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18.06.23.

<에필로그>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나흘이나 흘렀다! 시차 적응이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이 오자마자 미팅 가랴, 국제도서전 참석차 서울까지 올라가랴, 친구들 만나랴 상당히 바빴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까지 챙겨보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이제 좀 시간이 난다.

짐 정리는 이틀에 걸쳐서 끝냈다. 관세까지 물어가며 가져온 와인은 차곡차곡 정리해두고(아까워서 못 마실 것 같다. 내일 백화점 가서 한국 수입 와인 사와야 할 것 같다), 양가에 보내드릴 꿀이나 차는 따로 챙겨놓고. 각종 옷가지는 세탁기가 해결해 주었고, 새로 사 온 식기류나 커피 프레스 같은 것은 식기세척기가 애써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젯밤부터 오늘 사이에 빵 하나를 만들었다! 프랭땅 백화점에서 사 온 복합 깡빠뉴 밀가루(알고보니 소금까지 다 들어있었다!)에 이스트를 (너무 많이) 넣고, 꽤 오랜 시간 발효를 한 끝에 결국 빵 두 덩이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오른쪽 검지 끝에 2도 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급한대로 마데카솔 케어를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 타이핑을 하고 있다)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발효’가 돼서(한국 기온이 너무 높다) 좀 사워한 맛이 난다. 처음에 막 따뜻할 때는 맛이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나니 적당히 짜고 적당히 시큼해서 좋다. 뭔가, 흔치 않은 빵 맛이다. 손을 다쳐서 다음 판을 못 하고 있는데, 며칠 뒤에 다시 시도해봐야지.

뭔가 이 기록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 다만, ‘외국에서 한달 살기’같은 뻔한 얘기 말고. ‘나를 찾아 떠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테마 말고. 얼마전 한 일본인 작가는 ‘여행을 떠나야 나의 검색어가 달라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 냈는데, 꽤 재미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무릎을 탁 치는, 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잘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야마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쩌면, 다녀온 뒤의 달라진 내 삶과 생활패턴 같은 것이 더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파리에서의 지난 한 달은, 나를 찾는다거나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의 차원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이를 갈고 떠났던 그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멋있게 살아보는 게 내 목표였다. 나를 거세게 차 버린 못된 전 애인에게 복수하듯 미녀가 돼서 나타나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본 적은 없다만…) 후회되는 순간들을, 시간이 흘러 다시 만회해 보는 것. 그렇게 내 한을 하나씩 하나씩 녹여가는 것은, 이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만한 일인 것도 같다. 뭐, 내가 원한이 있어서 다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그때로 돌아가기보단, 그때의 그 공간에서 잘 사는 모습을 실현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잘 있다 왔다. 다음에 또 간다면, 또 다르게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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