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4>

4편에서는 다시 험난한 공부 이야기로 겁을 주겠다.

<4> 보고서 좀 써 봤다고 논문쓰며 재지 마라 – 공부편 3 –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글 쓸 일이 참 많다. 보고서에 쓰는 것도 글이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당연히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인 전개와 주장하는 바, 혹은 설명하는 내용이 뚜렷이 드러나야 하는 한 편의 논술이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경우 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글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학계에서 쓰는 글 쯤이야… 무어 어렵겠느냐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대학원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다. 절대 만만하지 않다.

사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풀 페이퍼(HCI 학회에서는 10장 짜리 형식을 모두 갖춘 논문을 풀-페이퍼 라고 일컫는다)를 쓰지 못 했다. 석사과정 중 풀 페이퍼를 제출해 유수의 학회에서 채택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아무래도 학사 때부터 끊김 없이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경우에나 그나마 가능성이 보인달까. 필자는 입학이후 10개월만인 지난 7월 초에야 처음 영어로 페이퍼라는 것을 써 봤다. 기껏 2장 짜리 숏 페이퍼지만, 실제 장수로 따지면 A4용지로 다섯장 분량이었다. 그에 앞서 지난 겨울에는 한국어로 텍스트 분석 내용을 토대로 10장 짜리 ‘논문 느낌의’ 페이퍼를 써 본 적이 있다.

어렵다. 논문 쓰기 또한 손에 익어야 하는 글쓰기다. 논문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고, 그에 따르는 근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내가 왜 이 논문을 쓰게 됐고 여기서 소개할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이 논문이 왜 새로운지를 뒷받침할 기존 연구들은 무엇이 있는지,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실험, 인터뷰 등),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그리고 이 연구의 한계점과 앞으로 어떻게 연구를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 등으로 전개할 수 있다. 말은 쉽다.

이에 앞서, 한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강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서 어떻게 쓰면 르포 기사이고, 어떻게 쓰면 논문인 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정확히 그 차이를 지적했다기보다는, ‘르포처럼 쓰지 마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사실 기사를 쓰는 것이나 논문 연구를 하는 것이나 과정상에선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그 글의 형식이 매우 다르다. 그것을 깨우친 게 지난 숏 페이퍼 작성 과정에서였다.

숏페이퍼로 말할 것 같으면, 모 학회의 포스터(Poster) 세션용 글이었다. 평소 관심있었던 연구와 실험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시험삼아 써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제출 이틀 전까지 낑낑대며 썼고, 교수님도 한 번 봐주겠다고 들고 가선 하루가 다 지난 뒤에야 “시간이 없어 고칠 수가 없다”며 알아서 내라고 하신 그런 논문이다. 그 때 교수님의 말이 이것이었다. “너무 에세이같아요. 아카데믹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아카데믹 글쓰기, 레시피는 있다

그 말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의 한 장을 읽고 나서 아주 완벽하게 이해했다. 타 학교 박사과정 친구에게 추천받아 읽은 책인데 <Human Computer Interaction: An empirical research perspective>의 8장, Writing and Publishing a Research Paper이라는 챕터였다. 아카데믹 라이팅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더 나아가 Justin Zobel의 <Writing For Computer Science>라는 책을 통해 어떤 표현은 쓰면 안 되는지, 띄어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표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어로 저술된 영어 논문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많다. 특히 표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한 권 쟁여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을 보고 나니 제출했던 그 숏 페이퍼를 다시 거둬들이고 싶을 정도로 내 논문은 참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기사 쓰듯 빚어놓은 글이었지, 아카데믹한- 소위 말하는 정형화된 글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내가 논문 시작 순간부터 써 내려가던 Abstract는 논문을 모두 쓴 뒤에 형식에 맞게 정해진 글자 수만큼 써야 하는 것이었다. 단지 글 전체를 간추린 요약문인 게 아니라, 이 글을 보게 될 사람에게 안겨줄 첫 인상 같은 부분이던 셈이다.

논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라이팅 책만 먼저 봤다고 해서 숏페이퍼가 이백프로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려 무작정 한 번 써 본 뒤 읽고 다시 써 보는 것이 백 번 도움이 됐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 번 써 보길 추천한다.

더불어 영어 논문을 쓸 때 전문 업체의 교열을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질적인 차이가 상당히 있다곤 하나, proof reading으로 검색해 나오는 곳 중 적당해 보이는 곳 하나를 골라 이용해보길 추천한다. 내가 쓴 글이 아주 새빨갛게 토막난 채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관사, 부정관사 사용법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에 대한 지적까지 아주 깨알같다. 물론, 그들이 논문을 다시 써 주지는 않는다. 문장만 더 깔끔하게, 표현은 좀 더 공식적인 것으로 바꿔줄 뿐이다. 가끔 그들이 고쳐놓은 것이 틀린 문장일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은 연구자 본인이 지는 것이다.

협업, 그 어렵고도 간지러운 것

논문을 쓰기에 앞서 일단 연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베스트 초이스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함께 아이디어를 키워가며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 주변에는 관심사가 같은 연구원이 없었다.

학사를 마치고 바로 석사, 박사로 진학한 이들을 따라잡기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협업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은 공부를 하던 가닥이 있기 때문에, 학습 능력도 비교적 뛰어나다. 뒷모습만 봐도 공부를 하는 태가 다르달까. 하지만 사회에 물 들었던 사람들은 의자에 앉는 것 부터가 일단 고역이다. 의자에는 앉았으되, 그 다음으로 해야할 것이 바로 협업인데, 그것이 필자에겐 상당히 힘든 과제였다.

개인적으로 직업병으로 판단한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일은 내 몫, 남은 못 믿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자 생활이라는 것이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진다. 기록은 끝까지 남는다. 물론 방송 취재 기자를 하다보면 촬영기자와 오디오맨, 차량 기사님, 편집기자, CG디자이너 등이 함께 어우러져 1분 30초 짜리 기사를 만들어 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취재 내용 자체는 온전히 취재기자가 판단하고 써 내려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남에게 자료를 모아오라거나 대신 무얼 알아오라는 등의 지시는 내려본 적도 없고, 그럴 배짱도 없다.

그 성격이 대학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문제는 ‘그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연구실 분위기를 보면 너도 나도 한 주제에 달려들어 누군가는 실험을 맡고, 누군가는 분석을 맡고, 다른 한 명은 라이팅(writing)을 맡고, 한 쪽에서는 포스터를 디자인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볼까 떠올렸을 땐 이미 각자 어느 곳에서 한 몫 씩 하고 있었다.

논문은 당일 밤 8시 뉴스에 나가는 기사가 아니다. 리비전을 할 시간도 충분하고, 토의를 거칠 수 있는 여유도 어느 정도 확보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더 나은 아이디어로 나아갈 수 있다. 상대가 어리다거나, 혹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이트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오히려 “저 누나는 우리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보다”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연구실은 사회 그 어느 조직보다도 좁고 밀폐된 공간이다. 뒤에서 또 이야기 할 일이 있겠지만, ‘낮 말은 앞 사람이 듣고 밤 말은 뒷사람이 듣는’ 구조가 바로 대학원 연구실이다. 협업은 필수다. 옵션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퇴사후 석사과정 생들이 유독 혼자서 끙끙대며 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네트워킹도 물론 활발하게 하려면 할 수 있다. 열 명 남짓 연구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옆 연구실, 타과 같은 분야 연구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종종 열린다. 그뿐 아니다. 해외 학회에 나가면 유독 한국인끼리 마주치는 일이 많다. (솔직히 한국인끼리는 서로 잘 알아보지 않나.) 한국인의 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학회 때 못 가 본 게 조금 아쉬웠다. 이 자리에서 연구 동향도 파악하고, 또 같이 연구를 진행할 동료를 찾을 수도 있다고 한다. 가끔 해외 논문을 보면 여러 대학 학생들이 뭉쳐 연구를 진행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이같은 네트워킹을 거쳐 뭉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학회에서 좋은 연구로 입소문이 나면, 네트워킹을 하자고 콜 해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