, jus à la moutarde

Courgettes grillées

기본으로 나오는 전식인데, 주변의 소금과 후추가 아까울 정도로;; 간이 맞았다.

전혀 비리지 않았고, 저 구운 호박도 아주 맛있었다.

환상적였던 디저트 ㅠㅠ

기본 디저트가 더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이 앞의 크랜베리 젤리 같은 것은 아주 달콤하고, 그러면서 이에 붙지도 않으면서, 입가심을 하기에도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것은 머스타드 소스를 겸한 꿩 고기 같은 것이었다! 어쩐지, 닭도 칠면조도 아닌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비둘기가 아니어서. 호박을 구운 것도 참 맛있었고, 디저트 세트는 어메이징했다.

그리고 벼르던 일 2. 쿠프카(KUPKA) 전시를 보러 갔다.

완전히 반해버렸다.

연못에서의 피아노 연주. 너무 좋아서, 이 그림은 따로 포스터를 사왔다.

이 작품도 아주 마음에 들어서, 학부 교수님께 이 그림이 담긴 엽서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이번에 그랑팔레에서 하는 전시는, 쿠프카의 회고전이다. 사실 추상주의의 시발점을 칸딘스키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은정이의 강의!) 그런데 사실은 쿠프카가 이 추상주의의 선구자라는 게 이번 전시의 컨셉이다. 누가 먼저라는 것을 따진다기보다는, 쿠프카라는 사람의 abstraction은 정말 오백프로 이해가 갔다. 그의 철학이 아주 노골적으로 녹아있다.

일단 그의 과거 경력에서부터 시작하면, 쿠프카는 당시 만화 서평같은 그림도 참 많이 그렸다. 초기 작품을 보면 되게 풍자적인 작품이 많은데, 실은 좀 잔혹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도 다소 있었다. 이후에는 3차원을 색채를 활용해서 화폭에 담는 것을 시도한다. 자신의 가족이 그 주인공이 되는데, 일종의 움직임을 색깔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abstraction의 시발점이 되는 것 같다.

3차원적으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1890년대의 아이디어!

공간과,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아주 많이 한 작가인 듯 하다.

이 양반이 참 대단한게, 과학도 좋아했다. 우주라는 공간을 그리고 싶어했고, 뉴턴의 중력을 소재로 하는 그림도 그렸다. (정말 중력이 느껴진다!) 이후로 나오는 그림들이 원근같은 느낌을 주는, 그러나 오직 색채와 형태만으로 표현이 되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또한 나름 자신의 morphology까지 구축하고 있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이후 매커니즘 시리즈(기계에 반해서 기계를 그렸다!)도 기계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 그리고 blanc&noir라는 시리즈도 있는데, 누런 종이에 오직 흰색과 검정색을 활용해 선과 면을 자유롭게 써먹은 그림이다. 정말 내 스타일의 그림인데, 이 시리즈의 경우 엽서로도 나와있지 않고 오직 한정판 250유로짜리 인쇄집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세상 아쉬움. 그래서 기념품샵에서 정말 고르고 골라서 그의 그림 포스터 한 점과 엽서 몇 장, 그리고 잡지 한 권을 사가지고 나왔다. 내가 만일 이곳에 살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그의 화집을 샀을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살 수가 없었다.

이번에 와서 유독 현대미술을 많이 보게 되는데, 특히 큐비즘을 비롯한 상징주의 작품이나 추상주의 작품을 주로 접하고 있다. 전에는 오면 오르세부터 달려가고, 루브르부터 찾아갔는데, 취향은 계속 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오르세 한 번 안 가고, 루브르 한 번 안 가도 괜찮은 걸까 싶은 은근한 불안감 같은 것도 있다. 뭐, 지금 하는 특별전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으니(발틱 인상주의 같은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싶다.

말년에 와서 쿠프카의 그림은 더욱 간결해진다. 상징주의의 선구자, 맞는 것 같다.

그랑팔레에서 걸어나올 때 즈음, 드디어 내 휴대폰의 USIM 인터넷 무료 사용량이 끝이 났다. 떠나는 날 우버 어떻게 부르지 싶지만, 당분간은 되게 아날로그적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마들렌 사원 인근, 차로 워낙 유명한 Mariage Frere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컨셉스토어마냥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각종 차 도구(다기 등)가 우아하게 배치돼있고, 이게 차를 사러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안쪽 깊이 엄청난 수장고 느낌의 차 매장이 펼쳐진다. 하나하나 뚜껑을 열고 다 향을 맡고 있으려니 그렇게 행복하더라. 국내에서 한 통 사려면 가격이 상당한데, 여기서는 웨딩임페리얼이 한 통(100g)에 15유로 정도. 역시 대표적인 티답게 향이 엄청났다. MilkyBlue라고 하는, The Bleu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한 통 살까 하다가 뭔가 실제로는 좀 느끼한 향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 한 잔 뽑아마셨다(5유로다). The Vert와 The Noir 사이의 ‘우롱차’라고 설명해줬는데, 말그대로 엄청 가볍고 향이 은은했다. 마들렌 사원 앞 벤치에서 마셔서 분위기는 조금 약했겠지만. 이곳에서 파는 버터빵이나 초콜릿도 사오고 싶었지만, 일단 웨딩임페리얼만 가지고 나왔다.

다음으론 본격 쇼핑을 위해, 전날 라파예트에서 봤던 COS 매장(마들렌 사원 옆, 2층짜리)에 갔다. 개인적으로 전에 독일에 갔을 때 이곳 옷을 처음 사 입어보고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만 오면 유독 다들 비싸진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대략 2~3만원 정도 싼 느낌. 천성이 게을러서 택스프리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는데(더구나 샤를드골에서 택스프리라니… 안 하고 만다는 생각이…) 여하튼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신랑것까지 몇 벌 구입했다. 여기는 참, 천이 독특하고 좋다. 약간 스판재질인듯, 휘날리는 느낌. 옷이 몸에 착 감기는 맛이 좋다.

뭔가 굉장히 관광객스럽게 쇼핑을 하고 돌아다녔는데, 사실 나는 쇼핑을 한 축에도 못 낀다. 뭐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요즘 핫한 Kitsuné나, MERCI 같은 곳을 쓸어간다고 하는데,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내 취향대로 다닌다. 라파예트보다 프랭땅이 더 기분 좋은 것과 아마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라파예트가 롯데백화점이라면, 프랭땅은 현대백화점 느낌이다. 르봉마르쉐는 그럼 신세계인가…)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하게 쇼핑을 할 수 있다. 역시나 참새 유선생은 프랭땅 남성복 건물 6층(그 아랫층들은 내가 감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쇼핑하는 파리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멋있었다. 뭔가 되게 저 옷과 신발과 모자가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에 올라가서 각종 와인과 식재료들을 감상했다. 타르틴이 참 그리울 것 같은데, 막상 사가지고 가면 안 먹을 것 같다.

바로 이 와인이다. 핵꿀맛…

와인 얘기를 하자면, 코르시카 와인(!!!) 한 병과 괜찮아 보이는 디저트 와인을 사가지고 왔다. 가만보면 이곳 사람들은 랑그독(LangueDoc) 지역 와인을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곳에서 와인을 살 때 몇 가지 팁이 있는데, NICOLAS라고 하는 체인 와인매장이 곳곳에 있다. (마들렌 사원 앞에는 31번지여서 크게 31을 써붙인 지점이 있는데, 여기가 마치 본점마냥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추천해주는 와인도 상당히 좋다고 한다. 체인점이라고 코스트코 느낌이 나는 건 아니라는 뜻.

그리고 백화점에 가면, 약간 값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래도 10유로 대에서도 괜찮은 와인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매대에 자신들이 추천하는 와인 같은 걸 진열하는데, 거기서 사 보고 다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매장 주인들도 백화점의 경우 웬만한 영어는 다 한다. 독립서점처럼 개인이 하는 와인샵도 좋다. 다만 이런곳은 조금 더 비싼 것 같다. Dégustation 즉 시음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프랭땅은 다섯 종에 대해 9유로였다) 언제 한 번 해 봐야겠다 싶다. 내가 갔던 생테티엔쪽 와인샵은 월요일에 문 닫는다더니 화요일에 가도 열려있더라….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가 많은 앵무새 설탕(!!!!), 그리고 쿠스미 티. 정작 나는 BIO만 사가지고 왔따. 쿠스미는 좀 사왔다만..

마지막으로 슈퍼마켓! 일명 모노프리, 카르푸, 프랑프리, 그리고 유기농 매장인 Naturalia 등 매장에서 파는 와인은? 나쁘지 않다. 내 경우, 카르푸와 프랑프리는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라 모노프리를 주로 가는데, 여기서 파는 Chablis chanson은 인터넷에 쳐보기만 해도 모노프리와 함께 검색될 정도다. 그런데 좀 괜찮다 싶은 와인 라인들은 사실 백화점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만일 본인이 좀 빈티지를 따지는 편이라면 이런 마켓들보다는 르봉마르쉐 지하 와인매장을 적극 추천한다.

많이 걸었다. 집에 와서 남은 뇨끼를 베이컨, 버섯과 함께 볶아 먹었다. 가지와 토마토, 회향도 한쪽에 따로 볶아 먹었는데, 이곳 가지 참 맛있다. (내가 원래 가지 마니아다) 낮에 호박을 구워준 것도 참 맛이 좋았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더 집밥을 먹을 일이 생긴다면 한 번 해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곳 대구(생선)도 참 좋다. 떠나려고 보니, 해먹고 싶은 집밥 종류가 더 늘고 있다. 물론, 가보고 싶은 식당도 아직 좀 남아있다. 사람이 하루에 세 끼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한해” 참 슬픈 일이다.

저녁에는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저, 한 소년의 첫사랑 내지 짝사랑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그런 인생이었나 싶었는데, 브리지트 여사도 아주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었으며, 철학적이고 활동적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스트라스부르크 근처 마을로 이사를 갔을 땐 시의원 선거같은 데에도 입후보를 했을 정도다. 브리지트 여사네 집안이 아미엥(Amiens) 지역의 아주 유명한 초콜릿가게를 한다고 한다. 노틀담 성당 앞에 있는 Jean Trogneux 라는 곳으로, 5대째 물려오고 있다고. 아미엥 하면 이곳만의 독특한 마카롱이 참 맛있는데(macaron d’amande), 그렇게 달콤한 디저트와 뱅쇼의 도시에서 이렇게 달콤한 쇼콜라티에를 한다니 정말 상상만으로도 굉장하다. 이곳에서 교사로 일했고, 첫 남편을 따라 스트라스부르크 근처로 옮겨가 그곳에서 또 선생님을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마크롱을 서포트하면서 또다시 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계속 연극 생활을 했는데….

그의 연극에 대한 이 열정과 사랑이 결국 에마뉴엘 마크롱과 이어지는 고리가 됐다. 실제 지금도 늘 마크롱의 뒤가 아닌 옆에서 그의 말을 코치하고, 발성을 지도하고, 그리고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 마크롱도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요즘 욕을 많이 먹고는 있지만. 나는 이렇게 똑똑해보이는 인상에 홀라당 넘어가는데, 마크롱 어린시절 보니까 완전히 내 이상형이다. (그래도 우리 신랑이 최고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연극을 하는 모습이나, 연설을 하는 모습 등. 화면상으로도 참 멋진데,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도 “마크롱은 워낙 똑똑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도 엄청 놀랐다고 한다. 뭐? 선생님이랑? 이라며) 특히 그가 후보 시절, 나이 많은 여자와 산다는 이유로 동성연애자로 몰린 적이 있었는데(잘 리가 없다고들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이들 부부가 겪었을 스트레스, 마음고생은 정말 엄청났을 것 같다. 더구나 워낙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니 각종 파파라치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들 부부가 파파라치 앞에서 아예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고.

그리고 브리지트 여사는 엄청 날씬하다. 허벅지가 거의 뭐 젓가락같은데,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본인도 상당히 노력을 할 것 같다. 지금이 65세인데(우리나이로 66세), 얼굴 주름은 감추지 못해도 옷태는 정말 굉장하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산 사람처럼. 문득 나를 다시 돌아보니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해졌는데, 뭐 한국 가면 빠지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들의 결혼식. (인터뷰이로 나온 브리지트의 친구들은 “왜 결혼식을 하니 굳이”라고 했었단다) 결혼해서 잘 살 것을 맹세하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마크롱은 정말 눈을 빛내며 “OUI”라고 말한다. 와, 그 눈빛이… 정말 대단했다. 그 장면 하나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