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2>

입학 직후 이야기부터 풀어 본다.

<2> 들어가긴 쉬워도 적응하긴 꽤 힘들 걸? – 공부편 2 –

필자는 원래부터 시험을 잘 보는 편은 아니었다. 눈치가 빠르고 배짱이 두둑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같은 큼직한 시험에선 성적이 좋았지만, 내신 성적이며 대학 학점이며 뭐 하나 나은 게 없었다. 기자는, 필자 입사때까지만 해도 학점이 안 좋을 수록 높이 쳐줬다. (딴 짓을 많이 해야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많을 거라는 지레짐작때문일지도…) 만일 대학원 입시를 회사 생활 거치지 않고 바로 시도했다면, 틀림없이 낙방 했을 수준이다.

대학원에 들어오니 근 8년 만에 시험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를 통으로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이랍시고) 노닐다가, 4학년 2학기던 2008년 가을에 입사를 하는 바람에 내 인생 학부 마지막 시험은 3학년 1학기 기말고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입학 이후 보는 시험이 무려 8년 만일 수 밖에. 처음 들은 강의가 통계와 컴퓨터 언어학이었는데, 공학계산기라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써 봤다. 낯설기 짝이 없는 수식을 통으로 외우고, 온갖 법칙(SVM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암기하려니 머리 속이 빙빙 돌았다. 이해를 하고, 써 내려가는 것에는 아주 능력이 뛰어났지만, 수식이라는 것들은 증명을 수 차례 해 봐도 뒤 돌아 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더구나 교수님이 “이건 다 알지?”라며 증명을 뛰어넘고 PPT의 하얀 바탕에 두둥실 띄운 공식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헛웃음이 났다.

고등학생 참고서가 가장 쉽다

수학계의 저주받은 05학번이라는 말이 있다. 2002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필자는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가 됐다. 수능이 대거 바뀌었다. 인문계로 갈 학생은 과학 과목 시험을 아예 보지 않아도 됐고, 더불어 수학에서는 무려 ‘미분과 적분’을 배우지 않아도 됐다. 2005년, 신입생을 받은 대학들은- 특히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미적분도 못 하는 애들을 어떻게 대학에 보내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그 이후 세대부터는 다시 고등학교 수학 과목에 미적분이 포함됐다.

미적분도 모르고 30년을 산 필자로선 그것이 뭐 별 거 겠느냐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입학을 한 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미적분은 단순히 수학 공식을 쉽게 풀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머릿속 알고리즘을 짜는 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곧장 교보문고로 달려가 EBS 미적분 교재를 고르는데, 종류가 너무 많았다. 남동생의 빛바랜 수학1, 수학2 정석을 꺼내다가 이공계 출신인 남편에게 과외를 받았다. 통계 공식을 일일이 증명해가며 수학의 재미라는 것을 근 십 수년 만에 다시 깨쳤다. 대학교재로 통계를 보다가 골이 아팠고, 마치 과외선생이 된 것 처럼 고교 교재를 뜯어봤다. 기초를 닦아야 그 다음 단계로도 넘어갈 수 있다. 특히 수학은 그렇다. 집에는 여전히 수학의 정석이 꽂혀있다.

코딩은 눈 말고 손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

전 편에서도 말했듯, 입학 전에 실제로 코딩을 조금은 공부했었다. 개인적으로 학원을 다니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코딩을 배우기 위해 필자가 가 본 모임은 총 두 곳이다. 첫 번째는 ‘오픈컬리지(opencollege.org)’, 두 번째는 ‘데이터그램(www.facebook.com/groups/datagram). 전자는 일종의 코워킹스페이스 같은 곳인데,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러가서 공간을 쓰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결이 좀 다르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클래스로 열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 가지를 배워보고, 여럿이 모여 특정 작업을 끝마치는 배움터 같은 곳이다. 필자의 경우 이 곳에서 글쓰기 강의를 열고, 수채를 그려보고, 그리고 코딩을 배웠다. 여기서 배운 것은 1)코드카데미(www.codecademy.com)를 통한 html 전반과 2)같은 인터넷 강의를 통한 ruby 기초다. 물론 ruby의 경우 모두 끝마치진 못했다. 코드카데미는 지금봐도 정말 속 터져나가게 하는 데 뭐 있는 것 같다. 다만 개론적인 것을 학습하기에는 꽤 괜찮은 도구다. 연구실에 들어와서 보니, 이와 같은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MOOC 등등)에 대한 연구가 HCI분야에선 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더랬다.

후자인 ‘데이터그램’은 고백컨대 딱 두 번 갔다. 오픈컬리지가 20대~30대 사람들을 주축으로, 좀 더 발랄한 분위기에서 즐기듯이 배우는 기분이었다면, 데이터그램은 30~4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하는 꽤 전문적인 스터디다. 어느 공간 하나를 잡아 놓고,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커리큘럼도 체계적으로 짜서,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골라 수강하는 체계였다.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한 부분을 맡아 발제도 해야 했다. 필자가 두 번 만 간 이유는, 사실 당시로선 그 스터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였다. 물론 지금와서 다시 간다면 할 만 할 수도 있다만, 지금은 분야가 그리 맞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시각화(visualization)에는 그리 크게 관심이 있진 않다) 무엇보다도 그 스터디에서 누군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데이터를 분석하세요?” 그때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런 질문은 학계에서도 종종 듣는다. “어떤 분야를 공부하세요?” “어떤 연구를 하시죠?” 이것이 바로 뒤에서 언급할 ‘도메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앞서 코딩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이야기해보자. 필자의 공부 방식은 지난 30년간 ‘눈으로 읽고, 손으로 기록하고, 머리로 떠올리는’ 식이었다. 연필을 굴리든 타자를 치든 그것은 오직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눈 앞에 새로운 아웃풋이 펼쳐지진 않았다. 일단 파이썬 책을 신명나게 읽고 있자니, 교수님이 뒤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다. “눈으로 코딩하네요.” 책에서 제공하는 코드를 몇 개 옮겨 쳐 가며 ‘이것 갖고 늘겠는가’ 반신반의하며 며칠을 났다. 손은 생각보다 기억에 용이한 물건이었다. 옆 자리 컴공과 출신 코딩 잘하는 친구도 “적어도 2년은 코딩 해야 저절로 손이 다음 줄을 친다”고 했다. 무조건 쳐 봐야 느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할 것인가. 입학하자마자 첫 학기(3개월) 동안 필자는 정보 시각화를 위해 HTML과 Javascript, CSS를 배워야했다. 통계 수업시간에는 R을 썼고, 컴퓨터 언어학 시간에는 텍스트 분석의 주요 언어로 Python을 썼다. 동시에 수 개의 언어를 터득해야 했다. 골치가 아플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회사에 있었다면, 회사에서 3개월 안에 이 세 가지를 끝내라고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정답은 늘 예스(Yes)였다. 적어도 d3나 Stack overflow에서 어떤 코드를 베껴다 쓰면 되는지, 그 중에 어떤 변수(parameter)를 바꾸면 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만들어 보고 싶은 것, 풀어내고 싶은 데이터에 대한 질문을 메모지에 나열해뒀다. 그리고, 이 언어들 가운데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웹에서 데이터를 긁어, 그것을 통계적으로 풀어내기에는 R이 나을 수도 있고, 웹용 간단한 익스텐션을 구현하기에는 HTML과 Javascript가 용이했다. 또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를 활용해 IoT 기기를 만들기에는 Python이 편했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Python(파이썬)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1학기 내내 다른 언어에 대해서도 꽤 탄탄하게 기초를 쌓아 두었기 때문에, 추후 R이 필요한 순간에는 거침없이 R스튜디오를 열 수 있었다. (물론 명령어가 생각나지 않아 늘 책을 다시 펼쳐봐야 한다.)

도메인(Domain)은 빠르게 굳힐 수록 좋다

1년은 생각보다 빠르다. 어쩌면 이후 1년이 더 빠르게 지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도메인에 대한 고민을 하고 또 한다. 실제 많은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세부 주제를 정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 직장을 관두고 온 당신이라면, 그래도 비교적 도메인을 빠르게 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저널리즘쪽은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 입학 후 첫 면담자리에서도 ‘저널리즘은 이제 지겹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이란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도교수는 묘한 웃음을 지었고, 그 웃음을 1년이 지난 지금은 나름 해석할 수 있다. ‘웃기고 있네’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결국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택하게 돼 있다는 법칙 때문이다.

서른 살에 새로운 학문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내 삶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을 분석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영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의학이나 지역 정보, 여성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갔다. 특히 인지언어쪽에는 학부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많은 인지언어 조차도 뇌과학이나 고급언어학, 신경학 등 파고들면 들수록 알아야할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단순히 데이터만 모아 결과값을 낸다고 해서 분석을 섣불리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 저곳 건들면 건들수록 필자가 직접 체득한 저널리즘 분야에 가장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융합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론정보학과에서 내는 페이퍼와는 확연히 다른 것을 해야 했다.

도메인이라는 것은 사람의 관심 및 연구 분야를 어느 한 곳에 가두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위에서 말했던 것 처럼,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느냐는 것에 대해 답을 던질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필자가 공부하는 HCI분야는 인간과 컴퓨터의 인터랙션(Human-Computer Interaction)을 다룬다. 그 가운데에서 도메인을 정하자면 개인적으로 감성컴퓨팅(Affective Computing), 즉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컴퓨터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주요하게 다루는 데이터는 뉴스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말하는 ‘연구 도메인’이다. 여기에서 나는 더 확장할 수 있다. 뉴스데이터의 감성 분석을 통한 인간의 인지 능력이라거나, 혹은 그 반대를 다룰 수도 있다. 정해진 도메인을 축으로 가지를 쭉쭉 뻗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꽂은 이 기둥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으려나’ 싶은 의심은 누구나 든다(고 한다).

특히 박사 과정을 진학하는 자들에게는 이 도메인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한다. 특히 몇몇 ‘레퍼런스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저작들이 어느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쓰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학부때부터 쓴 논문이 하나의 줄기처럼, 어느 특정 키워드를 타고 박사 후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와 같은 생각에 몹시 동의한다. 이것 저것 다 해 보고 써 보는 것도 좋지만, 미세하게나마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논문이 이어져야 추후 자신을 어필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영역을 강조하기에 좋다. 몇 개의 키워드로 나의 저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영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