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18.06.16.

핏빗에 기록된 공식 걸음수가 23,938보다. 16.42km를 걸었고, 2,731kcal를 소모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정말 무릎 뒤가 뻐근했다.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많이 떠든 날이었다.

러시아월드컵 프랑스전이 열렸다. 그간 상당히 기대했던 게임이라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프랑스 축구협회에서 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에펠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는 삼색기를 페인팅했다. 목덜미에는 파리생제르망의 음바페 이름이 새겨진 스카프를 둘렀다. 15구에 있는 Café Primerose 라는 곳에서 지혜언니와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낮 12시부터 게임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11시 40분쯤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 뒤로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우리는 참 적당한 때에 잘 와서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좋아했다.

 

만국기가 달린 천막 아래로, TV는 앞뒤에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틈틈이 축구도 볼 수 있게끔 설치가 돼 있던 것이다. 대화를 중요시하는(a.k.a.말이 많은) 프랑스스러움이 이런 데서도 묻어났다. 나만 너무 응원응원 느낌인가 싶어서 움츠릴때 즈음, 프랑스 국대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몸에 휘감고, 얼굴에 나보다 길게 삼색기 페인팅을 하고- 뭐 이런 사람들로 카페가 가득 찼다. 이번에 파리시에서 테러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리 응원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래서 카페들이 이렇게 가득 찼나 싶기도. 뭐 하긴, 원래도 카페나 브라세리에서 본다고도 했었다. 스포츠펍이라는 게 많지 않은 나라고, 우리처럼 호프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하… 이 친구들도 참 맛있었다..!!!

샤르도네를 마시고, 오늘의 ‘특별’ 칵테일을 홀짝이며, 연어 타르타르와 비프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꼬박 챙겨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축구 경기를 봤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워낙 호주가 잘 뛰었다. 지난 평가전때도 느낀거지만, 프랑스 아트사커는 ‘수비전’ 앞에서는 좀 시들시들하다. 호주 입장에선 워낙 강팀을 만났으니 당연히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치게 되는데, 그래서 하마터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뻔 했다. 다행히 막판에 포그바가 한 골을 넣어 2대 1로 프랑스가 ‘간신히’ 1승을 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곳의 응원 분위기였다. 내 뒤로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대여섯이 둘러앉아 부모님들과 함께 축구를 봤는데, 그렇게 막 시끄럽게 들떠있거나 하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도 조용조용히 서로 축구 얘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아쉬운 순간이나, 혹은 골이 들어가는 순간, 패널티킥이 성공하는 순간 등에는 함성, 환호성, 비명, 고함 같은 것이 짧고 강렬하게 터졌다. 다들 정말 축구에 집중을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음식을 천천히 즐겼다. 차분하게, 그러면서 즐겁게 관전. 그게 참 좋았다.

홈피에 올라간 우리 모습…ㅎㅎ

카페 사장은 나와 언니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하프타임때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프랑스인 여자가 와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사진을 찍어갔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외국인들 눈에는 내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쟤는 왜 프랑스를 응원하나’싶었을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한국에 가면 한국을 (어찌됐든) 응원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프랑스 경기는 계속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 어린 선수들이(평균 만 26.4세) 어서 적응을 해서 정말 일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 동안 계속 이들 기사를 접하고, 미디어를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만. 지혜언니가 FFF에서 무려 ‘Les Bleus’ 티셔츠까지 선물로 사줬다! 흐으…고마워.

경기가 끝나니 참으로 알딸딸했다(그게, 칵테일에 보드카가 좀 들어가서…). 우리 둘 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에펠탑을 지나, 앵발리드를 뒤로 하고, 세느강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세로 발을 옮겼다.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던 작품들이 다들 잘 있는지,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관전은 해 줘야 하니 말이다. 이번 파리 체류 기간동안 못 갈 줄 알았던 곳을, 이렇게 언니와 함께 오게 됐다. 예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쇠라, 시슬레, 피사로의 작품이 요즘은 더 마음에 든다. 인상주의 중심으로 1층과 5층만 빠르게 둘러봤는데도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다섯시 반에 문 닫을 때까지 꽉 채워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나온 것이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인데,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지드래곤이 좋아할 맛이다. ㅎㅎ

튈르리 정원을 가로질러 지드래곤이 자주 간다는 루브르 뒤편 일본우동집(sanukiya)으로 갔다가, 오페라를 지나 엘리제 궁 앞에 다다랐다. 그래, 진정한 덕후라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그의 사는 곳은 보고 가 줘야지.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의 덕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너무 입덕이라는 것을 자주해서…) 샹젤리제 근방 카페에서 ‘밤 9시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내가 주장하는 바 : 여기는 밤에 에스프레소 마셔도 잠이 잘 온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며 걸었다. 15구의 언니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Dupleix 역을 지나 너리 위 철길을 따라 내 방으로 돌아왔다. 파리의 낮과 밤을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언니와 헤어지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우리 또 만나. 서울에서 보자. 아니면 내가 독일로 갈게. 괜히 길에서 서성이며 계속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마크롱은 안녕하신지.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며 살았다. 너무 잘 살다 가서 미안할 정도로. 그래도 어느정도 성공은 한 것 같다. 10년 만에 다시 와서 멋있게 있다 갈 것이라는 내 다짐이, 얼마만큼은 지켜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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