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18.06.17.

날이 밝았다. 며칠째 아침에 7시면 깬다. 떠날 날이 돼서 그런지 잠자는 시간이 아까운 걸 몸이 느끼나 보다. 그래서 평균 수면 시간이 다섯시간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파리 마지막 날인지라 좀 고민을 해 봤다. 파리 식물원에 갈까, 티렉스를 보러 자연사박물관에 가볼까, 갔던 곳에서 브런치를 우아하게 즐겨볼까, 피에르 에르메에 가서 마카롱을 사 갈까 등등. 일단 여섯시 좀 넘어서 고모 댁에 가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 한 달을 좀 차분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쌓아둔 사흘치 르몽드를 스크랩하고, 기록을 정리하고, 최근 ‘입덕’한 마크롱 기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있다.

점심은 집 아래 피자집으로 갈 생각이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 한 번도 그곳에서 끼니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다… 까지 쓴 뒤에 내려갔는데, 피자집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이 곳에서 한 끼를 못 하고 간다. 아쉽지만, 오히려 그런 의무감에서 자유로울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가끔 그곳 종업원들이 나에게 봉쥬르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어 주었지만 말이다.

짐 싸다 지친 나…

그렇게 맥도널드에 갔다.

앵발리드에서 열린 파티에서 한 젊은 사업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파리의 맥도널드를 안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유럽에서 매출이 가장 높다! 최대한 몸에 좋게 하는 유기농이다!” 그래서 솔직히 궁금은 했었다. 문 닫은 피자집대신 15구의 맥도널드에 갔다. 유기농은 무슨. 그냥 햄버거다. 파리에 관광객이 하도 많은 데다 외식 물가가 워낙 비싸니 유럽에서 제일 잘 나가나보다 싶었다. 그래도 솔직히 맛은 있었다. 햄버거는 무조건 맛있는데, 유독 더 맛있던 것 같다. 이곳의 스페셜 오퍼로 골든치즈버거 세트를 시켰더니 8.5유로 정도 나왔다.

디저트로 바닐라 선데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그게 녹을까봐 안절부절 못 하며 그걸 들고 빵집에 들른 뒤 앵발리드 공원까지 나갔다. 아이들 놀이터 앞에서 먹고 있었더니, 미국인 가족이 나 보고 예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She’s Pretty라고 했다, 분명히) 그리고는 아이들의 아빠는 내게 그 버거를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다. 친절하게 알려주었는데 아이들이 “그냥 안 먹을래”라고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그 아빠는 어깨를 으쓱해했다. 내 보기엔 그 본인이 먹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종일 짐을 쌌다. 이놈의 짐은 싸고 또 싸도 줄지를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한 달을 사는 동안 짐이 늘었다. 이미 한국으로 7kg이나 보냈는데도 상당한 것을 보니, 몇 개는 버리고 가야겠다. (후에 첨가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내가 산 투명한 보울과 방에서 쓰던 모노프리 컵은 모두 두고 왔다) 늘 그렇듯 배낭이 납작하게 각이 잡혀있는 스타일이라 들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얼 내가 그리 꾸려가는가 싶었는데, 무거운 녀석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깜빠뉴 밀가루 (복합) 1kg

– 유기농 프랑스 밀가루 65T 1kg

– 와인 무려 4병 (아페레티프 1병, 레드-화이트-디저트 각 1병씩)

– 꿀 3병

– 유기농 올리브 오일 500ml 1병

– 이탈리아 리조또 쌀 500g

이것만 해도 벌써 10kg은 될 것 같다. 무게가 추가로 나오면 그냥 돈을 내고 부쳐야겠다. (후에 추가하는 말이지만, 여기는 비용 추가가 안 된다. 그저 30kg로 맞춰야 한다. 다행히 32kg까지는 HEAVY 태그를 달고 허용해 주었다) 짐을 들고 내려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기는 하다. (후에 다시 추가하는 말이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잘 내렸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 후…

독일이 멕시코에게 완전히 ‘말려’ 1대 0으로 지는 꽤 충격적인 월드컵 경기를 본 뒤 서둘러 고모댁으로 갔다. 고모와 석희는 몇 주 전에 만났지만, 고모부와 수아는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수아는 너무 훌쩍 커버렸고, 고모부는 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 고모부를 보고 있자니, 뵙고 있는데도 그리움이 밀려왔다! 수아는 정말 어른 여자가 다 돼서 뭔가 든든했다. 고모는 손이 많이 갈 것만 같은 부리또 재료를 잔뜩 준비하셨는데, 멕시코가 축구 이긴 걸 알아서 하신 건 아니었다. 종종 채소가 먹고 싶을 때 이렇게 해 드신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해 먹어야지. 생각보다 할 만 할 것 같다.

고모댁이 Porte-de-vanve라는 것인데,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정도 걸린다. 파리 2존의 교외지역으로, 일산이나 분당쯤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 방브 벼룩시장도 아주 유 명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여튼, 오랜만에 가니, 정말 길을 못 찾겠더라.

가족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하니 좋았다. 수아의 친구(영어권)가 있는데도 내내 한글을 써서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방언 터지듯 가족들끼리 한국말을 늘어놓는 것이 좋았다. 직관적이고, 감정도 그대로 전달이 된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것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가족들이 그럭저럭 자기 식대로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아서 좋았다. 난시가 심해 밤 운전이 불안한데도, 고모는 굳이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공항에 데려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말이다! 참고로 우버를 타면 40~50유로로 공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와서 참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추임새 같은 것을 많이 들었다. ‘압!’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톤도 높다. 내가 그걸 따라했더니 다들 식탁에서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하이톤으로 했기 때문이다, 마치 강아지처럼. 아무튼, 우압! 이런 느낌인데, 영어로 치면 Oops 같은 추임새란다. 뭐 물건을 살짝 떨군다거나, 그런 때에 쓴다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바게트 쉐프도 그렇고 마켓에서의 점원들도 그랬다. 괜히 내 입에 붙어서, 나도 그 표현을 쓰고 있다. 추임새는 참 잘 옮는다. 큰일이다. 한국 가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잠을 잘 수 없는 밤이다. 남은 코르시카 와인은 다 먹었다. 부르고뉴는 절반 가까이를 버려야할 것 같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밤바람도, 귓가를 스치는 나뭇잎 소리도 다 그리울 것이다. 실컷 감상하고 있다.

내가 늘 신문을 사던 집 앞 서점.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와서 서운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주유소. 갈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략 리터당 우리돈으로 2000원 정도 했다. 

6월 중순, 밤 9시 반쯤의 샹젤리제. 7-8월에 가면 11시에 이런 풍경이다. 가운데서 찍으려던 건 아니고, 단지 신호가 짧아서 중간에 걸려 있었다;

파리의 공유 전기차. 그런데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파리 시장이 이걸 없애려고 한단다. 그래서 언론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내 친구 말에 따르면 너무나도 편하다고 하는데, 막상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은근 사용할 때 까다롭다고도 했다.

알렉상드르3세교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저씨. 이런 너무나도 흔한 풍경.

내가 있었던, 몹시 안전하고 (비싸고) 친근했던 동네. 몹시 그리워할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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