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2018.06.12 – 초간단 뇨끼 파스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있는 재료를 소진해야 한다. 더구나 요즘 하도 잘 먹고 다녀니는데다가 많이 돌아다녀서 체력이 딸린다. 최대한 간단하게,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을 했다. (이렇게 먹고 또 나가서 먹을 일이 생겼다는 게 문제긴 한데…)

초간단 뇨끼 파스타

재료 : 뇨끼, 버섯, 딜, 생크림 조금, 치즈 조금, 소금, 후추

레시피 : 기름을 조금만 두르고 버섯을 볶아 준다. 적당히 익으면 뇨끼도 같이 볶아준다. 2분쯤 볶은 뒤 생크림을 넣어 졸여주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치즈와 후추를 뿌려주면 끝!

포인트 : 뇨끼는 너무 퍼지면 안 된다. 여기에 양파나 마늘을 볶아줘도 개운한 맛이 날 듯. 초간단 파스타라 언제든 해 먹고 싶다. 뇨끼만 있으면….

와인 : Naturalia에서 산 Bio Bourgogne 와인!

Bourgogne Pinot Noir, appellation Contrôlée, Didier Montechovet, 2015

부르고뉴 피노답게 아주 부드럽고 신선했다. 다만 bio 와인에 대한 내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몸에 덜 나쁜 기분.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자고로 술은 몸에 안 좋은 맛이 나야 한다…) 색이 참 예쁜 장밋빛이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두 잔 째 마실때즈음 앵발리드에서 열리는 파티에 가서 엄~청 많이 마신 것이 오류이긴 한데…

(훗날 추가) 실온(20도 안팎)에 두었다가 이틀 뒤에 마셨는데, 약간 더 센 맛이 올라왔다. 시간이 갈수록 산도가 높아지는 기분이랄까(상한 것은 아니다!). 향이 더 좋아졌다.

[하루] 2018.06.12.

날이 상당히 추워졌다. 며칠 연속 비가 뿌리고, 곳곳에 홍수가 났다고 난리다.

그럼에도 부지런을 떤 하루다. 퐁피두 옆 유대인 미술관에 갔다가 오페라 근처에서 밥을 먹고, 라파예트 분위기 파악겸 잠시 구경을 하다 옆 프랭땅 백화점에서 몇가지 구르메를 사고. 그러다 로댕 미술관으로 넘어와 은정이의 가이드를 들으며 엄청 꼼꼼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고, 함께 맥주를 마시고,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고등학교 선배가 앵발리드에서 굉장한 행사를 하고 있다며 오라고 해서 갔다가, 새벽 1시 넘어서 집에 왔다. 덕분에 여기 있는 동안 못 볼 줄 알았던 화이트에펠(불이 꺼지기 전 하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에펠탑)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틀 뒤인 6월 14일 아침에 사흘 된 빵을 뜯으며(Pain은 며칠이고 먹을 수 있다. 실온에서, 천에 싸 두어야 한다!) 회고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모든 날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기 때문에, 왜곡은 없을 것이다. 미화는 있을지언정. 분명한 것은 이날 내 발이 쪼개질 듯 아팠다는 것 정도.

‘마지막주’라는 단어는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더 치열하게 선택을 해야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 선택과 고민이 서로 맞바꾼 형용사와 있느냐하면, 선택을 신중하게 하면 리스크가 크고, 고민을 치열하게 하면 머리만 아프다. 치열하게 여러 옵션들을 마구 맞부딪히게 한 뒤 몸이 가는 곳으로 따르는 게 좋고, 고민을 좀 신중하게 차분하게 하면 여러모로 멘탈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이곳 신문을 계속 읽다보면, 말장난 같은 말을 많이 접하게 된다. 너무 좋아.

유대인미술관 가는 길에 마주친 퐁피두 뒤편.

부지런히 유대인 미술관에 갔다.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00년대 초에 유대인들이 모여서 살던 큰 아파트 구역이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뒤 이들도 모두 쫓겨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이곳에서 하나의 연대를 형성하며 살았다. 미술관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기부를 한 것들로 구성이 돼 있는데, 그래도 샤갈 작품이 있을 정도로 인지도 있는 작품도 있다. 여기 와서 특히 유대인(안네 프랑크를 필두로 하는)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아졌는데, 이들이 쓰는 문자를 처음 봤다! 아랍어 같다고 해야하나, 형태가 굉장히 간결한 문양같았다. 이런 문자가 수놓인 첫 전시관은 중세시대 유대인들의 프랑스 생활을 알려주고 있었다.

1045~1105년에 프랑스 내에 Rashi of Troyes라는 이름의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었다고 한다. 1096년에 첫 학살이 있었고, ritual murder(종교적 살인)로는 1171년, 43명이 화형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쫓겨나고 돌아오고 하는 과정도 참 잦은 편인데, 프랑스의 필립 오귀스트 경이 1188년에 유대인들을 왕국에서 모두 쫓아냈고, 10년 뒤에 다시 불러들인다. 1306년에는 필립 4세가 10만 명을 쫓아냈고, 또 나중에 부른다. 쫓아내는 것은 그렇다 치고,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모두 경제적인 영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상인 커뮤니티(랍비! 탈무드!)에 대해 의지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잦은 이동을 하다가 결국 15세기 넘어가면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몇 개 있는데,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기록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드레퓌스 장군(L’affaire Dreyfus)’ 사건이다. 미술관 입구에 있는 커다란 장군 동상이 바로 드레퓌스 장군이다. 불문과 기억을 살려 보건대, 당시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신문 1면(L’aurore)에 실어 드레퓌스 장군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일종의 반유대주의의 영향으로 발생하게 됐는데, 1800년대 말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한참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일 때, 어느 한 청소부가 정보유출 문건을 줍게 된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드레퓌스 장군이 지목된다. (드레퓌스는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 문건의 암호에 D.라는 이니셜이 있었다….) 결국 그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 들어갔지만 변호인도 없이 종신형에 처해지고 유배되고 군적도 박탈된다! 2년 뒤 진범이 나타났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를 묵살해버렸다. 그리고 한 신문이 그 진범에 대한 증거자료를 대서특필한다. 당시 르 피가로도 진범은 따로있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지식인과 군부 일부 사람들 등등이 진실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고, 수년 뒤인 1906년 그는 재심끝에 무죄로 풀려나게 되고, 복권도 된다. 잘 살다가 1935년에 지병으로 별세한다. 이 사건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이야기하는 Laïcité (라이시테)라는 (그냥 사전 찾으면 ‘세속주의’로 나온다. 그것과는 좀 다르다. 정말 신문에 자주 나오는 단어다.) 정교분리 사상의 시작점이 된다. 참고로 에밀 졸라는 팡테옹에 묻혀있다고 한다.

이렇게 유대인 맞춤형(자기들이 박해당했다는 내용 중심의) 전시를 모두 보고 현재 이곳에서 열리는 특별전을 봤다. 유대인 사진가 Helmar Lerski의 전시인데, 정말 굉장했다. 제목은 <Pionnier de la lumiere>. 즉 빛의 선구자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사람이 주로 찍은 작품들이 빛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근데, 그 표현 기법도 좋지만, 사실 그의 전성기 시절에 진행한 ‘얼굴’시리즈가 나에겐 상당한 임팩트였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찍은 ‘Jews and Arabs’는, 뭔가 다른 인종의 얼굴을 콜렉트한 기분이었다. 얼핏 본 설명으로는 이게 독일 나치에 의해서 왜곡, 해석되는 결과가 됐다고 했는데 정확하게 다시 살펴봐야겠다.

한 20분을 걸어 오페라 쪽으로 향했다. 한 달 쯤 살고 나니 이제는 쪼-끔 위험한 곳도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일까. (사실 이럴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베트남식 포(PHO)를 정말 파리에서 정말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날씨도 쌀쌀한 것이 딱 적합했다. 평점이 좋은 오페라쪽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갔고(13구의 유명하다는 곳들은 별로 가고싶지 않았다) 불어도 영어도 아주 잘하는 베트남 식당 아저씨의 친절 만땅 설명을 들으며 큰 그릇에 담긴 포와 쌀푸딩, 에비앙 한 병을 들고 식탁으로 갔다. 기름이 아주 많았고, 고기가 정말 맛있었으며, 포 전체적으로 굉장히 훌륭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확실히 달랐다. 조미료만 넣는 것 같지는 않은 그런 기분. (여기도 넣긴 넣겠지만)

그리고 바로 옆에서 아주 예쁜 papiterie를 발견했다! 길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길리마르 느낌의 노트들도 있는데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아무튼 여기서 파이로트 펜 하나와 프랑스 종이로 만든 A4 사이즈 노트를 사서 나왔다. 문구덕후들은 쉬이 빠져나올 수 없는 마의 개미지옥이었다. 가격이 비싸서 다행이었다. 안그랬음 부치는 비용이 더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생라자르 지역 라파예트는 돗대기 시장이었다. 솔드 기간은 아니지만, 중국인이 워낙 많았다. 가격도 비쌌고. 조금 있다가 그저 나왔다. 오히려 바로 옆 프랭땅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카라멜과 깡파뉴 빵용 밀가루(세일중이었다)를 좀 샀다.

역시, 라파예트는 물건이 아닌 천장을 봐야한다!

로댕 미술관에서는 DANSE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은정이 말에 따르면 특히 데셍 스케치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번 밖으로 나오면 빛과 온도 등으로 인해 3년 동안 다시 수장고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 나오면 열심히 봐 줘야 한다고. 로댕은 원래 스케치를 하지 않고 바로 조각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는데, 데생도 참 좋았다. 선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실었다고 할까. 순간적인 포착 능력이 아주 굉장한 것 같았다. 특히 여러 댄서들과 친밀하게 교류한 내용이 전시됐는데, 예를 들면 이사벨라 던컨이나 하나코라 불리는 일본의 무용수, 캄보디아 무용수들 등등을 모델로 썼다. 조각은 누드인 경우가 많은데, 정말 누드 상태인 것을 보고 빚은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이 찍는 ‘생각하는 아저씨’..

파리지엔 은정이, 정말 멋있었다. 멋있었다는 말 말고 더 굉장한 표현을 써야 하는데, 내 어휘력이 그저 부족하다.

상설전도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사실 정원을 볼 시간이 없어서 좀 아쉽기는 했는데(정원이 이렇게나 넓었던가! 싶었다) 건물 안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별 가이드 은정이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한때 릴케와 마티스 등이 몰려있던 문화 레지던시 같은 곳이었는데, 로댕 추종자인 릴케 덕에 로댕이 와서 한 번 보고는 온갖 정치공작 끝에 이곳을 자신의 미술관 자리로 만들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은정이 설명은 이것보다 훨씬 친절하고 훨씬 긍정적이었다. 내 표현이 좀 러프하다) 다작을 한, 성공한 사람인만큼 당연히 자기 미술관이 갖고 싶었을 것이다.

초기 로댕의 작품들은 상당히 데코레이션이 많이 들어간, 화려한 느낌이 다수다. 그가 조수로 일하던 일종의 암흑기 시절 덕분인데, 그 스승이 이렇게나 데코라티프 한 것을 주로 했다고 한다. 보자르에 가고싶었던 로댕은 3수를 했지만 결국 떨어졌고, 각종 콩쿠르에서도 낙선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의 작품이 마치 ‘사람의 몸에 직접 석고를 뜬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 유명한 소년상이 바로 그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댕은 “인생은 40부터”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자기 스타일에 안 맞는(것으로 추정되는) 스승 아래에서 각종 항아리와 병에 조각을 새겨가며 살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작품들을 마음껏 보러갈 수 있는 지위가 된 것이 40즈음이다. 이후 각종 유명인사들과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구축해가는데, 주로 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렇게 많이 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노레 드 발작 같은… 정말 몹시 개구지게 생긴 그 얼굴! 물론 죽은 사람을 뜬 경우도 있다. 보들레르가 그 케이스다. 로댕은 그래도 산 사람을 조각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보들레르를 닮은 사람을 구해다가 작품을 진행했다는 얘기도 있단다. 또 지역마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기 때문에, 깔레의 시민들을 작업할 때도 깔레 지역 사람들을 데려다 모델로 썼다고도 한다.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면 절친인 Carriere(카리에르)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고(다만 까리에르 얼굴 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들도 몇 점 있다. 또 로댕의 기법중 하나인 아상블라쥬(assemblage)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이를테면 깔레의 시민들에 나오는 자크와 피에르 형제 오른손은 똑같은 것을 두 개 만들어 붙인 거라 한다. 일종의 공장식 느낌이 살짝 난다만, 모델링을 한 것을 여러개 뽑아서 서로 다른 것 혹은 같은 것끼리 접합한 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어로 치면 일종의 합성어, 내지 파생어인 셈이다.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 상에 피에르의 오른손 같은 것을 얹은 조각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나쁜 로댕. 로댕 나빠요. (내가 까미유 끌로델을 더 애정하기 때문에…)

정말 많이 보고 배웠다. 단테의 신곡도 한 번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로댕이 표현하는 지옥의 문이 그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은정이 설명에 따르면 아주 속이 시원할 정도로 은근한 쾌감을 불러오는 책이라고 했다. 무려 12년 전부터 알던 친구인데, 나랑 이렇게나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최고의 가이드님과 함께 해피아워 1664 밀맥주를 마시며 온갖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십수년 전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해봐야 “내 기억에 너는 이러이러했어” 정도. 대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얘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 자신의 철학과 주변의 영향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다. 앞으로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안겨준다. 에꼴 밀리테르 역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진이 1면에 실린 LeMonde를 나란히 한 부씩 산 뒤, 그렇게 헤어졌다. 솔직히 조금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리고 밤. 9시쯤 뇨끼를 열심히 크림에 굴려먹고 유기농 와인도 한 잔 하고 있는데 고교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이분이 원래 행사장 근처인 샤를드골 공항 내 호텔에만 갇혀있게 됐던 분인데, 무려, 앵발리드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앵발리드 내에서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1600개 업체 사람들에 대해 파티를 열어서였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나갔는데, 세상에, 정말 굉장했다! 이미 파티 이름부터가 Le Bel Epoque였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그 문화가 융성하던 파리 시기를 컨셉으로 하는 파티였는데, 그 시절 면도를 해주기도 하고, 그시절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도 있었다. 샴페인, 와인, 각종 핑거푸드가 넘쳐나는것도 모자라 밤 11시쯤부터는 앵발리드의 벽면에 4K 영상을 쏘는 감상회까지 열렸다. 어깨에 별이 몇 개씩 있고, 가슴팍에 훈장을 여러개 단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꽤 흥미롭게 구경하며 선배랑 깔깔대며 돌아다녔다. 정말 멋진 밤이었다. 나의 벨 에포크가 지금 바로 이 파리에서의 생활이라고 본다면, 그중 아주 멋진 장면 중 하나로 포함될 것이다. 조금 토실토실해졌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못볼 줄 알았던 화이트 에펠까지 봤다.

*얼마전 MF에게 들은 얘기. 2030년에는 파리 외곽을 도는 지하철 15호선이 생긴다고 한다. 사실 이 외곽(banlieu)를 도는 라인이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는데(있어봐야 구간구간을 지나는 트램 정도. 그마저도 남서쪽으로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쪽 아파트 가격도 폭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레시피] 2018.06.11 – 프랑스 채소로 해 본 마이스타일 라따뚜이

사실 아침~점심 내내 바쁘게 일을 하느라 빵에 무화가 잼만 얹어서 먹은 상태였다. 문제는 잠도 못자고 해서 빵을 너무 많이 먹은 것인데, 칼로리만 만만하게 생각하고 빗길에 빨래방까지 다녀왔더니 아주 배가 고팠다. 집에 있는 채소들을 모조리 썰어다가(사실 브로콜리와 가지는 넣지 못했다. 팬이 작아서.) 일단 볶아 먹었다. 엄청 맛있게 먹었다. 빵을 또 너무 많이 곁들여 먹었다. (이 나라 빵은 왜이리 맛있나요) (그나마 버터빵에 안 빠져서 다행)

프랑스 채소로 해 본 마이스타일 라따뚜이.

재료 : 회향 큰 것 반 통(이파리 포함!), 햇감자 세 알, 양송이 버섯 반 줌, 토마토 한 개, 소금 조금, 치즈 이것저것(그뤼에르와 블루치즈), 올리브유

이게 회향이다.

레시피 : 회향과 감자를 사각사각 썬다. 너무 크지 않게. 왜냐하면 팬에 구울 거니까! 올리브유를 두르고 여기에 위 두 가지를 볶고, 소금을 뿌려주고, 적당한 타이밍에 버섯과 토마토 조각들을 넣는다. 감자가 적당히 익으면 블루치즈를 넣어 살짝 녹이고(버섯과 토마토에서 물이 나와서 좋은 소스가 저절로 생긴다!), 여기에 그뤼에르를 뿌리고 회향 이파리를 살짝 얹으면 끝!

이놈의 빵이 참 맛있다. ㅠㅠ

포인트 : 토마토, 버섯, 치즈와 회향, 감자에서 나온 즙이 정말 너무나도 좋다. 빵 찍어먹으면 최고. (그래서 빵을 너무 많이 먹…) 회향은 어디선가 검색해보니 양파같다고 했는데, 양파같지는 않고, 오히려 샐러리같은 느낌이다. 적당히 익으면 고구마같은 느낌도 살짝 있다. 정말 맛있다.

그리고 프렌치 프레스 방법을 다시 알게 됐는데, 커피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바로 프레스를 하지 말고, 4~5분이 지난 뒤에 필터를 꾸욱 눌러주는 것이 더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Carte noire 한 봉지를 다 끝내가는 판인데…) 한국 가서 더 잘 해 먹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하루] 2018.06.11.

점점 현실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일을 했고, 밤잠을 설쳤고, 또 일을 했고, 메일을 발송한 뒤 빨래방에 다녀오고. 배가 고파 밥을 해 먹고 졸다가, 그대로 자고 일어나서 저녁밥으로 크래커 한 봉지와 샤블리를 한 잔 하고 있다. 지금도 파리는 빗속에 잠겨있다. 계속 비가 온다. 이곳 예보(Météo)는 Orage Orange라는 것을 발효하는데, 정말 비가 심하게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친구 말에 따르면 갈수록 열대지역화 돼 가고 있다는데, 말마따나 밤에는 비가 요란스럽게 내리고 낮에는 몹시 뜨겁다. 오늘처럼 그저 비가 계속 오는 날은, 오히려 흔치 않을 정도다.

여기 와서 참 많은 사건들이 은근히 벌어지고 있다. 특히 Pellicule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단어는 동음이의어다. ‘비듬’이라는 뜻인 동시에, ‘필름’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나는 다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필름부터. 내가 아직 미놀타 X-700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필름을 잘못 감는 바람에 사진이 통으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이래저래 찾아보니 암실이 있는 곳에서 카메라 속 필름만 빼서 현상하면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Kodak Express 를 찾아보니 꽤 여러 곳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필름현상소에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이 유독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러 오는 사람들로 늘상 북적였고, 복사(photocopie)를 하러 온 사람도 많았다. 필름을 사려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인지 뭔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았다. 아무튼, 내 필름은 잘 뽑혔지만, 이곳이 최근 인화기계를 바꾸는 바람에 내 필름을 현상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인덱스 현상은 9유로 정도여서, 오히려 세종시보다 저렴하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여기서는 사진으로 만들지 못했다.

두번째는 비듬. 이곳에 오기 한 달 전쯤 샴푸를 바꾼 적이 있다. 모링가 오일인지가 들어갔다고 해서 한 번 구매해봤는데, 그때 이후로 엄청 고생을 하고 있다. 잠시 낫는가 했지만, 미국/캐나다 학회에 갔다가 치료기간을 놓쳤고, 이후에 강남 피부과를 드나들며 무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관련 연고와 약을 처방받아 조금 나아지긴 했다. 다 나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파리 와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다시 심해졌다. (이게, 머리로 열이 올라가면서 피부를 마르게 하고, 그 결과 지루성피부염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와인을 끊을 수는 없어서(음?) 샴푸를 제대로 쓰기로 했고, 슈퍼마켓에서 Garnier Antipellicule 샴푸를 사다 썼다. 으, 그런데 잘 듣지를 않는다.

결국 오늘 빨래방에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엄청 심해, 약 성분이 빵빵한 샴푸를 줘”라고 이야기했고, “여드름이 나는 지성같은거야(grasse)? 아님 흰 가루가 떨어지는 거야(seche)?”이라는 말에 “GRASSSSSSE”라고 이야기 할 수 있던 게 몹시 뿌듯했다. (이런 표현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내 불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뜻 아닐까?) 아무튼, 일단 사 왔으니 내일 아침에 한 번 감아보고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라본다. 솔직히 알콜을 안 마시면 좀 덜 하다만… 며칠 안 남은 판에 더 다양한 와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생활불어는 이렇게 느는 것 같다. 한 달을 살기 때문에 온갖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잠시 여행만 했따면, Bonjour, Merci, Au revoir만 하다 끝났을 것이다.

오늘 밤에도 Le Meilleur Patissier(Les Professionnels)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맛있다, 실력이 좋다고 하는 디저트 가게에 가보면 대체로 덜 달다. 여기에 나온 평론가, 셰프, 파티셰들도 참가자들의 요리를 먹고 ‘너무 달다’, ‘당도가 딱 좋다’는 말을 아주 많이 한다. 이곳의 입맛은 확실히 미국 디저트와 많이 달라서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음식이 잘 되는 것일지도) 참가자 중 한 팀이 풍선 겉 면에 화이트 초콜릿을 묻혀 굳히는 방법을 썼는데, 그것을 본 피에르 에르메가 “나는 프로페셔널한 방법을 원한다”고 코멘트했다. 뭔가, 만드는 과정들도 이들에게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아주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또한 심사위원 셰프들은 재료 자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저 경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느낌.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와 멘탈이 솔직히 아주 마음에 든다. 자신의 프로페셔널리즘에 아주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아주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 너무 좋다.

나는 아직 프로페셔널이 되기엔 먼 것 같다. 오늘 친구 남편이 다니는 스타트업에 가기로 했었는데, 계속 일을 하느라 바로 직전에 취소를 했다. 저번에 대접을 후하게 받아서 꼭 보답하고 싶었는데. 한국에 가서 좋은 것들을 잔뜩 꾸려 보내야겠다. 오늘의 반성문이다.

여기도 만만치 않게 트럼프-김정은 소식에 관심이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적인, 역사적인 이야기니까! 역시, 역사는 또라이들이 만든다. (ㅋㅋ) 암튼간에, 이곳 르몽드의 인포그래픽도 볼겸. 이곳에서 출간된 책도 볼겸.

[레시피] 2018.06.10 – 버터구이 감자와 토마토 샐러드(feat.Dill)

칼로리라는 것이 폭발한다!

어제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 남편이 해준 감자/닭요리에 감동/감탄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 다양한 감자들을 안 먹어보고 있지? 그래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스타벅스에 일하러 갔다가, La Motte-piquet 역 인근에서 열리는 마르쉐에서 감자를 한 봉다리 사가지고 왔다. 흙이 묻은 감자와 묻지 않은 감자 중에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향이 아주 익숙하지만 생긴 것은 영 낯선 허브가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이 풀은 무엇일까요?”라고 올리니 이집트에 사는 선배와 뉴욕에 사는 친구가 “딜!”이라고 외쳤다. 이집트에 사는 선배는 감자, 토마토와 곁들여 먹으면 좋다고 했고, 뉴욕에 사는 친구는 햄오믈렛이나 연어오믈렛에 넣어 먹으라고 추천했다. 와, 두 가지 모두 너무나 매력적인 레시피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버터에 굴린 감자와 토마토 위에 곁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버터구이 감자와 토마토 샐러드(feat.Dill)

재료 : 싱싱한 햇감자, 싱싱한 토마토, 딜(허브!), 그리고 버터 크게 한스푼, 곁들일 빵, 소금, 후추, 각종 치즈(그뤼에르 치즈와 미몰레트)

레시피 : 감자를 작게 썰어서 보울에 담고 버터를 좀 구석구석에 쪼개 넣어주고, 치즈도 갈아주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접시로 보울을 덮어서 전자렌지에 한 10분쯤 돌린다. 350와트로 오래 돌렸다. 오븐이 없으니, 전자레인지를 적극 활용! (미니멀라이프는 ‘짱구를 잘 굴린다’는 것과 동의어다) 감자가 익으면 꺼낸다. 그리고 보울을 덮었던 접시에(설거지 하기 귀찮으니까) 토마토를 작게 사각사각 썰어놓고, 그 위에 따뜻한 감자를 올린다. 버터가 아마 치즈와 함께 액체처럼 녹아있을 것이니 그것도 위에 얹어주고… 이후 딜을 작게 뜯어서 얹으면 끝!

포인트 : 버터에 굴리면 뭐든 맛있다.

이거는 전식이었고, 본식으로는 Cordon Bleu 라는 것을 먹었다. 이건 레시피가 따로 없는 게, 마르쉐에서 파는 것을 사다가 후라이팬에 저온으로 오랫동안 그냥 데웠기 때문! 꼬르동 블루 하면 ‘르 꼬르동 블루’라는 요리학교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텐데, 그곳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프랑스식 돈까스 같은 것이다. (안에 흐르는 치즈와 햄 등등을 끼운 얇은 빵반죽을 튀긴 음식) 맛있다. 정말 맛있다. 흑흑.

지금 카모마일티 마시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좀, 위안이 될까? (…그럴리 없잖아.)

[하루] 2018.06.10.

여기 와서 몸살감기에 목감기 심하게 앓아보고, 새끼 발톱도 들려보고, 게다가 한국에서부터 앓기 시작한 지루성피부염까지 (와인 덕분에) 계속되고 있다만, 지금 현재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모기’다. 전에도 쓴 적 있지만, 누가 파리에 모기가 없다고 했나! (내가 그랬었나) 여기 모기, 엄청 독하다. 이 나쁜 것들은 특히 제일 가려운 발가락, 발 옆, 아킬레스건 같은 곳만 문다. (그것도 왼쪽발만. 대체 내 왼쪽 발에 무슨 일이…. 발톱이 들린 뒤에 피냄새가 나서 그런가!)

이곳 모기약이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모기퇴치기라고 해서 수컷모기소리 같은 것을 내는 기계가 있다고 한다. (엑스스톱 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 블로거의 리뷰에 따르면 “이 기계 모기소리는 불어로 나오나요? 한국에서는 전혀 안 먹혀요”라고 한다.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에 블로거의 질문대로 모기들이 동네마다 다른 소릴 낸다면, 프랑스에서는 잘 들지도 모르겠다만…. 굳이 살 필요 없이 일본에서 전에 사 온 호빵맨 패치만 묻히고 있다. 정 안 되면 프랑스 약국에 가서 호랑이연고를 사 올 예정이다. 그게 여기 있다는 게 더 신기하다. 파리엔 참 없는 게 없다.

일주일 남았다. 남은 날을 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달력에 눈이 간다. 벌써부터 아쉽다고 할까. 쌓여가는 짐꾸러미를 부칠 생각에 머리가 아파서 그런 것일까. 어찌됐든 오늘은 남들 다 하지만 안 해본 일, 무려 이 곳의 스타벅스(!)에 다녀왔다. 역시나 파리 감성의 예쁜 굿즈도 많고, 무려 르완다 커피도 팔고 있으며(한국에도 들어오겠지?), 베이커리는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하다. (크로와상이 1.3유로다. 일반 불랑제리와 같은 값!) 일할 것이 좀 있어서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와 레몬케이크 한 조각을 시켜 자리에 앉아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인 특유의 ‘내려치듯 또닥또닥거리는’ 랩탑 키 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이 커피라는 것이 참 다르다. 파리에서 나는 주로 슈퍼에서 산 가루커피(Carte noire)를 크-게 한 스푼 떠서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로 마신다. 아니면 카페에 가서 카페 알롱제(에스프레소+뜨거운 물 느낌)도 아닌, 무려 카페(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그럼 훨씬 더 카페인이 높을 것만 같은데,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니 손이 떨리고 정신이 알딸딸했다. 오랜만에 너무 미국스러운 커피를 마셨나보다. 평소에는 커피를 몇 잔씩 마셨는데, 오늘은 딱 거기까지였다. ‘미국사람은 일을 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유러피안은 쉬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는 썰을 몸소 체험했다.

몸이 후들거리면 뭔가 칼로리 높은 것이 당기는 법이다. 사실 맥도널드에 가서 ‘정말 파리같지 않은 하루를 보내볼까’ 싶었지만, 대신 할랄식으로 요리한 케밥 샌드위치 집에 갔다. 퉁명스런 사장님은 꼬챙이에 꽂혀있던 고기를 착착 썰어다 철판에 화라락 구운 뒤 양상추, 토마토, 케찹을 얹은 빵에 툭 얹어서 막 튀긴 감자튀김과 함께 포장을 해 줬다. 여기에 제로 콜라까지 들고 이곳의 육군사관학교(Ecole militaire)와 유네스코 사이 잔디밭 벤치에 앉으니 에펠탑이 코 앞. 요며칠 날은 좋은데 좀 습하다. 그래서 에펠탑이 크고 뿌옇게 보였다. 미리 올라가보길 잘 했다.

케밥 샌드위치는 이렇게 밖에서 먹어야 한다. 고기들이 잘게 썰려서 흘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먹으면 치우기도 번거롭고, 양도 워낙 많다보니 처치가 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에펠탑을 보면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날아오는 게 아니다. 달려온다) 까마귀를 경험하면서, 주말을 맞아 죽도록 뛰는 파리지앙들을 관찰하면서, 잔디에 널부러진 사람들을 걱정하면서(모기 물릴까봐), 그렇게 샌드위치를 한 입씩 물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수거 차량은 계속 파리 시내를 도는데, 차가 막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돼 좀 미안했다. 그들은 어느정도 비닐이 차면 쓰레기를 수거해간다. 뭐, 내가 버린 휴지통은 아직 비우기엔 한참 남은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와 각종 베이킹 도구와 부엌용품을 한국 사이트에서 한국 집으로 주문했다. 내가 돌아갈때 즈음이면 모두 잘 도착해 있겠지. 사실 이곳에서 사가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그 짐을 다 이고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나같은 아마추어가 엄청 좋은 프랑스제품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간지, 그런거 다 필요없다). 적당히 FDA승인 받고, 안 좋은 물질 안 나오는 괜찮은 도구들을 한국에서 사서 써도 충분할 것 같았다(나중에 실력 좋아지면 그 때 사지 뭐). 솔직히 와인잔을 엄청 사 가고 싶은데, 제대로 들고 갈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한국에서 파는 프랑스 와인잔 몇 개도 주문했다. 대신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여기서 좀 쇼핑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리조또용 이탈리아 쌀이라든지, 질 좋은 디저트 와인이랄지. 택배가 하나 둘 집에 도착하면 우리 오빠는 깜짝 놀라겠지.

나달은 오늘로써 열 한 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을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며칠전 르몽드에 실린 그의 롤랑가로스 결승 진출 기사에 따르면 “지난 13년 동안 머리숱은 줄었어도 반다나(머리띠)는 계속 있어왔다. 그리고 그는 힘도 몸도 많이 쓰는 플레이라 왕좌를 오래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계속 뒤엎고 있다”고 했다. 나와 동갑내기임에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나달의 뒷머리가 영 안쓰러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테니스를 잘 하니 됐다. 탈모가 대수냐!

[하루] 2018.06.09.

대접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뭔가 빚을 진 것만 같고, 동시에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정성과 사랑을 듬뿍 받고 나면, 아, 정말 나도 이렇게까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늘 내 자신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언어 교환으로 만난 프랑스 현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거의 십 년 넘게 계속 연락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모두 고마울 따름.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그 사이 이 친구도 수 년 전부터 함께 살던 남친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나는 애초부터 ‘어린이’라는 존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제 겨우 15개월이 된 이 아이(Hugo!)는 나를 보는 순간부터 계~속 웃었다. 그리고 계~속 안겼다. 이런 어린이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아빠가 워낙 사랑을 많이 주나 싶기도 하고.

이런 선물까지 받았다ㅠㅠ!!

오늘은 이 친구와 함께 샹젤리제에서 만났다. 이 친구가 구한 티켓으로 입생로랑이 작업하던 곳에 차려진 전시를 둘러봤다. 친구는 입생로랑이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가장 좋다고 했다. 가장 파리스럽고, 가장 고급스럽고, 또 가장 우아하기 때문이란다. 전에 디올 전시회를 간 적이 있는데, 오히려 너무 실험적이고, 너무 색깔이 짙어서 외려 파리지앙 느낌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입생로랑은 꾸준히 엘레강트한 본질을 쫓아 왔다고 한다.

나로선 제일 인상적인 곳이 바로 입생로랑의 작업실이었다. 그는 성공 이후 사실상 자신의 작업실에 숨어있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후 마라케시로 간 것도, 그의 파트너인 피에르 베르제가 입생로랑의 심멘탈을 고려해“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자”고 해서 옮긴 것이라 한다. 당시 마라케시는 ‘la Belle-Epoque’였다고 한다. 지금도 마라케시에 가면 푸른 색과 엄청난 콜렉션으로 가득한 입생로랑의 작업실 겸 집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작업실 책장에 보면 일본 서적도 상당히 많고 또 얼마 전 내가 전시를 다녀온 ‘자오 우키’ 화집도 꽂혀 있었다. 입생 로랑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피카소, 제일 선호하는 소설가는 마르셀 프루스트라고 한다.

이 곳, 파리에서의 모든 일들이 하나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 참 좋다. 이번 전시를 보고 나는 입생로랑의 전기를 읽고 싶어졌고, 그의 파트너인 피에르 베르제가 궁금해졌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고싶어졌다. 물론 그의 컬렉션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모든 일은 자신에게 맞게 치러져야 하는 법이다. 하도 경험이 많아서, 어디까지가 내 영역인지를 잘 안다. 대신 그의 의상과 장신구, 과거 패션쇼 영상 등을 감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아티스트들에 대한 오마쥬 시리즈도 참 좋았고(말미에 피카소, 카티스, 몬드리안, 브라크 등 네 점이 전시돼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 특징을 잘 잡아내나 싶었다) 또한 그리스 여신의 의상을 본딴 의상은 놀랍기까지 했다. 입생로랑이 71세에 사망했는데, 거의 50년을 디자인하면서 한결같은 그의 색채가 있었다. 그것이 정말 여러 컨셉의 의상에서 하나같이 나타났다. 그래서 입생로랑, 입생로랑 하나보다.

이후 우리는 샹젤리제에 있는 라듀레(LaDuree)로 갔다. 식사를 하러 2층을 올라갔는데, 정말 전통적인 프랑스 궁정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다. 인테리어도 아주 정통이고, 방들도 각각 나뉘어 있었으며, 화장실이 정말 예뻤다. 웨이터의 매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와인을 주문했는데, 꼭 맛을 한 번 보게 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갔던 대부분의 brasserie들은 이런 일이 없었다) 또 내가 주문한 포메롤 세컨 와인이 다 떨어졌다며, 그 대체재로 생테밀리옹 그랑크뤼 와인을 따서 같은 값에 주었다. 음식도 좋았다. 내가 먹은 소고기 버거는 정말 그 식감이 잘 살아있었고, 채소류도 좋았다. 와인과 함께 나온 땅콩류(noisettes)가 특히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포장까지 해 왔다. (그리고 축구를 보며 먹었다) 디저트는 말할 것도 없다. 크림이 잔뜩 올라간 프랑부아즈 아이스크림과 마카롱(fleur d’orange) 모두 정말 적당히 달고, 노골적이지 않은 풍미가 있었다. 이곳의 디저트는 이렇게 ‘너무 달지 않은’ 느낌이라 좋다. 따지고보면 뉴욕과는 정반대다. 그렇게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과거 태국대사관이었던 고급진 샹젤리제의 대저택은 아베크롬비의 상점이 돼 있었다. H&M의 의류는 한국보다 저렴하고 한국보다 컬렉션이 다양했으며, 심지어 한국에 들어온 것보다 예뻤다. (그리고 질도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똑같겠지만….) 겔랑 매장 2층은 정말 오래된 부티크의 느낌이었고, 그리고 겔랑 회장은 인종차별을 좀 하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참고로 샹젤리제 지역에 G로 시작하는 가게는 유색인종을 들여보내지 않는데(이를테면 “아, 지금 자리가 없어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별을 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우경화되고, 극단적여지는 경향이 있는 셈이다) 어찌됐든 파리 생제르망 매장은 정말 크고 붐볐다. 모든 쇼핑백을 스탬플러로 꼼꼼하게 찍어야 하는 이유를 알 것처럼 물욕이 일게끔 하는 매력이 있었다. 결국 나는 Mbappe의 수건을 샀다. 그가 설령 이적할지언정, 월드컵때는 그의 파리생제르망 수건을 들고 응원해야지. (그리고 그가 오늘 프랑스-미국 평가전에서 유일하게 골을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Issy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그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고(구면이다! 뭔가 훨씬 더 듬직해져 있었다. 아빠가 되어서 그런지.) 그의 너무나도 예쁜 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15개월 된 남자아이인데, 어찌나 생글생글 웃는지 내가 다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기천사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일까. 심지어 나에게 계속 다가와 안아달라고 하는데, 너무 고마웠다. 아이를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이 아이는 커나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싶을 정도로 정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좋아하는구나, 싶은 공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친구의 남편이 요리를 했다. 전식으로 프로슈토를 올린 프랑스 멜론을 먹었다. 짠맛과 단맛, 약간의 텁텁함이 어찌나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뽐내던지, 식감도 맛도 향도 다 좋았다. 이후 그가 요리한 닭 구이 요리가 나왔다! 닭을 통째로 20분(각각의 다리), 40분씩(몸통 중심으로) 구웠는데, 닭 내부에 버터를 넣어서 바깥의 닭 껍질이 노릇노릇하게 튀겨지도록 했다고 한다. 또 내가 보는 앞에서 해체식을 했는데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정말 손질을 너무나도 잘 했다. (그러고보니 프랑스에 사는 내 친구들의 남친/남편들은 다들 요리를 좋아한다!) 여기에 감자 구운 것을 곁들이고, 마늘과 버터와 올리브를 섞은 소스, 토마토 소스 등을 함께 먹으니 정말 환상적인 한 끼였다.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후 디저트까지 아주 야무지게 다 먹었다. 여기에, 집까지 그들의 자동차로 오는 호사까지 누렸다.

여기서 잠깐! 프랑스의 주거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아파트/주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파트도 같은 층이든 같은 호수든 할 것 없이 형태가 아주 다양하다. 법적으로 ‘일률적인’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사를 다닐 때마다 그 집에 맞는 가구를 새로 해야 하는 고충이 있기는 하다고. 어쩌면 그 덕에 이케아(IKEA)와 같은 저렴한 가격의 디자인 가구가 잘 팔리는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이러한 이유로 주거보조 및 주거 복지가 비교적 잘 돼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두가 다양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아파트 구조들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진다.

이곳의 아파트 가격은, 파리 시내를 기준으로 하면 뭐 세계 제일가는 부동산 가격을 자랑한다. 얼마 전에 본 부동산 정보에 따르면 40제곱미터(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사는 집이다. 우리로 치면 18평형대지만, 느낌은 훨씬 넓다. 전용면적으로 친 듯도 하다)가 우리 돈으로 매매가 6억 5천 정도(루브르 옆). 물론 커미션도 든든하게 떼어주는 것 같기는 하다. 내 친구가 사는 집은 Issy 지역(Paris 2존)으로, 에펠탑까지 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한 달에 내가 지금 사는 것과 같이 우리돈으로 월세 120만원 정도 내는데, 지금 내가 사는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6층짜리 아파트고, 부엌과 거실, 테라스(옥상이라서 전용 테라스가 있다!), 그리고 방 두 개에 예쁜 욕실까지 딸려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쁜 집인데, 2013년부터 살았고, 살고싶을 때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집주인은 가격을 올리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구매를 하려면 상당히 비싼 집이라고 했다.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친구는 ‘다음 세대를 위해’ 하이브리드 차를 최근 구매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RAV4 같은 차량인데, 모델 명은 다르다.) 오가닉 푸드만 먹는데, 짬이 되면 차를 타고 30~40분 정도 나가 농장에서 직접 사다 먹는다고 했다. 마트에서는 AB Bio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사라고 했다.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다음 세대라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집 테라스에서는 프랑부아즈(산딸기류)를 키우고, 차를 끓여 먹을 수 있는 동양자스민과 향이 진한 서양자스민을 함께 가꾸고 있으며, 철이 되면 매운 고추를 따다가 음식을 한다고 했다. 향신료로 쓰는 C로 시작하는 독특한 풀도 있었는데, 동남아 지역 음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잎을 꺾으면 줄기에서 향이 강하게 났다. 건강하게, 좋은 것을 챙겨 먹고 살며,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이곳의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레시피] 2018.06.08 – 갈릭버터 대구 구이

생선요리를 한 번 해 먹어봤다. 외국에 오면 흰살 생선이 또 엄청 맛있는데, 마침 마켓에 갔더니 대구를 잘 손질해 팔고 있었다. 사실 대구는 오븐에 굽거나, 증기로 찌는 레시피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살이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후라이팬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굽는 쪽을 택해야 했다. 살이 좀 흩어지긴 했지만 풍미는 충분히 살았다.

갈릭버터 대구 구이

재료 : 대구 손질 한 것 한 팩(200g), 버터, 마늘 다섯 쪽, 레몬 반 쪽, 소금, 후추, 올리브유, Piment d’espelette(아주 가는 고춧가루 같은 느낌)

레시피 : 버터를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 녹인 뒤 마늘을 잘게 다져 넣고 레몬 즙을 뿌려둔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생선이 붙으면 안 되므로)에 대구를 굽고 그 위에 버터소스를 얹은 뒤 소금과 후추, 매운 양념(piment d’espelette. 없으면 우리나라 고춧가루 아주 가늘게 간 것)을 뿌려준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것을 고춧가루로 잡아주기 위해 첨가했다. 약불로 천천히 익혀준 뒤 한 번 뒤집어 준다. (솔직히 안 뒤집어줘도 될 것 같다. 뒤집어서 생선이 부서진 것도 있다) 이후 반대편에도 소금과 후추, 갈릭버터 소스를 간해준다. 너무 오래 익히진 말고, 적당히 마늘이 익을 정도가 되면 그릇에 던다.

포인트 : 불이 관건이다. 너무 바삭하게 하면 생선이 튀겨지는데, 프랑스에서 생선요리를 먹어보면 대부분 생선을 튀기기보단 대부분 부드럽게 익혀서 먹는 느낌이다. 그래야 소스를 얹어서 먹었을 때 그 풍미가 더 좋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같이 먹은 바게트와 샤블리가 정말 인생 바게트, 인생 샤블리였다.

와인 : Bastion de l’oratoire Chanson CHABLIS 2016인데, 마트에서 이것만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길래 구입했더니 역시나, 잘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18.50유로 정도 한다. 한국에서 괜찮은 샤블리를 2만원 대에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데…. 한국에 사가고 싶은 샤블리다.

바게트 : 바게트는 Lecoubre 지역에 있는, 상 받은 걸로 간판을 가득 메운 집이다. 일단 2017년 크로와상 대회 우승을 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과연, 정말 느끼하지도 않고 살이 안 찔 것처럼 맛있었다. 그 외에도 bio 대회에서도 우승했고, 밀풰유로도 우승했다는데, 밀풰유의 경우 2유로가 조금 넘는 정도다! 바게트와 크로와상 합쳐서 2유로밖에 안 한 것도 놀랍고.

여튼, 바게트 속이 이렇게나 촉촉하고 겹겹이 살아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너무 맛있다.

[하루] 2018.06.08.

파리에는 모기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모기를 벌써 곳곳에 물려서 잠을 설칠 정도다. 일본에서 사온 호빵맨 패치를 붙여보기는 하는데 그다지 소용이 없다. 호랑이연고를 팔던데, 그거라도 사다가 발라야 할 지경이다. 하필 발가락을 물렸다.

오늘은 동네 탐방을 살짝 다녀왔다. 거의 새벽 5시쯤 잠에서 깼다가, 신문을 좀 읽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일어난 시간이 11시쯤이었다. 오늘은 집밥을 좀 해 먹을 계획이라 모노프리가 있는 Lecourbe 구역으로 넘어갔다.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도보로 충분히 갈 만 하다. 이미 사람들은 오전 활동을 마칠 시간대인지라, 점심밥을 찾아 나선 무리로 카페마다 붐볐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테이크아웃하는 가게는 일찌감치 줄을 서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가게는 La Maison Pichard라고 하는 빵집이었다. 근방에 갈 때마다 문을 닫아서(월/화 문을 닫는다) 빵을 사 먹어 보진 못했는데, 간판에 온갖 상받은 내역이 써 있는 집이다. 이를테면 2017년에는 크로와상으로 우승을 했고, 2011년에는 밀풰유로 상을 받았단다. Bio 빵으로도 우승 전력이 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밀풰유 하나에 2유로가 조금 넘고, 크로와상은 1.2유로. 맛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크로와상은 바로 사서 길에서 먹었는데, 이렇게 살 안 찔 것 같은, 달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고 버터가 줄줄 흐르지도 않는 깔끔한 크로와상은 정말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바게트는, 내 인생 바게트였다.

모노프리에서는 각종 채소를 샀다. 점심으로 해 먹을 대구 살을 사고, 토마토와 브로콜리, 또 우리말로 회향이라 불리는 희한하게 생긴 채소도 샀다. 회향 레시피를 찾아보니 감자와 함께 볶아 먹거나, 아니면 매쉬드 포테이토를 한 뒤 이파리를 뿌려 먹는 것도 좋다고 한다. 내일 마르쉐에 가서 감자를 좀 사다가 해먹어 봐야겠다. Bio로 산 것이 좀 있는데, 대부분 가격이 일반 야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좋다. 고모 말에 따르면 스페인 채소는 농약이 좀 많다고 하니, 일단 피하고 있다.

10년 전에 왔을 땐 늘 간식에 눈이 갔었다. 간단하게 칼로리를 채우기 좋으니까. 그땐 대체 뭘 해먹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어떤 요리를 할지 구상해가면서 재료를 사고 있다. 아직도 버리는 채소가 좀 나오고 있다만, 그건 혼자 해먹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점심에는 대구 구이를 해 먹고, 저녁에는 구운채소와 치즈를 바른 오픈 샌드위치를 할 것이다. 이게 오늘 나의 플랜이다. 다만 저녁 6시인 지금, 여전히 배가 불러서 아무래도 저녁 밥은 패스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런가.

종일 TV를 틀어놓고 롤랑가로스 남자 준결승전을 보고 있다. 팀과 체키나토는 정말 죽기살기로 오랫동안 경기를 했다. 오늘 날이 참 더운데, 고생들이 많다. 그에 비해 나달은 델 포토를 상대로 꽤 쉽게쉽게 이기고 있다. 결승전때는 포스트 나달이라 불리는 팀이 리얼 나달을 꺾게 될지 궁금하다. 나달은 땀을 너무 많이 흘린다. 그를 보고 있으면 테니스는 정말 할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코비치때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정말 온몸 스포츠다. 아무튼 나달의 공은 정말 날카롭다. 델 포토가 상대적으로 둔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다만. 덩치가 아주 큰 것(델 포토는 198cm다)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밤에는 이 친구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 간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 있는 오디토리움에서 한다. 자리가 350~1000석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기대가 된다.

Sélim Mazari 라고 하는, 프랑스의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다.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PROGRAMMATION

Ludwig van Beethoven
Sonate n° 16, op.31 n°1

Ludwig van Beethoven
Sonate N°31 op.110

—–entracte—–

Domenico Scarlatti
3 sonates
Sonate en si mineur K.87 (L33)
Sonate en la majeur K. 113 (L345)
Sonate en mi majeur K. 162 (L21)

Claude Debussy
Images 

이 공연장에서는 2017년 10월 27일에 조성진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PROGRAMME

Ludwig van Beethoven
Sonate n°8 op.13 « Pathétique »

Ludwig van Beethoven
Sonate n°30 op.109

—– pause —–

Frédéric Chopin
Ballades

그리고, 지금 공연장 다녀와서, 와인 한 잔 마시며 쓴다.

클래식을 잘 알지는 못한다. 속어중에 관심받고싶어하는 사람을 뜻하는 ‘관심 종자’를 줄여 ‘관종’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종관’, 즉 ‘종합관심인’인듯. 아, 내가 한때 싫어라하던 사람 이름이랑 같으니 굳이 내 닉네임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그래도 살면서 클래식을 접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중학교때 방송반을 했는데, 그때 학교에서 오직 ‘클래식’만 점심시간에 내보내도록 했다. 그래서 그때 클래식을 참 많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플룻도 했고, 중학교때 그걸로 대회도 나갔으니 웬만치 익숙한 클래식 곡이 좀 있는 편이다. 고등학교 방송반 때도 ‘고전음악실’과 ‘오늘의 명곡’ 이라는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후자의 경우 음악선생님의 셀렉션에 따른 곡을 틀었다) 대학에 가서도 툭하면 음대 도서관에 갔는데, 그 이유는 그 도서관이 시험기간에 유일하게 자리가 좀 남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클래식을 접할 일은 계속 있어왔다. 기자 생활 하면서도 그렇고.

그래서 나름 내 입맛이라는 게 생긴 것 같다. 이를테면, 관현악도 좋지만 솔리스트 리사이틀도 좋아한다. 오늘 셀림 마자리의 공연은 오직 피아노 하나로 소형 홀을 가득 채우는 공연이었다. 아주 젊은 친구 같아 보였는데, 아무리 biography를 찾아봐도 나이가 나오질 않는다. 뭐, 대략 20대쯤 되겠지. 연주가 정말 부드럽고, 중간 중간 포즈(pause)도 많은 편이다. ‘얼굴로 치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은데, 이 친구도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그런지 좀 그런 경향이 보였고. 기술이 엄청 필요한 곡들도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 내가 평가할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 베토벤 소나타 N.31 op.110은 정말 소름끼쳤다. 이후 드뷔시의 Image 시리즈는, 어째 낯이 익다했더니 내가 늘 듣던 조성진의 드뷔시 앨범에 수록된 곡과 같은 것이었다. 조성진은 좀 더 꾹꾹 눌러서 강하게 치는 느낌이라면, 이 친구는 좀 더 가볍게 친다. 음, 곡 해석이 좀 다른가보다. 나는 파워풀한 게 더 좋다. 곡 내용을 좀 더 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연주 공간과 곡 셀렉션이 참 잘 어울렸다. 물방울이 튀기는 듯한 Scarlatti 곡은 연주 무대 너머로 보이는, 물이 졸졸졸 흘러 내려오는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의 외부 디자인과 참 잘 어울렸다. 사람들은 곡을 한참 듣다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했다. 파리의 석양은 유독 분홍빛이 강한데, 그 분홍빛이 오라토리움 창 밖과 물가를 감쌌다.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최고였다. 주변에 걸린 작품들은 모두 단색들이었고, 연주자 뒤에는 단조로운 듯 강한 느낌을 주는 벽이 설치돼 있었다. 내 옆자리 아저씨는 연필로 이 장면들을 스케치했고, 내 앞쪽에 앉은 일본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자분은 애인(또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 잠들다 감상하다 했다. 둘이 정말 사랑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연은 거들뿐!) 빛도 좋고, 의자도 편하고, 사람들도 좋았던 공연이었다.

그리고, 드뷔시 곡을 좀 더 들어봐야겠다.

[하루] 2018.06.07.

망자의 흔적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날이 아주 맑게 갰다. 이곳에서 산, 꽃무늬가 수놓인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편한 신발을 신고, 카메라와 물 한 병을 챙겨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전에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가 본 적이 있다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에 가보기로 했다. 평소에 잘 가지 않는 10구(République 근방), 11구 쪽으로 향했다. 이쪽 지역은 Gard du nord쪽과 마찬가지로 내게 ‘위험한 곳’으로 기억이 박혀있었기 때문에 잘 오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얼마 전, 공연 보러 라빌레트 공원(19구)쪽으로 가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퇴근시간에 이곳 주민들과 얽혀 트램을 탔는데, 정말 사람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확 왔다. 페르 라셰즈 인근도 그랬다. 유명한 관광지 근방이긴 하지만, 정말 사람이 사는 곳. 그래서, 이 곳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10구 지역에서 총기테러가 있었다는 게 너무나 충격이었다.

페르 라셰즈에서 사람들이 주로 찾아가는 곳은 짐 모리슨(the doors 멤버)의 묘인데,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묘역이 정말 엄청 복잡하다. 맵을 사진으로 찍었기에 망정이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주는 종이 지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내 경우 가장 보고 싶던 곳은 에디트 피아프의 묘였다. 전에 마리옹 꼬띠아르가 열연한 ‘라 비 앙 로즈’를 몹시 인상깊게 보기도 했고, 에디트 피아프의 곡들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들어간 동쪽 문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풍경을 보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그래서 짐 모리슨은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는 길에 쇼팽의 묘가 있었다. 꽤 안쪽에 있어서 놓칠 뻔 했는데, 사람들이 좀 몰린 곳을 갔더니 그곳에 있었다. 폴란드의 영웅이자 자부심, 폴란드가 낳은 음악가로 불리는 쇼팽의 묘는 참 관리가 잘 돼 있엇다. 내 앞에 일본인 관광객 아주머니 셋이서 조용조용히 이 묘를 바라보며 사진을 남기며 좋아하고 있었다. 보물찾기를 하듯 어렵게 찾아서 그런지, 나도 무덤앞에서 은근히 즐거움을 느꼈다. 참고로 여기에 쇼팽의 ‘심장’은 없다. 그의 시신은 여기에 있지만, 심장은 폴란드로 옮겨졌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남쪽 방향으로 향하게 됐는데, 가다 보니 낯 익은 얼굴이 걸린 묘가 있었다. 1957-2015. 일명 Tagnous라고 불리던 이의 묘지다. 그 앞에는 누구에게나 참 익숙한 그림체의 얼굴도 함께 있었다. 그렇다. 그는 2015년 1월, 레알 지구의 ‘샤를리 엡도’ 총기 테러로 숨진 이 언론사의 만화가다. 그가 그린 샤를리 엡도 표지의 그림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극단주의적인 표현은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테러로 죽어서는 안 됐다. 테러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전쟁과 더불어, 인간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끔찍한 행위다.

조금 더 가니 젊은 저널리스트의 묘도 있었다. Victor Noir(1848-1870)라는 자다. 르 마르셰이예즈라는 신문의 기자였고, 나폴레옹3세가 멸망하게 되는데 영향을 미친 암살사건의 피해자다. 약간 소름끼치게시리, 그의 살아있을 적 모습을 관 위에 그대로 재현한 듯한 모습이 조각돼 있었다. 찾아보니 그가 총을 맞아 쓰러졌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난 많은 이들이 그의 코와 입술을 만지고, 신발 끝을 쓰다듬어 금빛이 나게 했다. 몇몇 짓궂은 이들은 그의 가랑이쪽을 손으로 훔쳐낸 모양이었다. 나중에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여길 만져야 ‘다산’을 한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바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이자 전설적인 매력남, 오스카 와일드의 묘가 있었다. 그 많던 키스 자국은 다 지워졌고, 대신 유리막이 설치됐다. 이 유리막에도 키스자국이 다소 있었다. “가족들이 청소비를 내니, 되도록 깨끗하게 봐 달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그의 묘비석은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올법한 날개달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묘비문은 이렇게 써 있었다.

“And after tears fill for him
Pity’s long broken urn.
For his mourners will all be outcast men,
And outcasts always mourn.”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의 묘에 도착했다. 그의 어린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함께 묻혀있는 가족 묘다. 이곳에 수놓인 빨간 꽃이 참 어울렸다. 에디트 피아프가 자주 발랐을 립스틱 색깔 같다고 할까. 어쩌면 정말 불행하게 살았던 비련의 여인이지만, 묘역은 그 시절 고통을 다 지운 듯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묘지 전체적으로 크고 높은 나무가 많고, 그런 가운데 해도 잘 들어서, 에디트 피아프가 묻힌 곳 만큼은 다른 구역에 비해 이끼가 많이 낀다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깔끔했다.

페르 라셰즈에 두 시간 정도 머물렀나보다. 500ml 물 한 병을 비우고, 풀냄새를 실컷 마셨다. 정말 평화로웠다. 우리 집안 가족묘도 이런 공원묘지에 있는데(물론 나는 출가외인이기 때문에 여기 묻히지는 못한다) 그곳도 가보면 정말 좋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가족들이 소풍오듯 할아버지를 찾아왔으면 좋겠다면서 마련해둔 곳이었다. 페르 라셰즈에 묻힐 수 있는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반 가족들도 있는 것 같고, 세계대전으로, 혹은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죽은 이들도 많이 묻혀있다. 이곳 묘지를 천천히 돌아보는 프랑스 어르신도 몇 분 봤다.

가족묘인데, 강아지도 함께 묻힌 모양이다

명색이 불문과 출신인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 정도는 들러야한다고 생각. (오노레 드 발자크, 이브 몽땅은 전부 지나쳐놓고…)

한 30분 정도 도시를 더 걸었다. 볼테르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Voltaire Lycee)를 지나, 지하철 역 몇 개를 지나, 배고픈 시간임에도 꽤 저렴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카페들의 유혹도 뿌리치고 10구의 작은 카페, Le Carillon에 다다랐다. 식사를 할 요량으로 갔는데, 막상 밥류는 팔지 않았다. 건너편 이탈리아 피자집에서 마르게리타 한 판을 다 먹고 카페로 넘어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곳이 바로, 2015년 11월 13일 저녁, 파리 전역에서 벌어진 총격 테러의 장소다.

당시 테러의 시작은 밤 9시 20분, 프랑스 북쪽 생드니 Stade de France에서의 자살폭탄테러에서였다. 출입구에서 폭탄이 터졌던 것인데, 그곳에는 프랑소와 올랑드 대통령도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축구 친선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이곳에서 사망한 사람은 없지만, 5분 뒤 바로 이 카페와 이 옆 캄보디아 식당을 향해 자객들이 총기를 난사했다. 그 밖에도 11구에 있는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바타클랑(Bataclan) 공연장에서의 총격을 비롯해 파리 시내에서만 모두 6곳에서 테러가 벌어졌다. 사망자는 130명, 부상자는 353명에 달했다. 사망자의 평균 나이는 35세. 4000명의 파리지엥이 테러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비롯한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카페와, 바로 옆 캄보디아 식당 두 곳과 이 길거리 인근에서 사망한 사람 수만 39명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20분 동안 400발의 총격이 가해졌다고 한다. 끔찍하다. 바로 앞에 종합병원이 있어서 대처는 조금 빨랐겠지만, 이 고요하고 조용한 골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내가 앉아 평화롭게 커피를 마신, 바로 이 노천 자리에 있었던 시민은 아마 즉사했겠지. 구글을 찾아보니 저녁이면 이곳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리고 캄보디아 식당은 점심때도 무척이나 붐비던데. 너무 끔찍했다. 정말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될 일이다.

이후 République를 지나 마레를 넘어 레알 지역으로 갔다. 베이킹에 필요한 몇몇 재료를 좀 사고 싶어서였는데, 와인이 유명하다는 Le Comptoir du terroir는 ‘폐점 세일’을 하고 있었다! 하얀 머리털+수염이 인상적인 사장님은 곧 캘리포니아로 떠난다고 했다. 그곳에서 가게를 열 생각이라 했다. 너무 좋은 와인을 꽤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곳 카드기계가 더이상 먹히질 않아서(가게 문 닫는다고 은행에서 계좌 문을 더 빨리 닫아버렸단다) 현금으로 사느라 한 병밖에 사오질 못했다. 아저씨가 추천하는 17도 정도의 아페레티프인데, 좀 많이 기대가 된다. 가능하면 다음주 월요일 전에 한 번 더 가서 디저트 와인을 좀 사 오고 싶기도 하다.

여러 식재료를 파는 G.Detou의 경우, 내가 사야할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조금 구매가 어려웠다. 뭔가 각종 소스나 좋은 꿀, 괜찮아 보이는 잼이 참 많았다. 대신 그 건너편에 있는 La Bovida라는 매장에 갔는데, 르 봉 마르쉐보다 더 식기류, 조리도구가 알차게 마련돼 있었다. 가격도 조금 더 저렴했던 것 같다. 베이킹 매트와 오븐용 타르트 그릇을 사고 싶었지만, 무게와 부피가 엄청나서 관뒀다. 한국에서도 더 저렴한 버전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생각보다 한국에서 싼 것이 많다)

해피아워로 1668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소르본느 옆 Gilbert Jeune에서 <제 2의 성> 1,2권을 샀다. 집에 오는 길에 Avenue de Saxe의 빵집에서 Diplomate라는 파이 디저트를 사다가 저녁밥으로 먹었다. 파리 생활도 이렇게 열흘 정도만 남기게 됐다.

해피아워 넘 좋다.

10구 너무 좋다.

점심밥. 와인이 잘못 나왔는데, 사진 찍고 나서 로제로 교환했다.

이곳은 녹색어머니 대신 학교에서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교통정리 요원이 따로 있다. 똑같이 녹색 옷을 입는다는 공통점은 있다만,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도 더이상 부모(특히 어머니)의 봉사에 기대지 말고, 이런 데 예산을 쓰길 바란다.

그리고 여기 와서 처음으로 코워킹 스페이스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