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18.06.15.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최고의 경기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매치가 열려서 지혜언니와 방에서 1664 병맥을 비우며 관전했는데, 스페인의 어마어마한 공격력과 호날두의 원맨쇼에 감탄했다. 뭔가, 결승전을 미리 본 듯한 기분이다. 최고의 경기를 보고, 반짝이는 에펠탑을 본 밤이다.

이 슛이 정말 최고였다. 호날두의 멋진 프리킥! 세번째 골!

대학동기가 독일 본에서 건너왔다. 나의 마지막 파리는 그녀와 함께 보낸다. 언니는 낮에 도착했고, 내가 사는 건물 3층 쯤에서 몇 년만에 재회했으며, 웰컴 드링크로 코르시카 와인을 마시며 서로 너무나 좋아라 했다. 전날 내가 갔던 프랑스 음식점에 갔지만 시간이 늦어 식사가 힘들었고, 대신 일본인들이 많이 간다는 몽파르나스 타워 옆 크레페 집에 갔다. 푸짐한 샐러드와 엄청 큰 이곳의 트래디셔널 크레페는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시드르는 크게 달지 않으면서도 풍미가 살아있었다. 언니도 여기에 수년 전에 6개월쯤 살았다고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파리를 이야기하며, 그리고 내가 첫날에 느꼈을 그 감동을 그대로 실감하고 있는 언니를 보며, 문득 떠날 날이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지나 큰 길을 걸어 생제르망 성당까지 갔다. 거기에서 또 골목을 지나 센느강으로 나아갔다. 퐁 뇌프를 건너 시테섬을 돌며 꽃시장을 지났는데 한참 철인 라벤더의 향이 무척 진했다. 작고 색이 진한 꽃들은 없던 ‘식물 물욕’까지 일으켰다. 문익점처럼 씨앗을 숨겨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풍토가 안 맞아 자라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노틀담 성당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고, 문득 몇 주 전, 그러니까 나도 파리에 막 적응하던 시절에 오셨던 회사 선배와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 여길 더 잘 알았더라면, 더 좋은 곳에 모셔가서 더 맛있는 것을 맛보게 해드리고 더 나이스하게 돌아다녔을텐데 싶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온통 프랑스 국기 색으로 알록달록한 hotel de ville 앞을 지났다. 하얀 천막이 여럿 있길래, 당연히 여기서 내일 축구 응원이 있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헌혈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일요일까지 진행된다고 써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번 월드컵에 대해 테러 위험이 아주 높아진 만큼 도시에 큰 스크린을 걸어놓고 하는 응원전은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바에 가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Place d’italie 근처에 120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엄청 큰 식당이 있는데(BigMama라고 하는) 거기를 갈까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세계유산으로 지정 직전인 브라세리에 가서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날씨가 정말 쨍-하고 갰다. 계속 해가 들어서 일부러 그늘로 다녀야할 정도로. 목이 타는 우리는, 마레 지구의 꽤 코지한 카페에 우연히 들어갔다. 일본인 내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바리스타가 삼색기를 얼굴에 그려넣고 커피를 주문받고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칵테일 캔에 커피와 얼음을 넣어 쉐이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서빙된 아메리카노는 아주 크리미했다! 그래, 저 칵테일 쉐이커를 사가야 해, 라는 물욕이 또 들었다. (일명 ‘샤케라토’라는 것이 바로 이 쉐이킹을 한 아메리카노라고 한다. 샤케가 shake라고…) 흠, 내일 한 번 지나다니다가 봐야겠다.

곧 축제가 시작되는 이곳 마레지구!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숍들도 가 봤다. Merci라고 하는 편집숍은 마치 홍대 앞, 가로수길의 매장을 풀어놓은 듯 발랄한 디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한국인도 많았다) 많이 본 듯한 Merci 마크의 에코백과 팔찌가 시그니처처럼 매달려 있었고, 하필 ‘여름’ 컨셉이라 바닥에 흰 모래까지 깔아 두었다. 어린 한국 어린이가 큰 소리로 울어대는 것을 들으며, 아, 여기 정말 유명한 숍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지만, 막상 그들의 드높은 취향은 인정한다. 결국 신랑 신발 하나를 사 가지고 나왔다.

이후 르봉마르쉐에서 타르틴을 올려먹을 작은 팬케익과 1664 병맥주 여섯병(어허, 오해 마시라. 250ml 들이 미니 병맥이다!), 그리고 이곳 멜론을 사가지고 나왔다. 멜론은 어찌 골라야할지 몰라 언니와 서로 과일 냄새를 이야기하며, 물컹한 정도를 토론하며 사가지고 왔는데, 그 덕인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멜론을 골라왔다. 새로 산 큰 중식도를 트렁크에서 꺼내야 하나 싶었는데, 내가 가진 작은 칼이 쑥 들어갈 정도로 아주 부드럽게 잘 익은 녀석이었다. 여기에 전날 산 프로슈토를 얹어 먹었는데, 또 그 맛이 환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멜론이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 이제야 맛보게 됐다는 게 아쉬울 정도. 남은 날 동안 부지런히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심 내 봐야 하루에 반 통도 못 먹겠지만)

함께 맥주를 마시며, 캐비어 타르틴을 얹어 먹으며, 빵을 베어 물고 남은 뇨끼를 해치우며, 틈틈이 축구 화면을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언니도 나도 연구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여기에 얽힌 숱한 비리와 문제점과 시스템의 한계를 한참 이야기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느끼게 되는 것들을 한참 들었고, 사람의 관계와 매력적인 캐릭터, 힘들었던 우리의 이십대 젊은 날 같은 것을 하나씩 짚었다. 호날두에 뒤늦게 ‘입덕’한 언니는 경기를 정말 즐겁게 봤다. 다행이었다, 원래 축구를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려 독일에 사는 언니에게 축구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게 돼서, 이 재밌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게 돼서 정말 보람찼다. (‘보람’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써 본다)

집 근처에 FFF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형석오빠 고마워요…ㅎㅎㅎ

유니폼 뒤에는 마킹도 해주는데, 유니폼 디자인이 넘나 구려서…… ㅠ_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모자다. 결국 손에 든 것을 샀다.

이건 주변 모노프리에서 파는 아이템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구비하였다…

벌써부터 설렌다. 사실 별 이변이 예상된다거나하는 빅매치는 아니겠지만, 프랑스전을 프랑스에서 보게 돼 너무 좋다. 아침에는 7kg어치 택배를 한국으로 보내고(37유로 정도 들었다! 우체국보다 10유로 넘게 저렴하다. 한인택배 최고!) 한인마트에서 언니에게 줄 불닭볶음면 한 봉지를 산 뒤(1유로에 할인행사중이었다!), 바로 FFF 프랑스 축구 협회로 달려갔다. (그 전에 당 충전을 위해 아침식사겸 근처 베이커리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위스식 초콜릿 페스츄리와 카페 한 잔이면 세상 행복한 파리생활.

결정장애가 올 뻔 했지만, 침착하게 하나만 자알 골랐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챙이 납작한 모자를 사고(은근 어울리는 것 같다. 좀 젊어 보이는 듯도) FFF를 거울에 비추면 ㅋㅋㅋ가 된다는 것에 자꾸 재미있어 하면서 또다시 이렇게 모자 콜렉트를 진행했다. 티셔츠가 조금만 더 예뻤어도 또 살 뻔 했다. 다행히 이곳 디자인은 난해하고, 투박하다. 건너 모노프리에 가서 구매대행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티를 몇 팩 샀다. 서점 아저씨가 서비스로 줘서 참 맛있게 먹었던 초콜릿도 1+1 묶음 두 팩을 샀다. (그러고보니 이거 할인 쿠폰이 있는데… 더 사야 하나 싶다) 응원에 필요한 페이스 페인팅 마커까지 샀으니, 뭐 이걸로 응원 준비는 끝났다. 이제 경기만 하면 된다!

참 많이 그리울, 7-15구 사이 풍경. 나는 이 철길을 따라 방향을 알았다.

신발이 참 많이 닳아서, 버리고 왔다.

그리고 한인마트에는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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