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18.05.19.

밤새 좀 추웠다. 그냥 담요를 가지고 올 것을, 괜히 호기롭게 얇은 여름이불 하나를 가져왔더니 이런 일이. 좀 지저분해 보이지만, 이곳 이불을 써야하나 아침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침 6시 반쯤 깼다. 밤 10시쯤 되니 꽤나 어두워진 파리 야경을 보다가 잠이 몰려와 쓰러지듯 곯아 떨어졌다. 서향 집이라 바깥이 어느 샌가 환해져 있었다. 해가 뜨는 모습도 없이. 토요일 아침, 내가 살던 곳 앞, Avenue de Saxe의 마르쉐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기어코 사고야 만 프렌치프레스로 커피를 부드럽게 내려 마시고 ‘쁘띠 데조네’란 자고로 크래커 한 봉지여야 한다며 레몬과 검은 깨가 박힌 크래커 네 쪽을 깨물어 먹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앵발리드 앞 거리를 걷다 사진을 찍었다. 어서, 이 동네 한 곳을 정해 주기적으로 사진을 남겨야 하는데. 고민 중이다.

바게트 가게부터 갔다. 7시반부터 사람이 많았다. 막 구워져 나오는 수많은 빵에 동공이 마구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침착하자, 나는 이곳에 하루이틀만 있는 것이 아니니. 키쉬, 타르트 드 뽐므, 크로와상, 뺑 오 쇼콜라, 뺑드미 등등의 화려한 비주얼을 뒤로하고 오직 바게트 하나만을 샀다. 다른 파리지앙들도 그러하지 않거늘. 바게트 하나 값이 1.2유로일 줄 알았는데, 1유로였다. 10년 전보다 기껏 0.2유로 정도 오른 것 같다. 그런데 계산하고 나와서 보니, 아무래도 내가 0.2유로 짜리를 낸 것 같다. 그도 바빠서 그대로 받은 것 같은데, 다시 돌려주러 갈까 했다가 말았다. 양심 거리끼는 일은 정말 싫지만, 저토록 줄을 많이 서 있는데 가서 짧은 불어로 설명하는 것도 민폐같았다. 다음에 가서 차액을 지불해야지.

마르쉐는 시끄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차분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고 팔았다. 예를 들어, 사과 두 알을 산 뒤에 “더 필요한 것 있니?”라고 상대가 물으면 “응, 오렌지도 줘.”라고 말하고, “또 필요한 것은?”이라고 물으면 “체리도 200그램만 줄래?”라고 계속 소통하면서 사면 되는 것이다. 250그람이 담기거나, 혹은 오렌지가 생각보다 무거워 그램수가 많이 나가면 그때 그때 빼 달라고 한다. 소비자는 자기가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살 수 있고, 상인은 그만큼을 정확히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덤도 없고, 그래서 사실은 좀 더 편하다. 합리적이고, 개인적이고, 어쩌면 조금은 계산적인 듯한 체계가 마음에 든다. 다음 사람이 조금 오래 기다리더라도, 정확하게 짚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제부터 문득, 프랑스는 어쩜 이렇게 자동차 종류도 다양하고, 토마토 종류도 여럿일까 생각을 하다가 아무래도 인구 수가 영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프랑스의 인구는 기껏해야 6500만이다. 놀랐다. 1억명은 될 줄 알았다. 1억 인구가 넘는 곳이라고는 중국과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러시아, 일본, 멕시코, 에티오피아(!!!!), 그리고 필리핀(!!!!!) 정도다. (KOSIS 자료) 예상 밖의 나라가 많은 것도 놀랍지만, 프랑스(세계 22위)나 영국이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유럽 대륙이 한때 저출산으로 고생했는데, 우리나라(세계 27위)도 이보다 더 순위가 떨어지게 되겠지.

그렇다면, 내 가정은 틀린 것 같다. 사람이 많으면 소비재의 다양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 땅 덩어리도 꼭 상관관계를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GDP 영향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기승전 ‘쩐’이다.

이곳에 와서 보니 근방에서 행사가 참 많다. 일단 오늘은 건너편 영국에서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이 결혼식을 올렸다. 저녁에는 저 남쪽 칸느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발표한다. 유럽 전역에서 오늘은 ‘La Nuit Europeenne des musees’이라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저녁 6시 30분 이후 모든 미술관들이 문을 닫지 않고 각종 행사와 전시를 무료로 하는 것이다. 어찌 가지 않으리. 개인적으로는 자크 시라크 뮤제에서 진행하는 전시를 보고, 해질녘(이라고 해봐야 저녁 9시즈음이다) 에펠탑에 올라가 파리를 보고, 이후 11시쯤 오랑제리로 넘어가 재즈 콘서트를 볼 계획이다. 무려 나도 이름을 아는 찰리 파커의 음악을 Julein Pontvianne quartet가 선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연은 잭슨 폴록과 Rothko, De Kooning, Barnett Newman의 작품들 한가운데서 치러진다. 생각만 해도 굉장하다.

낮에는 에펠탑부터 pont de l’alma를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정오만 지나면 기온이 크게 올라 덥기까지 하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천천히 돌고 왔는데 목이 탔다. 근방에 까르푸 매장이 있어서 맥주 두 캔을 사가지고 왔다. 호가든 밀맥주가 2천원도 안 된다. 오전에 산 올리브와 치즈, 바게트를 안주삼아 저녁밥처럼 먹었다. 어서 맥주가 깨야 밤마실을 나갈텐데, 이러다 칸느 영화제 시상식까지 다 보고 가게 생겼다. (물론 그렇게 하면 너무 늦다)

오전에 찰스 왕세자의 아들, 해리 왕자의 결혼식이 있었다. 어쩜 나와 비슷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매건 마클도 참 매력적이었지만, 해리 왕자의 그 사랑 가득한 눈빛이 참 인상적이었다. 문득 어제 르 피가로에서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인 다이애나비처럼 각종 구호활동과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매건 마클에게 끌렸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마클은 앞으로도 다이애나비처럼 활동을 이어갈 것 같다는 예측도 나왔다. 퐁 드 랄마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에펠탑을 지나, 1997년 9월 다이애나비가 사고를 당한 퐁 드 랄마 앞 ‘자유의 불꽃’상 앞에 도착했다.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꽤 싱싱한 생화도 여럿 놓여 있었다. 오늘만큼은, 많은 이들이 다이애나를 더욱 그리워했을 것이다. 다이애나의 언니가 축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이애나도 살아있었다면 그처럼 나이를 먹고, 저렇게 이야기를 했겠지, 싶었다.

아직 테러 위험으로 여러모로 시끄러운 파리지만, 그만큼 곳곳에 군인들도 배치돼 있다. 오히려 더 안전한 느낌이랄까. 여전히 자하디스트는 존재하고, 무고한 시민을 향해 공포를 일으키고 있다. 조심해야지. 월드컵을 앞두고 잔뜩 들뜬 프랑스는, 그 안에서도 ‘그래도 모여있지 말자’, ‘조심하자’라는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물론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이미 르 블뢰의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잠시 인터넷 쇼핑을 좀 하려고 했다. Venteprivee.fr 라고 하는 할인 온라인 숍인데, 10년 전에 여기서 아가타 귀걸이도 싸게 사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여전히 건재했다. 와인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골라 장바구니(panier)에 남았는데, 아쉽게도 내 유심칩이 영국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어서 배송이 힘들다고 한다. 프랑스 유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밤.

에펠탑에 다녀왔다. 여기에 살면서, 그 이후 몇 번이나 왔으면서도 단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저 관광객이나 올라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런 것 치고는, 5년 전 왔을 땐 기어코 바토무슈(센느강을 따라 운행하는 유람선)를 타고야 말았다. 타보니, 왜 사람들이 타는 지 알 것 같았다. 엄청 재미있었다! 뭔가, 내가 몰랐던 파리를 안 기분이었달까.

여하튼 에펠탑에 대해서는, 낮에 들렀다가 줄도 길고, 생각보다 가격도 높아서, 아주 좋은 시간대를 골라와야 겠다는 강렬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생각한 적당한 시간대는 밤 9~10시 사이였다. 해가 질 무렵이고, 해가 떨어지면 빠르게 어두워질테니까. 결국 위에서 쓴 대로 맥주가 깨지 않아 8시 20분까지 칸느 영화제를 빼곡히 다 지켜보고, 여배우들의 강렬한 #미투에 고개를 수 없이 끄덕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며 ‘저 영화 꼭 볼테야!’라고 다짐을 하게 됐다. 칸느 폐막식을 이렇게까지 지켜본 적은 없어서, 시상식 자체가 이렇게 단출하고 말그대로 ‘식’일 줄은 몰랐다. 이게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괜히 중간중간 영상들을 끌어다 놓고, 진행자들끼리 말장난을 하며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 끝나고 나서 시상식장 앞에서 화려한 콘서트가 벌어지는 것이 더 보기 좋았다.

에펠탑 앞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이었다. 줄은 거의 없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 매표소에서 오히려 시간을 잡아먹었다. 옥상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티켓이 25유로, 2층까지만 가는 것이 19유로인데, 개인적으로는 옥상 한 번 가볼만 했다. 훨씬 높다. 시야가 다르다. 물론 2층 시야도 멋있지만, 다르다는 것을 경험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옥상에 다다르자 에펠탑이 마구 빛났다. 밤 10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추워졌다.

내 생각대로, 나는 아주 좋은 시간대에 에펠탑에 올랐다. 분홍색으로 번져가는 파리 하늘을 보다가 탑을 한바퀴 돌고 났더니, 그새 도시는 검은 바탕에 오렌지빛 방울들을 점멸하고 있었다. 파리의 밤은 세느강이라는 좁지만 긴 운하를 낭만적으로 그려냈고, 앵발리드를 금빛으로 치장했다.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파리의 상공에서, 그렇게 강렬하게 파리의 야경을 경험했다. 사나운 봄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던, 에펠탑 꼭대기의 전망이란. 꼭대기에서 판매하는 샴페인을 맛볼 정신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2층 전망대는 꼭대기에서는 보지 못한 발밑의 파리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었다.

사실 뮤제 유로펜이라고 하는, 오늘 밤만큼은 파리 대부분의 뮤지엄이 무료인데다 각종 공연까지 하는 행사를 챙기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꼭 에펠탑에 오르고 싶었다. 내 ‘한 달 파리’의 시작인 첫 주말인만큼, 조금 더 파리를 크게 보고, 내가 사는 곳과 빠르게 정들고 싶었다. 비록 내 앞, 뒤, 옆, 모든 사람들이 다 관광객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아쉽게도, 집에 돌아오는 길의 모든 마켓과 웬만한 카페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레시피] 2018.05.18 – 루꼴라 샐러드

오늘의 저녁식사는 해피 밀, 헬시 밀을 컨셉으로 했다. 파리에서의 첫날밤이니까, 스스로를 격하게 환영해야지.

그저 창문 앞 테이블에 올렸을 뿐인데도 좋은 레스토랑에서 찍은 것만 같다. 저녁 8시의 파리는 저토록 밝다. 석양과 낮은 테이블 때문에 구부정하게 앉아 또다시 허겁지겁 풀을 씹었다.

재료 : Roquette (영어로, 그리고 우리말로 ‘루꼴라’다. 로케트가 대체 뭔지 몰라 한참 찾아봤다.) 한움큼, 레몬 반 개, 좋은 올리브오일, 풍족한 양의 파르미지아노 치즈, 그리고 우리나라 대저 토마토 맛이 나는 프랑스 토마토(tomate allonge)

레시피 : 간단하다. 모든 것을 깨끗이 씻고 물을 빼고 보울에 넣은 다음 레몬즙과 올리브오일과 치즈를 양껏 뿌린다.

포인트 :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신선도다. 루꼴라 자체의 쓴 듯한 향도 올라와야 하고, 치즈가 씹히는 맛도 중요하다. 레몬과 토마토의 즙이 아래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자주 섞어 먹어 줘야 한다.

샐러드는 촉촉한 느낌이 중요하다. 사실 물기를 빼는 보울이 한국 집에도 있는데, 그것을 너무 많이 돌리면 풀들이 조금 뻣뻣한 느낌이랄까. 적당량의 물기가 필요하다. 사람도, 채소도.

이것만 먹으면 허전하다.

따라서 첫날밤을 격하게 환영하기 위해 준비한 특식, LeNotre의 Tartelette aux fraises 되시겠다. 우리돈으로 거의 1만원 가까이 한다. 조그만 것이. 문제는 내가 이걸 냉동에 넣어두는 바람에 천천히 기다려 먹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부턴 내 단골 빵집에서 막 구워낸 디저트만 먹어야지.

얼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었던 타르트. 진짜 타르트는 정말 크기 때문에, 이 친구는 타르트레트라고 불린다. 타르트 빵도 맛있지만, 딸기와 빵을 잇는 딸기쨈 같은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와인: Domaine de Picardan, 2015 / 하프보틀 4유로

보르도 와인이다. 엄청 부드럽다. 일단 새콤한 샐러드와도 잘 어울리고, 달착지근한 디저트와도 어울리는 만능 와인이다. 처음엔 살짝 보랏빛에 가까운 색감이었는데, 자세히 보니(술먹고 보니) 적갈색에 가까운 컬러다. 열자마자 마셨는데 생각보다 풍미도 좋고(잔이 오픈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살짝 단 향이 강했다. 목넘김이 아주 좋다.

[하루] 2018.05.18.

도착했다. 파리에 발 디딘 것은 5년 만이고, 꽤 시간을 잡고 살게 된 것은 10년 만이다. 스물 두 살의 나는 단 돈 40센트로 일주일을 버텨보겠다는 패기를 뽐내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가난한 한국 여학생이었다. 그때 조금 일찍 파리를 떠나며, 일본 공항에서 환승을 하다 말고 울음이 터졌다. “애증의 파리, 10년 뒤에 다시 와서 제대로 멋있게 살거야.” 그리고 꼭 10년 만에 왔다. 엄마는 아까 나와 통화하면서 “돈 많이 쓰겠네”하고는, “그래, 10년 전엔 가난했으니까 이번엔 많이 쓰고 와”라고 했다. 나 여전히 가난한데.

무엇도 바쁠 것이 없는 일정이다. 딱 한 달. 이곳에서 나는 프랑스인처럼 살고, 파리지엔느처럼 시내를 누빌 것이다. 항공편도 60만원이 조금 넘는, 타이베이를 들렀다가 다시 한반도 상공을 지나 파리로 오는 싼 티켓을 끊었다. 뉴욕 가는 것만큼 상공에 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고도 출근길 정체에 막혀 공항 버스에서 멀미를 했다. 숙소 공유 사이트에서 얻은 방 앞에선 15도의 날씨에 덜덜 떨며 호스트를 기다리느라 30분을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전형적인 파리의 작은 다락방, 그곳에 도착했다. ** Avenue de Segur, Paris 75007. 내가 10년 전 살았던 곳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거의 흡사한 곳이다.

이곳은 변한 게 많지 않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코너마다 카페들은 그대론것 같은데, 어째 나 살던 곳 모퉁이에 있던 한국 식당은 사라졌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바게트를 굽는 빵집도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더 많아졌다. 그새 유명세를 탔나 보다. 내일이면 이 구역 작은 광장에서 토요일 마켓이 열린다. 벌써 천막들이 들어서있다. 그대로다. 그런데 살았던 곳이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44번지였나, 46번지였나. 위를 올려다보면 내가 살았던 방 같지 않은데. 근처는 다 떠오르는데, 내가 그리도 드나들던 대문과 건물은 떠오르지 않으니 이상할 노릇이다. 여기서 에펠탑이 이렇게 잘 보였었나. 새삼 놀랍기도 했다.

길 감각은 그대로 살아있어서, 골목골목 잘도 접어들었다. 파리 첫 끼를 무얼 먹을까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없는 것을 구비할 모노프리 마켓 인근을 수색했다. 세귀르역 너머 유명한 과자점 르노트르가 있는 그 거리. 변함없이 사람이 많고, 좁은 찻길에 버스가 오간다. 에펠탑과 가까운 상점거리라 관광객도 많다. 매연을 마시며, 먼지를 들이키며, 노천카페에 앉아 햇살을 피하지 않으며 밥을 먹었다. 트러플 오일 향이 코를 찌르는 마카로니 크림 파스타를 허겁지겁 퍼먹었다. 파르미지아노 치즈가 고슬고슬하게 얹어져 햄과 함께 짠맛을 더했다. 후추를 우겨 뿌려 먹으니 그저 맛있는 한끼 였다. 소싯적 식욕을 찾아오지는 않으려고, 조금 남겼다. 카페알롱제를 마시고, 팁을 포함한 금액을 올려두고 나왔다. 혹시나 내가 돈을 적게 두고 나오진 않았겠지, 화폐 단위에 익숙해진 것 맞지, 두근두근해하며.

방은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작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의 주부인데, 후줄근한 식기와 와인잔, 머그컵은 쓰고 싶지 않아서 몇 개 골라 구비했다.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도 따로 샀다. 유기농으로. 숙소에 돌아와보니 싸게 산 머그컵에 이가 나간 것이 보였다. 순간 신경이 쓰였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바닥에 맨발을 딛지 않으면 살이 찔 것이라는 생각에 바닥을 쓸고 닦았다. 구석구석 먼지를 제거하고, 십여시간만에 따뜻하게 샤워를 했다. 그러고 겨우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방에 커피머신이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SNS에 ‘파리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역시나 많은 이들, 특히 유럽에 있는 이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 여기 오기로 마음먹었을 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홀로 있다 가겠다 생각했었는데, 며칠 전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친구가 있고, 또 친구를 만나니까. 그리고 나는 원래 친구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아니나다를까, 지인들의 연락을 수두룩 받고 나니 명치끝이 그렇게 아렸다. 마치, 조금 전 모노프리 와인코너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던 것처럼. 하나둘 만날 약속을 하고, 아직 테러위험이 있으니 밤에는 조심하라는 신신당부도 받고 나니, 나 여기 온 것 맞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한 달을 살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쓰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프랑스에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즐기자,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얻어냈었다. 마치 ‘매일매일을 시트콤처럼 살고 싶다’고 했던 나의 십대때 마음가짐처럼, 그렇게 이십대의 나는 파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매일 반복되는 24시간에 대해 무뎌졌다. 그렇게 많은 변화를 생각하고, 꿈꾸고, 실천해왔는데도, 모든 하루가 다 값지게 쓰이진 않았다. 한 달을 살면서, 이곳에서는 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매일 부지런히 하루를 쓰려고 한다.

그래서 약속은 아래와 같다.

1. 매일 신문을 읽는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스테판 아저씨는 ‘당연히’ 르몽드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르파리지앙 따위는 취급 안 한다는 듯이.

2. 크로와상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만 먹는다. 10년 전에 들은 것이, 프랑스인은 절대로 크로와상을 1주일 1회 이상 먹지 않는다고 했다. 먹고나선 미친듯이 달린다고 했었다. 그리고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스테판 아저씨도 “당연한 얘기! 파리지앙은 절대로 크로와상을 매일 먹지 않아!”라고 당부했다.

3. 매일을 기록한다. 이건 뭐 너무 당연해서 설명이 필요 없을 듯.

4.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내가 직접 해 먹는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외식을 적게 하고 집에서 많이 먹는다. 가족과 함께.

5. 그리고 매일매일 나를 가꿀 것이다. 뭐 그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만.

 

<번외> 그래서, 저 약속에서 언급되는 스테판 아저씨는 누구인가.

풀네임은 스테판 고농. 50대쯤 돼 보이고, 금융회사 CA에 다니는 임원급으로 추정. 서울에서 함께 비행기를 탔고, 본인은 타이베이에 하루 더 있다 간다고 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소르본느를 나왔고(내가 HEC 다녔다고 하니 아무래도 업계 사람인지라 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박사도 땄다. 집은 7구에 있고, 아들이 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예전에 식민지던 알제리로 옮겨가서 사실상 그동네 로열패밀리가 됐다고 한다. 몇 가지 재미있는 발언 발췌.

“아이를 낳지 않는다구? 그건 이기적인 것 아니야?”

“프랑스 합(Rap)은 내가 지금 당장도 녹음해줄 수 있어. 알잖아, 멜로디가 없어서 그냥 내가 지금 하는 말 녹음하면 돼.”

“마크롱은 다 좋은데 너무 다 개혁하려고 해. 세금을 많이 걷으면 뭐 가능하겠지.”

“나이 많은 여성과 한참 어린 남성의 결혼(마크롱과 마크롱의 연인을 이야기하며)? 남 얘기니까 그냥 다들 그런가보다 하는 거야. 내 자식이 그러면 프랑스인들도 다 화내. 그걸 용납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

“집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만드는 정원이 있는데 이걸로 나는 전원생활을 하고 있지. 건강한 채소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아.”

“에어프랑스 비즈니스는 꼭 타보도록 해. 진짜 좋아.”

“예전에 소시에떼 제네랄 사태? 그게 낙하산 인사 때문에 그런거야. 너희 나라도 위에서 꽂는 사람을 낙하산이라고 하니? 여기도 그래! 그랑제꼴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험 없는 엘리트들을 꽂으니 프로세스를 알 턱이 있나. 물론 우리 회사(였는지, 아니면 크레디 리오넬이었는지)는 그랑제꼴 출신이지만 다 경험하고 올라간 사람이 경영인이야.”

“요즘은 차 안 사. 다들 차 쉐어하는 앱을 쓰고 있어. 너도 국제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할텐데!”

그리고는 다른 무수한 프랑스인 아저씨들처럼 자신의 번호를 적어주었다. 뭐, 나쁜 뜻은 전혀 아니겠지만!

 

 

   

<> 내 방에서 보이는 5월의 앵발리드 전경. 낮 12시, 밤 9시, 밤 10시, 그리고 익일 아침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