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tech issue

기왕 매일 이슈 체크 하는 김에, 꾸준히 테크놀로지 분야 뉴스를 스크랩하려고 합니다. (오래 가야 할 텐데) 주요 사이트는 MIT Technology Review, TechCrunch 등등. 국내 S신문 N뉴스에서 말하는 ‘캐나다 00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같은 뉴스는, 원본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따로 쓰지 않을 계획입니다. 더불어, 순전히 제가 흥미있는 것 위주로 진행하려고 하니, “왜 이런 게 빠졌죠?”라고 물으신다면 미워할 것.

내친김에 8월 2일자 테크이슈부터 시작.

 

 

Facebook is testing video ads during Live broadcasts

약 2시간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뉴스. 페이스북이 라이브 스트리밍에 광고 씌울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이브캠인 Mevo가 출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돈 벌 생각을 하네요. (참고로 Mevo는 페이스북에서 출자해 만든 4K 스트리밍 카메라인데, 올초부터 선주문(pre-order)을 받았고($299) 7월 28일자로 배송이 시작됐답니다. 저도 주문했는데, 우리나라는 관세가 붙어 우리돈 40만원 훌쩍 넘을 듯. 꺼이꺼이. 더구나 해외배송 아직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현재 가격은 399불) 아무튼, 기사 내용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현재 페북 애드 넣는 방법을(마치 유투브처럼) 실험하고 있는 단계고, 5분 단위로 15초 정도의 광고가 삽입될 거라고 합니다. 참고로 페이스북이 매년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엄청난데, 역시 동영상에서도 이런 부분을 놓칠 리가 없죠.

 

Uber’s deal with Didi is a win-win for everyone — except the ‘Anti-Uber Alliance’

오늘은 종일 우버(Uber) 얘기로 들썩입니다. 우버가 구글맵을 버리고, 자체적으로 지도를 만든다는 뉴스에 이어 이번에는 ‘중국판 우버’라 불리는 ‘디디추싱(Didi Chuxing)’에 우버 차이나(우버의 중국법인)를 매각해 화제를 모으고 있지요. 며칠 된 일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굉장히 경악할만한 일인가 봅니다. 우버 측은 ‘중국에서 성공하기엔, 현지화가 철저하게 된 디디추싱을 이길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일각에선 “너무 섣부른 결정 아니냐” “미국 테크 긍지에 금 갔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하지만 테크크런치에선 “이미 루머 나온 지도 한참 됐고, 문제 없는 딜로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죠. 윈윈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안티우버동맹’ 즉, Lyft(US), Ola(India), Grab(동남아) 등 기존 Didi와 친밀하던 업체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Didi가 자기만 쏙 빠져나가 안티우버가 아닌 우버편, 아니 우버를 사들인 덩치큰 주인이 돼 버린 것이죠. 이 업계, 어떻게 진행될 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23andMe Pulls Off Massive Crowdsourced Depression Study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02052/23andme-pulls-off-massive-crowdsourced-depression-study/?set=602058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의 전 부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런 별칭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앤 워치츠키가 운영하는 DNA 분야 스타트업 23andMe가 크라우드 소싱을 활용해 우울증의 DNA를 찾아나가는 연구를 성사시켰다는 소식입니다. 45만 개가 넘는 DNA 데이터를 활용해서 우울증을 유발하는 유전적 요소를 발견한 것이지요. 실제로 23andMe 고객 가운데 12만 명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여기서 일정한 패턴을 확인한 모양입니다. 바이오 테크놀로지는 역시 낯설지만, 신선한 게 참 많네요.

 

Peek inside Brooklyn’s first Apple Store

그리고 이건 꼭 가보고 싶은 Apple 브루클린 지점! 동영상을 예쁘게 찍어줘서 굳이 공유하고 싶네요. 브루클린에 애플 스토어가 없었다는 것도 놀랍고요.

 

방금 Quartz를 보다가… 여담거리 하나 발견

Why Hollywood babes are trying to bag a tech titan, not a rock star 

http://nyp.st/2anHr5U

스냅챗 ceo는 미란다 커와 약혼한대고, 머스크는 조니뎁 전 부인과 썸탄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요.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5>

5편에서는 실생활의 팁과 끊이지 않는 고민을 공유한다.

<5> (생각보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더라  – 생활편 2 –

학위나 따자고, 혹은 더 나은 학벌이나 한 줄 확보하자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맥 좀 쌓아보겠다며 대학원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시대 대학원이라는 것이, 꼭 심오한 학문의 장으로서만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일을 그만 둬가면서 까지 대학원에 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있어야 한다. 그 과실을 학벌 세탁에 둔들 그것은 그가 투자를 한 결과물이다. 개인을 욕할 이유가 없다.

필자의 경우에는 결단코, 정말 순진하게 새로운 거 배워보겠다고 대학원에 왔다. (내가 잘났다는 것은 아니고) 그에 앞서 지도교수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원은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지요.” 그 글을 면접이 끝나고서야 발견했다. 다시 말해 뭣도 모르고 들어왔다.

앞 3편에서도 말했듯 대학원생의 수입은 장학금과 연구비(인건비)다. 프로젝트에 참여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쏟아 부어 하나의 의미있는 결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부도 하고 그 공부한 내용을 켜켜이 엮어 일도 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사실 필자가 코드를 엄청 잘 짜게 된 것도 아니고, 라이팅이 엄청나게 좋아진 것도 아니다. (앞 편에서도 말했듯 처음 아카데믹 글쓰기를 한 게 불과 한 달 전 이야기니…) 이쯤해서 지난 1년 사이에 좀 배운 것, 그리고 할 수 있게 된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파이썬 코딩의 틀을 알고, API를 활용해 원하는 툴을 만들 수는 있다.
  2. 개발자들의 대화 내용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듣게 됐다. 심지어 참견할 수도 있다!
  3. 라즈베리파이를 매뉴얼에 따라 만지작 거려 간단한 IoT 기기 정도는 만들 수 있다.
  4. 통계적으로 뭐가 말이 되고 안 되는 지는 안다. 그리고 내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5. 영어로 논문을 읽는다. 조금 쓸 줄도 알게 됐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성과가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잠시 닦고) 하지만 앞으로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걱정이 된다. 1년 뒤 이맘때 글을 다시 쓴다면, 그 때는 부디 ‘헤비코더’이자 ‘논문 제조업자’가 되어있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그런 꿈은 잠시 접어두고… 무엇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향후 1년 뒤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느 누구보다 클 것이다. 왜냐? 이제 앞으로 뭐하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느냐, 혹은 공부를 계속하느냐, 아니면 이 공부와 관련된 일을 하느냐, 셋 중 하나다. (네번째 옵션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숭고한 일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관심사가 아닌 지라 제껴두기로 한다. 관련해선 뒤에서 다시 언급 예정…)

일단 필자처럼 기존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전공을 찾아왔을 경우, 단 2년 만에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위에서 말했듯 주요 학회 논문 제조업자가 된다 할지라도 과연 그 사람이 이 업계에서 일할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선 반신반의 할 것이다. 더구나 살아온 세월이 저널리즘과 더 가깝다면, 기업에서 봐도 홍보팀이나 커뮤니케이션실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필자 입장에선, 일 년 안에 홍보팀이 아닌 다른 곳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스팩을 키워야 한다.

학생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내 역량을 확인하자 

그래서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일을 감행해봤다. 첫 번째는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두 번째는 개인 창업이었다. 외부 프로젝트의 경우, 그 곳에서 내게 원하는 바가 불분명했다. 기사를 써 주듯 라이팅을 하는 것처럼 진행되다가도 어느 순간 대관 업무가 넘어왔다. 여기서 필자는 ‘아, 조직들은 나를 아직 기자 출신으로 쓰고자 하는 구나”라는 것을 깨우쳤다. 더불어 내가 어느 자리에 나를 포지셔닝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이야기를 들은 한 멘토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을 포지셔닝하려면, 각 자리를 알아야 한다.” 즉, 직접 여러 자리를 두루 거쳐보며 스스로를 포지셔닝해 보라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창업을 이야기했다.

필자가 직접 창업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창업 멘토링을 받고, 창업을 실제로 기획해보면서 조직에 필요한 역량을 리스트업 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내게 맞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살필 수 있었다. 가령 하고 싶은 업무가 기획자라면, 기술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록 좋다. 이를 토대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개발자들과도 말이 통할 수 있다. 조직원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주고, 이를 잘 아울러서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려면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협업 능력이었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마치 연구 도메인을 정하듯이 자신의 롤을 보다 구체적으로 좁혀가고, 이를 수행할 수 있게끔 부족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 또 의미가 있는 지 계속해서 모니터링 해야 한다. 연속성 있는 연구를 해 나가고, 그 연구를 자신의 색채로 메워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를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박사과정은 단순히 공부 기간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다. 석사과정의 다음 스텝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맞닥뜨릴 수 있는 일

결혼을 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출산과 육아다. 혹자는 대학원에 가면 아이 낳아 기르기도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심지어 퇴사를 할 때도 아이 낳고 공부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출산을 할 거라면 회사를 다녔다”고 말한다. 특히 큰 언론사의 경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유급휴가이기 때문에 적지만 수입도 꾸준히 유지된다. (오히려 애가 안 생겨서 못 낳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더구나 아이가 태어난 뒤 드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맞벌이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일 분 일 초가 아까운(그러나 블로그에 글은 남기는) 상황에서 꽤나 치열하게 연구를 하고 있는 이 욕심많은 필자가, 과연 어느 시점에 출산을 할 수 있을 지도 상당히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출산을 한 여성을 대학원생으로 받는 것에 대해 꽤나 부정적인 분위기도 풍긴다고 한다. 말했듯이 프로젝트도 해야하고, 연구논문도 최대한 많이 써서 내야 하는데 난데없이 출산이니 육아니 하면서 연구실에 잘 나오지 않으면 남은 사람이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직에서도 이런 반응은 똑같이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한(외국은 안 나가 봤으니 모르겠다만) 이 말은 어디에서나 나올 것이다.

하지만 조직을 떠나, 개인입장에서 봐도 출산과 육아는 사실 그리 달가울 수 만은 없다. 일단 개인 연구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이쪽 학문은 특히 6개월 단위로 흐름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해도 트렌드를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해 3월 학회 때는 소셜 미디어 분석이 대세를 이루다가 9월 학회에 이르러서는 드론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올 3월 학회에서는 VR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오는 9월 학회 때는 보나마나 머신러닝을 주축으로 하는 온갖 기술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시라도 쉴 틈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졸업 후 진로에도 출산은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개인 스케쥴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고, 따라서 육아에 보다 더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화학 약품을 처리하거나 방사선 기기를 쓰는 타학과의 경우 사정은 아주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이 개인 선택이다. 다만 오직 육아만을 생각해 조직에서 나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한다면, SWOT 표라도 그려서 정확하게 실익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세상 돌아가는 것으로부터의 소외감

돈을 벌다 안 벌고, 사람을 만나다 안 만나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 연구실에서 만날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나 알게 된다. 점점 엉덩이는 무거워져서 남들 만나러 밖에 나가기도 귀찮은 순간이 온다. 필자는 회사를 관두자 마자 모든 사내 단체 카톡방에서 나와 해방감을 맛봤다.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연합뉴스, YTN 등의 푸시알림도 모두 껐다.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한 넉 달 쯤 지났을 땐 사람이 그리웠고, 뉴스가 궁금했다.

실제로 많은 연구원들이 바깥 소식을 궁금해하지만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편협한 곳이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게 된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개인적으론 신문과 방송을 두루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곧장 신문을 신청했고, 틈틈이 옛 사람들을 괴롭혀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곤 했다. 소외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극복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그걸 토대로 세상 이슈에 대해서도 자꾸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도 말했듯, 내 연구가 이 세상에서 의미있게 여겨지려면, 연구자도 이 세상을 알아야 하는 법.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좋은 연구가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딜가나 이견이 없다.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4>

4편에서는 다시 험난한 공부 이야기로 겁을 주겠다.

<4> 보고서 좀 써 봤다고 논문쓰며 재지 마라 – 공부편 3 –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글 쓸 일이 참 많다. 보고서에 쓰는 것도 글이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당연히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인 전개와 주장하는 바, 혹은 설명하는 내용이 뚜렷이 드러나야 하는 한 편의 논술이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경우 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글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학계에서 쓰는 글 쯤이야… 무어 어렵겠느냐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대학원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다. 절대 만만하지 않다.

사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풀 페이퍼(HCI 학회에서는 10장 짜리 형식을 모두 갖춘 논문을 풀-페이퍼 라고 일컫는다)를 쓰지 못 했다. 석사과정 중 풀 페이퍼를 제출해 유수의 학회에서 채택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아무래도 학사 때부터 끊김 없이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경우에나 그나마 가능성이 보인달까. 필자는 입학이후 10개월만인 지난 7월 초에야 처음 영어로 페이퍼라는 것을 써 봤다. 기껏 2장 짜리 숏 페이퍼지만, 실제 장수로 따지면 A4용지로 다섯장 분량이었다. 그에 앞서 지난 겨울에는 한국어로 텍스트 분석 내용을 토대로 10장 짜리 ‘논문 느낌의’ 페이퍼를 써 본 적이 있다.

어렵다. 논문 쓰기 또한 손에 익어야 하는 글쓰기다. 논문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고, 그에 따르는 근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내가 왜 이 논문을 쓰게 됐고 여기서 소개할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이 논문이 왜 새로운지를 뒷받침할 기존 연구들은 무엇이 있는지,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실험, 인터뷰 등),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그리고 이 연구의 한계점과 앞으로 어떻게 연구를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 등으로 전개할 수 있다. 말은 쉽다.

이에 앞서, 한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강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서 어떻게 쓰면 르포 기사이고, 어떻게 쓰면 논문인 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정확히 그 차이를 지적했다기보다는, ‘르포처럼 쓰지 마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사실 기사를 쓰는 것이나 논문 연구를 하는 것이나 과정상에선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그 글의 형식이 매우 다르다. 그것을 깨우친 게 지난 숏 페이퍼 작성 과정에서였다.

숏페이퍼로 말할 것 같으면, 모 학회의 포스터(Poster) 세션용 글이었다. 평소 관심있었던 연구와 실험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시험삼아 써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제출 이틀 전까지 낑낑대며 썼고, 교수님도 한 번 봐주겠다고 들고 가선 하루가 다 지난 뒤에야 “시간이 없어 고칠 수가 없다”며 알아서 내라고 하신 그런 논문이다. 그 때 교수님의 말이 이것이었다. “너무 에세이같아요. 아카데믹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아카데믹 글쓰기, 레시피는 있다

그 말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의 한 장을 읽고 나서 아주 완벽하게 이해했다. 타 학교 박사과정 친구에게 추천받아 읽은 책인데 <Human Computer Interaction: An empirical research perspective>의 8장, Writing and Publishing a Research Paper이라는 챕터였다. 아카데믹 라이팅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더 나아가 Justin Zobel의 <Writing For Computer Science>라는 책을 통해 어떤 표현은 쓰면 안 되는지, 띄어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표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어로 저술된 영어 논문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많다. 특히 표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한 권 쟁여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을 보고 나니 제출했던 그 숏 페이퍼를 다시 거둬들이고 싶을 정도로 내 논문은 참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기사 쓰듯 빚어놓은 글이었지, 아카데믹한- 소위 말하는 정형화된 글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내가 논문 시작 순간부터 써 내려가던 Abstract는 논문을 모두 쓴 뒤에 형식에 맞게 정해진 글자 수만큼 써야 하는 것이었다. 단지 글 전체를 간추린 요약문인 게 아니라, 이 글을 보게 될 사람에게 안겨줄 첫 인상 같은 부분이던 셈이다.

논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라이팅 책만 먼저 봤다고 해서 숏페이퍼가 이백프로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려 무작정 한 번 써 본 뒤 읽고 다시 써 보는 것이 백 번 도움이 됐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 번 써 보길 추천한다.

더불어 영어 논문을 쓸 때 전문 업체의 교열을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질적인 차이가 상당히 있다곤 하나, proof reading으로 검색해 나오는 곳 중 적당해 보이는 곳 하나를 골라 이용해보길 추천한다. 내가 쓴 글이 아주 새빨갛게 토막난 채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관사, 부정관사 사용법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에 대한 지적까지 아주 깨알같다. 물론, 그들이 논문을 다시 써 주지는 않는다. 문장만 더 깔끔하게, 표현은 좀 더 공식적인 것으로 바꿔줄 뿐이다. 가끔 그들이 고쳐놓은 것이 틀린 문장일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은 연구자 본인이 지는 것이다.

협업, 그 어렵고도 간지러운 것

논문을 쓰기에 앞서 일단 연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베스트 초이스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함께 아이디어를 키워가며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 주변에는 관심사가 같은 연구원이 없었다.

학사를 마치고 바로 석사, 박사로 진학한 이들을 따라잡기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협업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은 공부를 하던 가닥이 있기 때문에, 학습 능력도 비교적 뛰어나다. 뒷모습만 봐도 공부를 하는 태가 다르달까. 하지만 사회에 물 들었던 사람들은 의자에 앉는 것 부터가 일단 고역이다. 의자에는 앉았으되, 그 다음으로 해야할 것이 바로 협업인데, 그것이 필자에겐 상당히 힘든 과제였다.

개인적으로 직업병으로 판단한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일은 내 몫, 남은 못 믿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자 생활이라는 것이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진다. 기록은 끝까지 남는다. 물론 방송 취재 기자를 하다보면 촬영기자와 오디오맨, 차량 기사님, 편집기자, CG디자이너 등이 함께 어우러져 1분 30초 짜리 기사를 만들어 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취재 내용 자체는 온전히 취재기자가 판단하고 써 내려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남에게 자료를 모아오라거나 대신 무얼 알아오라는 등의 지시는 내려본 적도 없고, 그럴 배짱도 없다.

그 성격이 대학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문제는 ‘그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연구실 분위기를 보면 너도 나도 한 주제에 달려들어 누군가는 실험을 맡고, 누군가는 분석을 맡고, 다른 한 명은 라이팅(writing)을 맡고, 한 쪽에서는 포스터를 디자인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볼까 떠올렸을 땐 이미 각자 어느 곳에서 한 몫 씩 하고 있었다.

논문은 당일 밤 8시 뉴스에 나가는 기사가 아니다. 리비전을 할 시간도 충분하고, 토의를 거칠 수 있는 여유도 어느 정도 확보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더 나은 아이디어로 나아갈 수 있다. 상대가 어리다거나, 혹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이트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오히려 “저 누나는 우리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보다”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연구실은 사회 그 어느 조직보다도 좁고 밀폐된 공간이다. 뒤에서 또 이야기 할 일이 있겠지만, ‘낮 말은 앞 사람이 듣고 밤 말은 뒷사람이 듣는’ 구조가 바로 대학원 연구실이다. 협업은 필수다. 옵션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퇴사후 석사과정 생들이 유독 혼자서 끙끙대며 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네트워킹도 물론 활발하게 하려면 할 수 있다. 열 명 남짓 연구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옆 연구실, 타과 같은 분야 연구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종종 열린다. 그뿐 아니다. 해외 학회에 나가면 유독 한국인끼리 마주치는 일이 많다. (솔직히 한국인끼리는 서로 잘 알아보지 않나.) 한국인의 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학회 때 못 가 본 게 조금 아쉬웠다. 이 자리에서 연구 동향도 파악하고, 또 같이 연구를 진행할 동료를 찾을 수도 있다고 한다. 가끔 해외 논문을 보면 여러 대학 학생들이 뭉쳐 연구를 진행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이같은 네트워킹을 거쳐 뭉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학회에서 좋은 연구로 입소문이 나면, 네트워킹을 하자고 콜 해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3>

3편에서는 잠시 생활 얘기좀 해보겠다.

<3>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난한 얘기 – 생활편 1 –

대학원생의 수입은 두 가지로 나뉜다. 장학금과 프로젝트 인건비. 아, 여기에 파트타임 잡(과외 등 알바)을 뛰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세 가지 일 수도. 물론 이 내용은 공학계열과 일부 사회계열 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 랩(Laboratory)이라는 연구실 체제가 아니면 온전히 자기 돈을 모두 내고 과정을 끝마치는 경우도 많다. 장학금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지급하는 성적우수 장학금이나 근로장학금, BK21(브레인코리아 21 사업단) 장학금 등이 있다. 

프로젝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따내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입학 당시 ‘보릿고개를 난다’는 말을 듣고 들어와서, 1년이 넘은 이제야 작은 프로젝트에 하나 들어가 있다. 대개 대학 연구실은 산학협력(R&D라고도 쓰인다)을 통해 들어오는 과제를 따서 그로부터 연구비(인건비)를 얻어낸다. 과제는 주관이 누구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부 과제, 또는 기업 과제다. 정부 과제는 산업자원통상부나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나 산하기관에서 수시로 낸다. 물론 가을쯤 대부분 어떤 과제를 낼 것인지 1년치 계획을 세워서, 그에 맞춰 R&D 예산을 짠 뒤 연초에 대략적인 개요를 발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후 수시로 추가 공고를 낸다. 여기서부터는 정보 싸움인데, 어느 과제가 언제 떨어질지, 또 혹시 암암리에 내정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컨소시움을 꾸리는 것이 나은지 등을 미리 알고 들어가면 과제를 선점하는 데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물론 이건 교수의 몫이다, 제안서는 대부분 박사과정이 쓰지만.

다만 이 정부 과제라는 것이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적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 같은 학문을 하는 연구실이 수 십 개는 될 것 아닌가. (당장 컴퓨터공학과만 검색해도 몇 백 개는 나온다.) 정부 과제는 대개 수억원 단위로 진행돼 규모가 은근하고, 또 한 번 선점하면 그 연구실의 명성에도 ‘어찌됐든’ 득이 된다. 추후 제안서를 써서 낼 때 ‘어떤 부처 무슨 연구에 참여했다’는 한 줄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정부라는 곳이 원래 사람이 돌고 돌기 때문에, 한 과제를 하며 만난 부처 인물이 다른 과제를 따낼 때즈음 그 자리에 또 가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인맥으로 프로젝트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 이 모든 것이 정보력 싸움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제안서를 쓰는 데 도움이 안 될 리 없다.

기업 과제는 인맥에 의한 것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그리고 보다 더 꼼꼼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기업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을 보면, 가끔 ‘용역이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이 주문한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대해 인건비를 받는 형식이다. 추가 주문도 많고, 인건비가 늦게 들어오는 일도 왕왕 있다.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기업의 해당 부서가 갑자기 인사 조치로 완전히 해산되는 바람에 계약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다만 연구원 입장에서는 추후 사회 진출시 득을 보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씀씀이는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

여차저차해서 연구실에 프로젝트도 들어오고 장학금도 풍족해졌다고 치자. 그 경우에도 학생마다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꽤 차이가 크다. 상한선이 있다. 박사과정의 경우 월 이백여 만 원 선, 석사과정의 경우 백여 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일을 하다 들어온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수입이 확 줄어드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 진짜 생활 이야기. 평소에는 비교적 대수롭지 않게 택시를 타고 다니고, 출장을 가면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아침마다 스타벅스 커피를 벤티 사이즈로 들고 하이힐로 뛰어 다니던 30대 여성 회사원이 갑자기 월 백 만원을 받으며(심지어 그조차도 받지 못하며) 가장 편한 옷에 몸을 구겨 넣고 연구실에 박혀 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갑작스럽게 수많은 것들이 변한다. 특히 돈 문제가 가장 크다. 벌이는 줄어도 씀씀이는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그래도 몇 천 만원 모아서 퇴사했다. 새 인생 시작이라며 신이 나서 차도 바꾸고(이게 좀 크긴 했다) 신랑 양복도 몇 벌 맞추고 등록금도 내고 어쩌고 하다보니 일 년 만에 현금통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다행히 적금 통장은 아직은 건재하다만) 도대체 뭘 그렇게 썼나 싶지만, 큼직한 거 몇 개 뺀다고 빈털털이가 될 정도는 아니다. 말인즉슨,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평소처럼 쓰다보니 월 백 몇 만원씩 쓱 빠져나간 것이 지금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이다. 지출은 계획적으로 해야한다, 바이블같은 말이지만.

어쩌면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입학 이후 옷차림도 확 바뀌었다. 주변 동생들(하지만 나보다 먼저 입학한 대학원 선배들)은 “누나가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언제부터 입을 지 우리가 내기 했다” “쓰레빠(슬리퍼)는 생각보다 늦게 신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줄창 앉아서 공부를 하려면 1)배를 압박하지 않고(소화가 안 된다) 2)신발은 벗기 편하며(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한다) 3)후드점퍼(에어컨을 틀든 히터를 틀든 필요하다)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 편한 옷차림에 익숙해지면 친구들을 만날 때 무슨 옷을 입어야 할 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고보니 옷이라는 것을 산 지도 몇 개월이 넘은 것 같다.

참고로 대학원에 와서도 놀랐던 것은- 우리 전공 뿐 아니라 다른 단과대 수업을 들어봐도 그렇다만- 정말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많다. 시절이 지날수록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 하는 구조라고들 하지만, 그보다는 있는 집일 수록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적어도 대학이라는 곳에 7년쯤 간격을 두고 들어온 사람으로서 이같은 현상은 더 잘 보인다. 대학원생들의 씀씀이도, 생각보다 꽤 크다. 물론 다들 돈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다. 대신 낸 맥줏값 5천원을 어떻게 받아낼까 고민하며 밤잠 설치던 스물 한 살 내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상황에서 잠이 오냐

위에서 잠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대학원생의 하루는 직장인의 하루와 정말, 정말정말정말 다르다. 아무리 불규칙한 생활의 밤낮없는 기자생활이라고 해도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은 했다. 대학원 교수님 가운데는 ‘일만시간의 법칙’을 강조하며 “지금부터 2년 동안 1만 시간 채우려면 매일 4시간 자야 한다”는 조언까지 한 분도 있다. 이만하면 워커홀릭이 아닌 스터디홀릭이라 할 수 있다. 공부는 정말 한 만큼 는다. 집중을 얼마만큼 했느냐가 아주 정직하게 드러나는 작업이다. 필자의 경우, 입학 후 6개월 뒤 신혼집을 신랑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옮겼다. 학교에서 멀어졌고, 따라서 기숙사에도 머물게 됐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있을 때 열심히 하자.’ 그래서 일주일에 서너 번 학교에 오더라도, 무조건 밤 12시는 넘기고 기숙사 방에 들어갔다. 평균적으로 새벽 두시 반쯤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게다가 방의 풍수가 좋지 않은 탓인지 환경이 바뀌어선지, 기숙사에서 자는 날은 늘 오전 7시면 깼다. 너댓시간 자고 연구하고 집에 가고, 이걸 근 6개월 째 반복하고 있다. 대학원은 자율성이 보장되지만, 한 만큼의 성과가 나온다. “이 상황에서 잠이 오냐” 새벽에 절로 눈이 뜨이는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다. 과장 아니다. 슬프게도 진짜다.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2>

입학 직후 이야기부터 풀어 본다.

<2> 들어가긴 쉬워도 적응하긴 꽤 힘들 걸? – 공부편 2 –

필자는 원래부터 시험을 잘 보는 편은 아니었다. 눈치가 빠르고 배짱이 두둑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같은 큼직한 시험에선 성적이 좋았지만, 내신 성적이며 대학 학점이며 뭐 하나 나은 게 없었다. 기자는, 필자 입사때까지만 해도 학점이 안 좋을 수록 높이 쳐줬다. (딴 짓을 많이 해야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많을 거라는 지레짐작때문일지도…) 만일 대학원 입시를 회사 생활 거치지 않고 바로 시도했다면, 틀림없이 낙방 했을 수준이다.

대학원에 들어오니 근 8년 만에 시험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를 통으로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이랍시고) 노닐다가, 4학년 2학기던 2008년 가을에 입사를 하는 바람에 내 인생 학부 마지막 시험은 3학년 1학기 기말고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입학 이후 보는 시험이 무려 8년 만일 수 밖에. 처음 들은 강의가 통계와 컴퓨터 언어학이었는데, 공학계산기라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써 봤다. 낯설기 짝이 없는 수식을 통으로 외우고, 온갖 법칙(SVM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암기하려니 머리 속이 빙빙 돌았다. 이해를 하고, 써 내려가는 것에는 아주 능력이 뛰어났지만, 수식이라는 것들은 증명을 수 차례 해 봐도 뒤 돌아 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더구나 교수님이 “이건 다 알지?”라며 증명을 뛰어넘고 PPT의 하얀 바탕에 두둥실 띄운 공식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헛웃음이 났다.

고등학생 참고서가 가장 쉽다

수학계의 저주받은 05학번이라는 말이 있다. 2002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필자는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가 됐다. 수능이 대거 바뀌었다. 인문계로 갈 학생은 과학 과목 시험을 아예 보지 않아도 됐고, 더불어 수학에서는 무려 ‘미분과 적분’을 배우지 않아도 됐다. 2005년, 신입생을 받은 대학들은- 특히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미적분도 못 하는 애들을 어떻게 대학에 보내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그 이후 세대부터는 다시 고등학교 수학 과목에 미적분이 포함됐다.

미적분도 모르고 30년을 산 필자로선 그것이 뭐 별 거 겠느냐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입학을 한 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미적분은 단순히 수학 공식을 쉽게 풀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머릿속 알고리즘을 짜는 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곧장 교보문고로 달려가 EBS 미적분 교재를 고르는데, 종류가 너무 많았다. 남동생의 빛바랜 수학1, 수학2 정석을 꺼내다가 이공계 출신인 남편에게 과외를 받았다. 통계 공식을 일일이 증명해가며 수학의 재미라는 것을 근 십 수년 만에 다시 깨쳤다. 대학교재로 통계를 보다가 골이 아팠고, 마치 과외선생이 된 것 처럼 고교 교재를 뜯어봤다. 기초를 닦아야 그 다음 단계로도 넘어갈 수 있다. 특히 수학은 그렇다. 집에는 여전히 수학의 정석이 꽂혀있다.

코딩은 눈 말고 손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

전 편에서도 말했듯, 입학 전에 실제로 코딩을 조금은 공부했었다. 개인적으로 학원을 다니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코딩을 배우기 위해 필자가 가 본 모임은 총 두 곳이다. 첫 번째는 ‘오픈컬리지(opencollege.org)’, 두 번째는 ‘데이터그램(www.facebook.com/groups/datagram). 전자는 일종의 코워킹스페이스 같은 곳인데,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러가서 공간을 쓰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결이 좀 다르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클래스로 열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 가지를 배워보고, 여럿이 모여 특정 작업을 끝마치는 배움터 같은 곳이다. 필자의 경우 이 곳에서 글쓰기 강의를 열고, 수채를 그려보고, 그리고 코딩을 배웠다. 여기서 배운 것은 1)코드카데미(www.codecademy.com)를 통한 html 전반과 2)같은 인터넷 강의를 통한 ruby 기초다. 물론 ruby의 경우 모두 끝마치진 못했다. 코드카데미는 지금봐도 정말 속 터져나가게 하는 데 뭐 있는 것 같다. 다만 개론적인 것을 학습하기에는 꽤 괜찮은 도구다. 연구실에 들어와서 보니, 이와 같은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MOOC 등등)에 대한 연구가 HCI분야에선 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더랬다.

후자인 ‘데이터그램’은 고백컨대 딱 두 번 갔다. 오픈컬리지가 20대~30대 사람들을 주축으로, 좀 더 발랄한 분위기에서 즐기듯이 배우는 기분이었다면, 데이터그램은 30~4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하는 꽤 전문적인 스터디다. 어느 공간 하나를 잡아 놓고,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커리큘럼도 체계적으로 짜서,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골라 수강하는 체계였다.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한 부분을 맡아 발제도 해야 했다. 필자가 두 번 만 간 이유는, 사실 당시로선 그 스터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였다. 물론 지금와서 다시 간다면 할 만 할 수도 있다만, 지금은 분야가 그리 맞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시각화(visualization)에는 그리 크게 관심이 있진 않다) 무엇보다도 그 스터디에서 누군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데이터를 분석하세요?” 그때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런 질문은 학계에서도 종종 듣는다. “어떤 분야를 공부하세요?” “어떤 연구를 하시죠?” 이것이 바로 뒤에서 언급할 ‘도메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앞서 코딩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이야기해보자. 필자의 공부 방식은 지난 30년간 ‘눈으로 읽고, 손으로 기록하고, 머리로 떠올리는’ 식이었다. 연필을 굴리든 타자를 치든 그것은 오직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눈 앞에 새로운 아웃풋이 펼쳐지진 않았다. 일단 파이썬 책을 신명나게 읽고 있자니, 교수님이 뒤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다. “눈으로 코딩하네요.” 책에서 제공하는 코드를 몇 개 옮겨 쳐 가며 ‘이것 갖고 늘겠는가’ 반신반의하며 며칠을 났다. 손은 생각보다 기억에 용이한 물건이었다. 옆 자리 컴공과 출신 코딩 잘하는 친구도 “적어도 2년은 코딩 해야 저절로 손이 다음 줄을 친다”고 했다. 무조건 쳐 봐야 느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할 것인가. 입학하자마자 첫 학기(3개월) 동안 필자는 정보 시각화를 위해 HTML과 Javascript, CSS를 배워야했다. 통계 수업시간에는 R을 썼고, 컴퓨터 언어학 시간에는 텍스트 분석의 주요 언어로 Python을 썼다. 동시에 수 개의 언어를 터득해야 했다. 골치가 아플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회사에 있었다면, 회사에서 3개월 안에 이 세 가지를 끝내라고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정답은 늘 예스(Yes)였다. 적어도 d3나 Stack overflow에서 어떤 코드를 베껴다 쓰면 되는지, 그 중에 어떤 변수(parameter)를 바꾸면 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만들어 보고 싶은 것, 풀어내고 싶은 데이터에 대한 질문을 메모지에 나열해뒀다. 그리고, 이 언어들 가운데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웹에서 데이터를 긁어, 그것을 통계적으로 풀어내기에는 R이 나을 수도 있고, 웹용 간단한 익스텐션을 구현하기에는 HTML과 Javascript가 용이했다. 또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를 활용해 IoT 기기를 만들기에는 Python이 편했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Python(파이썬)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1학기 내내 다른 언어에 대해서도 꽤 탄탄하게 기초를 쌓아 두었기 때문에, 추후 R이 필요한 순간에는 거침없이 R스튜디오를 열 수 있었다. (물론 명령어가 생각나지 않아 늘 책을 다시 펼쳐봐야 한다.)

도메인(Domain)은 빠르게 굳힐 수록 좋다

1년은 생각보다 빠르다. 어쩌면 이후 1년이 더 빠르게 지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도메인에 대한 고민을 하고 또 한다. 실제 많은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세부 주제를 정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 직장을 관두고 온 당신이라면, 그래도 비교적 도메인을 빠르게 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저널리즘쪽은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 입학 후 첫 면담자리에서도 ‘저널리즘은 이제 지겹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이란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도교수는 묘한 웃음을 지었고, 그 웃음을 1년이 지난 지금은 나름 해석할 수 있다. ‘웃기고 있네’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결국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택하게 돼 있다는 법칙 때문이다.

서른 살에 새로운 학문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내 삶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을 분석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영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의학이나 지역 정보, 여성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갔다. 특히 인지언어쪽에는 학부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많은 인지언어 조차도 뇌과학이나 고급언어학, 신경학 등 파고들면 들수록 알아야할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단순히 데이터만 모아 결과값을 낸다고 해서 분석을 섣불리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 저곳 건들면 건들수록 필자가 직접 체득한 저널리즘 분야에 가장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융합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론정보학과에서 내는 페이퍼와는 확연히 다른 것을 해야 했다.

도메인이라는 것은 사람의 관심 및 연구 분야를 어느 한 곳에 가두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위에서 말했던 것 처럼,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느냐는 것에 대해 답을 던질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필자가 공부하는 HCI분야는 인간과 컴퓨터의 인터랙션(Human-Computer Interaction)을 다룬다. 그 가운데에서 도메인을 정하자면 개인적으로 감성컴퓨팅(Affective Computing), 즉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컴퓨터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주요하게 다루는 데이터는 뉴스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말하는 ‘연구 도메인’이다. 여기에서 나는 더 확장할 수 있다. 뉴스데이터의 감성 분석을 통한 인간의 인지 능력이라거나, 혹은 그 반대를 다룰 수도 있다. 정해진 도메인을 축으로 가지를 쭉쭉 뻗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꽂은 이 기둥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으려나’ 싶은 의심은 누구나 든다(고 한다).

특히 박사 과정을 진학하는 자들에게는 이 도메인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한다. 특히 몇몇 ‘레퍼런스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저작들이 어느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쓰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학부때부터 쓴 논문이 하나의 줄기처럼, 어느 특정 키워드를 타고 박사 후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와 같은 생각에 몹시 동의한다. 이것 저것 다 해 보고 써 보는 것도 좋지만, 미세하게나마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논문이 이어져야 추후 자신을 어필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영역을 강조하기에 좋다. 몇 개의 키워드로 나의 저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영예다.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1>

이 연재는 ‘회사를 때려치고 공부나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시작됐다. 필자가 지난 1년 동안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거쳐온 과정을 차근차근 기록했다. (아직 1년 더 남았다)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린 나이(만 22세)에 덜컥 기자가 됐고, 1년 반쯤 일하다 2년쯤 놀고(알바로 작가일도 했다), 그러다 또 4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15년 가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기본 품성은 1)궁금한 게 많으며 2)해결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3)재미없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4)성격이 더럽다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필자의 학부시절 전공은 어문학이었고, 석사과정 전공은 공학이다. 한참 회삿일에 재미를 붙이던 2014년 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1> 들어가긴 쉬워도 적응하긴 꽤 힘들 걸? – 공부편 1 –

기자로 일한다는 것에는 굉장히 큰 메리트가 있다. 궁금한 게 생기면 그 분야 전문가에게 무작정 전화해 “OO일보 OOO입니다”라며 답을 구할 수 있고, 출입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기도 좋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어지간해선 만날 수 있고, 들어가보고 싶은 현장도 웬만해선 가볼 수 있다.

필자가 ‘확 때려치고 공부나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이야기하려면, 무려 2년 전인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그 해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기자가 그렇듯 ‘세월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던 해였다. 2008년부터 기자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실 대한민국의 ‘다이내믹’한 천태만상을 모두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앞에서는 무력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사회부 기자들은 꽤 많이 성장했고, 생각이라는 것을 더 하게 됐으며, ‘다음’을 생각하게 됐다. 필자의 경우, 그 해에 편집국 사회부에 몸 담았는데, 주말판 담당이라 모든 사건을 심층 취재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었다.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파고들어야 했다. 매 주말마다 ‘아이를 낳는’ 심정으로 토요일밤을 보냈고, 일요일 아침 집 앞에 도착한 신문 뭉치를 펼쳐보며 혹시 오타는 없는지 몹시 조마조마해 했다.

그러던 2014년 여름 어느날,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데이터 저널리즘이라는 것을 맛보게 되고, 열 살 때 배우던 GW-베이직, Q-베이직 같은 코드를 추억하기에 이른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그즈음 내게는 개발자인 친구들이 생겨났고, 코드를 가르치는 소규모 스터디에 가입할 기회도 생겼다. 처음 배운 언어가 루비(RUBY)였는데, 코드카데미(Codecademy)의 예제를 따라하다 암에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놔 버렸다. 허나 이미 사내에 “저 친구 요즘 컴퓨터 배운다”는 소문이 났고, 억지로 ‘손코딩’을 해가며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니 주말에 나오는 기사 몇 바닥이 다 ‘내 새끼’같을 수밖에. 그러다 2015년, 방송 부문으로 발령이 났고, 워낙 바쁜 일상 속에서 내 것을 쌓지 못한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다 쓴 치약’처럼 손톱 끝으로 내 모든 걸 꾹꾹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그 때쯤 나는 ‘퇴임을 한 선배들은 무슨 일을 하나’를 알아보고 다녔고, 6개월의 취재 끝에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때려친 이유’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일은 몹시 재밌었지만, 옮겨 간 부서에서는 그 전에 느끼던 희열을 유지할 수 없었다.
  2. 때마침 ‘미래의 먹거리’로 보이는 학문에 관심을 느끼게 됐고, 실제로 배워봤다. 고통도 느껴봤고, 견딜 만 했다.
  3. 이 직업은, 퇴직 하고 나면 주로 기업 홍보실에 가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홍보 업무가 딱히 끌리지 않았다.
  4. 가족들의 지지도 있었다. 물론 2년치 생활할 만한 돈도. (그때는…)

이 정도의 근거라면 충분히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상황도 괜찮았다. 당시 나는 결혼 2년 차. 신랑은 지금도 회사를 관둘 생각이 전혀 없는 (아주 착한)사람이다. 주변의 한 친구는 “나는 아직 결혼을 못 해서 그만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선 시장에 나갈 때 ‘여기자’라는 직업은 그리 나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나는 모아둔 돈도 몇 천 만원 있었다. (돈 얘기는 아마 다음회쯤에서 털어놓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눈물이…) 무엇보다도 ‘궁금한 그 일, 그 공부’를 제대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영리하게 선택해라, 리스크도 줄어든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은, 1년 전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쉬웠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졸업 후 석사 진학보다, 학부 졸업 후 취업 후 석사 진학이 보다 쉬운 것 같다. (첨언하자면, 물론 요즘 같은 취업난에 학부 졸업 후 사회 진출 자체가 어려운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글은 현재 회사 생활을 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므로, 상대적인 난이도를 논하기 위해 위와 같이 서술했다.) 선발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학부 졸업생과 사회생활을 한 사람을 같은 선상에서 두고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사회생활을 한 사람은 ‘한 번 필터링이 된’ 인재들이다. 설령 그가 학부시절 전혀 다른 공부를 했고, 직장 생활 또한 희망 전공과 다른 일을 했을 지라도 선발을 맡은 교수들 입장에선 한 번이라도 서류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생활을 한 사람은 같은 조건의 또 다른 사람이 그의 경쟁자가 되는 셈이다.

필자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전혀 다른 전공 베이스의 전혀 다른 일을 하던’ 케이스다. 어떻게 보면 타깃을 꽤 영리하게 선택하기도 했다. 일단 내 배경으로 공과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뻔하게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해보지 않았고, 그러느니 그냥 일을 계속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 대한민국에서는 융합 학문의 바람이 솔솔 불고 있었고, 서울대를 비롯해 유수의 대학에서 융합 관련 학과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필자 입장에선 무조건 ‘융합’을 잡아야 했다.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단 Y대나 대전 K대의 경우 학비가 몹시 비쌌다. 그나마 대전 K대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으나, “이 곳에 가면 인문학 베이스는 엄청나게 무시를 당한다”는 뜬금없는 소문을 접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대에서는 ‘수학 못 하는 문과 출신’에 대한 편견이 어딜 가나 있기 때문에 어느 학교나 다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S대였다.

학부에서 스트레이트로 진학하는 케이스와는 달리 내 경우 연구실 인턴이나 교수님 컨택(Contact) 같은 가장 중요한 일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만큼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인데, 기자로 일하긴 했어도 온전히 IT업계만 담당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분야 전문가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이 닿진 않았다. 필자의 지도교수와도 면접 당일에 처음 대면 했을 정도다. 물론 컨택은 하는 것이 좋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단 나에게 정말 맞는 연구실인지 알 수 있다.
  2.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좁혀 갈 수 있다. 
  3. 장학금, 인건비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 무엇보다도 합격할 확률이 높다.

영어 공부좀 해라, 안 그럼 세게 덴다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영어점수다. 해외든 국내든 영어 점수는 필수다. 만만하게 봤다간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는데, 필자의 경우 조기 영어교육을 꽤 촘촘히 받은 전력도 있고 해서 ‘뭐 별 일 있겠느냐’는 마음으로 덤벼 들었다가 아주 세게 델 뻔 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영어 시험을 본 것이 2009년 부근의 토익(TOEIC)이었다. 2015년 3월에 텝스(TEPS)를 신청했는데, 그 전에 같은 시험을 본 것이 아마 2006년 쯤이었을 것이다. 일을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시험 공부는 전혀 하지도 못 했고, 시험장에 들어가서야 ‘어휘와 문법, 듣기와 독해 시간이 모두 분리돼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척 어렵다는 것도 깨우쳤다. 하필이면 그 시험이 원서 접수 전 마지막이어서, 점수 나오는 날까지 상당히 조마조마 했더랬다. 다행히 커트라인을 살짝 넘긴, 인생 최악의 점수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점수는 숫자일 뿐, 실제 실력과는 무방하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면접장에서 “어학 전공인데, 왜 영어 성적이 이 모양이죠?”라는 말을 들었을 때 “텝스가 정말 어렵더라고요”라며 웃을 수 있던 것도 그 때 뿐. 합격 후 첫 면담 자리에서 지도교수가 “영어 라이팅은 어느 정도 하나요?”라는 말에 “그럭저럭”이라고 말 할 수 있던 것도 어쩌면 그 때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어에 대한 나의 이 무모한 생각(그리고 착각)이 어떻게 깨지게 되었는 지는 뒤에서 다시 이어가겠다. 

일은 7월 초에 그만 뒀다. 휴가 까지 탈탈 털어 쓴 뒤 기자 생활을 만 5년 꽉 채운 날로 계산해 고른 날짜였다. 플랜B로 나중에 다시 일을 해야할 경우에 대비, 이직 가능 연한은 채워놨다. 지도교수를 만난 것이 7월 말이었고, 그는 “HCI분야에서 가장 큰 학회가 카이(CHI)다. 여기랑 WWW 학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논문 다운받아 읽어보라”고 했다. 필자는 마냥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었을 뿐, 그 분야나 세부 전공에 대한 이해는 몹시 부족했다. 다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굳이 그 분야를 일백프로 알고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이 완성돼가는 과정은 어차피 겪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1을 말하면 교수는 10을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몇 개의 단어 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다.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한 달 동안 두 학회(CHI, WWW)의 2014년 논문(Proceedings) 요지문(abstract)을 모두 읽고 그 가운데 20개를 뽑아 본문을 모두 세세하게 읽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논문은 모두 유료다. 다만 학교에서 다운받아 볼 경우 라이센스 등록이 돼 있어 무료로 볼 수 있다. 마침 집이 학부 시절을 보낸 학교와 가까이 있어, 졸업생 자격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받아 읽었다. 졸업 후 7년 만에 모교 도서관에 간 셈이었다. 정리는 내 방식대로 간단하게 했는데, 이게 추후 내 선행연구(reference) 정리 작업에 꽤 많은 도움이 됐다. 한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문, 여기에서 읽고 떠오른 연구 주제(발제),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해 써 내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있었다. 논문은 모두 영어로 써 있다. 더구나 인문학을 하던 사람에게 낯선 용어도 한 둘이 아니었다. 아니, 일단 대학원에서 쓰는 용어가 모두 생소하다. 교수님과 면담을 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그가 쓰는 영어 용어들을 알아 듣기가 그리 수월하지 만은 않았다. 그간 기자로서 많은 교수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은 늘 쉬운 용어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줬다. 자신의 학생이 아닌, ‘잘 모르는’ 기자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쪽 ‘업계’에 들어온 이상 이 분야 용어에 빠르게 익숙해져야 했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모든 말을 쉽게 풀어 써 준 외신 뉴스와 달리, 논문은 자신들의 논리를 꼭 단순하고 명료하게 풀어나가지 만은 않는다. 그걸 ‘못 쓴 논문’이라고 폄훼할 수만은 없다. 모든 글은 친절하지 않다. 그냥 죽어라고 읽고, 파는 수 밖에 없다. 후에 또 언급하겠지만, 내가 직접 논문을 쓰는 순간이 왔을 때 ‘그 글들 만큼’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영어로 읽는 것이 조금 편해진 것은 6개월 파고 들었을 무렵이었다. 그나마도 스크린에 띄우고 보는 것은 알파벳이 영 헷갈려서, 모두 인쇄해 밑줄을 그어가며 종이째 읽어야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