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18.06.13.

지난 밤에 술을 종류별로 이것저것 신나게 섞어서 많이 마셨더니 아침에 내내 숙취가 왔다. 레드, 화이트 각각 한 잔에 샴페인도 세 잔쯤 마신 것 같다. 거기에 리카르도 같은 식전주도 마셨고. 문득 내 몸을 보니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해졌다. 며칠동안 정말 신나게 먹어서 그렇다. 버터, 빵, 크림, 소금, 뭐 살이 안 찔 것이 없다. 오늘은 좀 자제를 할까 했지만, 며칠 안 남은 판에 더 맛있는 거나 잘 먹고 다니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숙취부터 해결하겠다며 아침부터 야무지게 스크램블을 해 먹었다.

오전에는 졸다 깨다, 비몽사몽으로 르몽드를 읽고 오리고 붙였다.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는데, 확실히 관점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문체부터가 아주 제3자의 느낌이랄까. 대신 도쿄와 중국, 미국, UN 등 여러 입장차이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선 당장 통일이냐 아니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곳에서는 Geo-political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그간 벼르고 벼르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이를테면,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떨어진(그러니까 바로 옆에 있는) 미슐랭 스티커가 잔뜩 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그곳이 평일 점심에는 오늘의 요리에 대해 15유로에 판매를 한다. 다른 메인요리나 앙트레, 디저트 같은 것을 생각하면 사실 꽤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데, 점심 식사 값으로는 나쁘지 않다. 나에게 남은 주중 점심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쓰기로 했다. 다만 내일은 맥도널드에 갈 수도 있다! 유럽에서 맥도널드가 가장 잘 되는 곳이 프랑스라는, 그러니 꼭 맥도널드를 가라는 말을 들어서다. (어제 만난 스타트업 대표가 아주 침이 마르도록 맥도널드 찬양을 했다. 프랑스 맥날은 오가닉이라며!)

식사는 정말 프렌치였다. 메뉴는 다음과 같다.

Suprême de pintade

Fermière rôti, jus à la moutarde

Courgettes grillées

기본으로 나오는 전식인데, 주변의 소금과 후추가 아까울 정도로;; 간이 맞았다.

전혀 비리지 않았고, 저 구운 호박도 아주 맛있었다.

환상적였던 디저트 ㅠㅠ

기본 디저트가 더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이 앞의 크랜베리 젤리 같은 것은 아주 달콤하고, 그러면서 이에 붙지도 않으면서, 입가심을 하기에도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것은 머스타드 소스를 겸한 꿩 고기 같은 것이었다! 어쩐지, 닭도 칠면조도 아닌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비둘기가 아니어서. 호박을 구운 것도 참 맛있었고, 디저트 세트는 어메이징했다.

그리고 벼르던 일 2. 쿠프카(KUPKA) 전시를 보러 갔다.

완전히 반해버렸다.

연못에서의 피아노 연주. 너무 좋아서, 이 그림은 따로 포스터를 사왔다.

이 작품도 아주 마음에 들어서, 학부 교수님께 이 그림이 담긴 엽서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이번에 그랑팔레에서 하는 전시는, 쿠프카의 회고전이다. 사실 추상주의의 시발점을 칸딘스키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은정이의 강의!) 그런데 사실은 쿠프카가 이 추상주의의 선구자라는 게 이번 전시의 컨셉이다. 누가 먼저라는 것을 따진다기보다는, 쿠프카라는 사람의 abstraction은 정말 오백프로 이해가 갔다. 그의 철학이 아주 노골적으로 녹아있다.

일단 그의 과거 경력에서부터 시작하면, 쿠프카는 당시 만화 서평같은 그림도 참 많이 그렸다. 초기 작품을 보면 되게 풍자적인 작품이 많은데, 실은 좀 잔혹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도 다소 있었다. 이후에는 3차원을 색채를 활용해서 화폭에 담는 것을 시도한다. 자신의 가족이 그 주인공이 되는데, 일종의 움직임을 색깔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abstraction의 시발점이 되는 것 같다.

3차원적으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1890년대의 아이디어!

공간과,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아주 많이 한 작가인 듯 하다.

이 양반이 참 대단한게, 과학도 좋아했다. 우주라는 공간을 그리고 싶어했고, 뉴턴의 중력을 소재로 하는 그림도 그렸다. (정말 중력이 느껴진다!) 이후로 나오는 그림들이 원근같은 느낌을 주는, 그러나 오직 색채와 형태만으로 표현이 되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또한 나름 자신의 morphology까지 구축하고 있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이후 매커니즘 시리즈(기계에 반해서 기계를 그렸다!)도 기계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 그리고 blanc&noir라는 시리즈도 있는데, 누런 종이에 오직 흰색과 검정색을 활용해 선과 면을 자유롭게 써먹은 그림이다. 정말 내 스타일의 그림인데, 이 시리즈의 경우 엽서로도 나와있지 않고 오직 한정판 250유로짜리 인쇄집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세상 아쉬움. 그래서 기념품샵에서 정말 고르고 골라서 그의 그림 포스터 한 점과 엽서 몇 장, 그리고 잡지 한 권을 사가지고 나왔다. 내가 만일 이곳에 살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그의 화집을 샀을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살 수가 없었다.

이번에 와서 유독 현대미술을 많이 보게 되는데, 특히 큐비즘을 비롯한 상징주의 작품이나 추상주의 작품을 주로 접하고 있다. 전에는 오면 오르세부터 달려가고, 루브르부터 찾아갔는데, 취향은 계속 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오르세 한 번 안 가고, 루브르 한 번 안 가도 괜찮은 걸까 싶은 은근한 불안감 같은 것도 있다. 뭐, 지금 하는 특별전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으니(발틱 인상주의 같은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싶다.

말년에 와서 쿠프카의 그림은 더욱 간결해진다. 상징주의의 선구자, 맞는 것 같다.

그랑팔레에서 걸어나올 때 즈음, 드디어 내 휴대폰의 USIM 인터넷 무료 사용량이 끝이 났다. 떠나는 날 우버 어떻게 부르지 싶지만, 당분간은 되게 아날로그적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마들렌 사원 인근, 차로 워낙 유명한 Mariage Frere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컨셉스토어마냥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각종 차 도구(다기 등)가 우아하게 배치돼있고, 이게 차를 사러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안쪽 깊이 엄청난 수장고 느낌의 차 매장이 펼쳐진다. 하나하나 뚜껑을 열고 다 향을 맡고 있으려니 그렇게 행복하더라. 국내에서 한 통 사려면 가격이 상당한데, 여기서는 웨딩임페리얼이 한 통(100g)에 15유로 정도. 역시 대표적인 티답게 향이 엄청났다. MilkyBlue라고 하는, The Bleu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한 통 살까 하다가 뭔가 실제로는 좀 느끼한 향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 한 잔 뽑아마셨다(5유로다). The Vert와 The Noir 사이의 ‘우롱차’라고 설명해줬는데, 말그대로 엄청 가볍고 향이 은은했다. 마들렌 사원 앞 벤치에서 마셔서 분위기는 조금 약했겠지만. 이곳에서 파는 버터빵이나 초콜릿도 사오고 싶었지만, 일단 웨딩임페리얼만 가지고 나왔다.

다음으론 본격 쇼핑을 위해, 전날 라파예트에서 봤던 COS 매장(마들렌 사원 옆, 2층짜리)에 갔다. 개인적으로 전에 독일에 갔을 때 이곳 옷을 처음 사 입어보고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만 오면 유독 다들 비싸진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대략 2~3만원 정도 싼 느낌. 천성이 게을러서 택스프리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는데(더구나 샤를드골에서 택스프리라니… 안 하고 만다는 생각이…) 여하튼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신랑것까지 몇 벌 구입했다. 여기는 참, 천이 독특하고 좋다. 약간 스판재질인듯, 휘날리는 느낌. 옷이 몸에 착 감기는 맛이 좋다.

뭔가 굉장히 관광객스럽게 쇼핑을 하고 돌아다녔는데, 사실 나는 쇼핑을 한 축에도 못 낀다. 뭐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요즘 핫한 Kitsuné나, MERCI 같은 곳을 쓸어간다고 하는데,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내 취향대로 다닌다. 라파예트보다 프랭땅이 더 기분 좋은 것과 아마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라파예트가 롯데백화점이라면, 프랭땅은 현대백화점 느낌이다. 르봉마르쉐는 그럼 신세계인가…)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하게 쇼핑을 할 수 있다. 역시나 참새 유선생은 프랭땅 남성복 건물 6층(그 아랫층들은 내가 감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쇼핑하는 파리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멋있었다. 뭔가 되게 저 옷과 신발과 모자가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에 올라가서 각종 와인과 식재료들을 감상했다. 타르틴이 참 그리울 것 같은데, 막상 사가지고 가면 안 먹을 것 같다.

바로 이 와인이다. 핵꿀맛…

와인 얘기를 하자면, 코르시카 와인(!!!) 한 병과 괜찮아 보이는 디저트 와인을 사가지고 왔다. 가만보면 이곳 사람들은 랑그독(LangueDoc) 지역 와인을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곳에서 와인을 살 때 몇 가지 팁이 있는데, NICOLAS라고 하는 체인 와인매장이 곳곳에 있다. (마들렌 사원 앞에는 31번지여서 크게 31을 써붙인 지점이 있는데, 여기가 마치 본점마냥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추천해주는 와인도 상당히 좋다고 한다. 체인점이라고 코스트코 느낌이 나는 건 아니라는 뜻.

그리고 백화점에 가면, 약간 값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래도 10유로 대에서도 괜찮은 와인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매대에 자신들이 추천하는 와인 같은 걸 진열하는데, 거기서 사 보고 다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매장 주인들도 백화점의 경우 웬만한 영어는 다 한다. 독립서점처럼 개인이 하는 와인샵도 좋다. 다만 이런곳은 조금 더 비싼 것 같다. Dégustation 즉 시음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프랭땅은 다섯 종에 대해 9유로였다) 언제 한 번 해 봐야겠다 싶다. 내가 갔던 생테티엔쪽 와인샵은 월요일에 문 닫는다더니 화요일에 가도 열려있더라….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가 많은 앵무새 설탕(!!!!), 그리고 쿠스미 티. 정작 나는 BIO만 사가지고 왔따. 쿠스미는 좀 사왔다만..

마지막으로 슈퍼마켓! 일명 모노프리, 카르푸, 프랑프리, 그리고 유기농 매장인 Naturalia 등 매장에서 파는 와인은? 나쁘지 않다. 내 경우, 카르푸와 프랑프리는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라 모노프리를 주로 가는데, 여기서 파는 Chablis chanson은 인터넷에 쳐보기만 해도 모노프리와 함께 검색될 정도다. 그런데 좀 괜찮다 싶은 와인 라인들은 사실 백화점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만일 본인이 좀 빈티지를 따지는 편이라면 이런 마켓들보다는 르봉마르쉐 지하 와인매장을 적극 추천한다.

많이 걸었다. 집에 와서 남은 뇨끼를 베이컨, 버섯과 함께 볶아 먹었다. 가지와 토마토, 회향도 한쪽에 따로 볶아 먹었는데, 이곳 가지 참 맛있다. (내가 원래 가지 마니아다) 낮에 호박을 구워준 것도 참 맛이 좋았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더 집밥을 먹을 일이 생긴다면 한 번 해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곳 대구(생선)도 참 좋다. 떠나려고 보니, 해먹고 싶은 집밥 종류가 더 늘고 있다. 물론, 가보고 싶은 식당도 아직 좀 남아있다. 사람이 하루에 세 끼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한해” 참 슬픈 일이다.

저녁에는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저, 한 소년의 첫사랑 내지 짝사랑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그런 인생이었나 싶었는데, 브리지트 여사도 아주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었으며, 철학적이고 활동적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스트라스부르크 근처 마을로 이사를 갔을 땐 시의원 선거같은 데에도 입후보를 했을 정도다. 브리지트 여사네 집안이 아미엥(Amiens) 지역의 아주 유명한 초콜릿가게를 한다고 한다. 노틀담 성당 앞에 있는 Jean Trogneux 라는 곳으로, 5대째 물려오고 있다고. 아미엥 하면 이곳만의 독특한 마카롱이 참 맛있는데(macaron d’amande), 그렇게 달콤한 디저트와 뱅쇼의 도시에서 이렇게 달콤한 쇼콜라티에를 한다니 정말 상상만으로도 굉장하다. 이곳에서 교사로 일했고, 첫 남편을 따라 스트라스부르크 근처로 옮겨가 그곳에서 또 선생님을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마크롱을 서포트하면서 또다시 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계속 연극 생활을 했는데….

그의 연극에 대한 이 열정과 사랑이 결국 에마뉴엘 마크롱과 이어지는 고리가 됐다. 실제 지금도 늘 마크롱의 뒤가 아닌 옆에서 그의 말을 코치하고, 발성을 지도하고, 그리고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 마크롱도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요즘 욕을 많이 먹고는 있지만. 나는 이렇게 똑똑해보이는 인상에 홀라당 넘어가는데, 마크롱 어린시절 보니까 완전히 내 이상형이다. (그래도 우리 신랑이 최고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연극을 하는 모습이나, 연설을 하는 모습 등. 화면상으로도 참 멋진데,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도 “마크롱은 워낙 똑똑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도 엄청 놀랐다고 한다. 뭐? 선생님이랑? 이라며) 특히 그가 후보 시절, 나이 많은 여자와 산다는 이유로 동성연애자로 몰린 적이 있었는데(잘 리가 없다고들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이들 부부가 겪었을 스트레스, 마음고생은 정말 엄청났을 것 같다. 더구나 워낙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니 각종 파파라치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들 부부가 파파라치 앞에서 아예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고.

그리고 브리지트 여사는 엄청 날씬하다. 허벅지가 거의 뭐 젓가락같은데,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본인도 상당히 노력을 할 것 같다. 지금이 65세인데(우리나이로 66세), 얼굴 주름은 감추지 못해도 옷태는 정말 굉장하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산 사람처럼. 문득 나를 다시 돌아보니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해졌는데, 뭐 한국 가면 빠지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들의 결혼식. (인터뷰이로 나온 브리지트의 친구들은 “왜 결혼식을 하니 굳이”라고 했었단다) 결혼해서 잘 살 것을 맹세하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마크롱은 정말 눈을 빛내며 “OUI”라고 말한다. 와, 그 눈빛이… 정말 대단했다. 그 장면 하나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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