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5>

5편에서는 실생활의 팁과 끊이지 않는 고민을 공유한다.

<5> (생각보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더라  – 생활편 2 –

학위나 따자고, 혹은 더 나은 학벌이나 한 줄 확보하자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맥 좀 쌓아보겠다며 대학원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시대 대학원이라는 것이, 꼭 심오한 학문의 장으로서만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일을 그만 둬가면서 까지 대학원에 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있어야 한다. 그 과실을 학벌 세탁에 둔들 그것은 그가 투자를 한 결과물이다. 개인을 욕할 이유가 없다.

필자의 경우에는 결단코, 정말 순진하게 새로운 거 배워보겠다고 대학원에 왔다. (내가 잘났다는 것은 아니고) 그에 앞서 지도교수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원은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지요.” 그 글을 면접이 끝나고서야 발견했다. 다시 말해 뭣도 모르고 들어왔다.

앞 3편에서도 말했듯 대학원생의 수입은 장학금과 연구비(인건비)다. 프로젝트에 참여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쏟아 부어 하나의 의미있는 결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부도 하고 그 공부한 내용을 켜켜이 엮어 일도 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사실 필자가 코드를 엄청 잘 짜게 된 것도 아니고, 라이팅이 엄청나게 좋아진 것도 아니다. (앞 편에서도 말했듯 처음 아카데믹 글쓰기를 한 게 불과 한 달 전 이야기니…) 이쯤해서 지난 1년 사이에 좀 배운 것, 그리고 할 수 있게 된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파이썬 코딩의 틀을 알고, API를 활용해 원하는 툴을 만들 수는 있다.
  2. 개발자들의 대화 내용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듣게 됐다. 심지어 참견할 수도 있다!
  3. 라즈베리파이를 매뉴얼에 따라 만지작 거려 간단한 IoT 기기 정도는 만들 수 있다.
  4. 통계적으로 뭐가 말이 되고 안 되는 지는 안다. 그리고 내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5. 영어로 논문을 읽는다. 조금 쓸 줄도 알게 됐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성과가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잠시 닦고) 하지만 앞으로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걱정이 된다. 1년 뒤 이맘때 글을 다시 쓴다면, 그 때는 부디 ‘헤비코더’이자 ‘논문 제조업자’가 되어있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그런 꿈은 잠시 접어두고… 무엇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향후 1년 뒤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느 누구보다 클 것이다. 왜냐? 이제 앞으로 뭐하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느냐, 혹은 공부를 계속하느냐, 아니면 이 공부와 관련된 일을 하느냐, 셋 중 하나다. (네번째 옵션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숭고한 일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관심사가 아닌 지라 제껴두기로 한다. 관련해선 뒤에서 다시 언급 예정…)

일단 필자처럼 기존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전공을 찾아왔을 경우, 단 2년 만에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위에서 말했듯 주요 학회 논문 제조업자가 된다 할지라도 과연 그 사람이 이 업계에서 일할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선 반신반의 할 것이다. 더구나 살아온 세월이 저널리즘과 더 가깝다면, 기업에서 봐도 홍보팀이나 커뮤니케이션실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필자 입장에선, 일 년 안에 홍보팀이 아닌 다른 곳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스팩을 키워야 한다.

학생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내 역량을 확인하자 

그래서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일을 감행해봤다. 첫 번째는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두 번째는 개인 창업이었다. 외부 프로젝트의 경우, 그 곳에서 내게 원하는 바가 불분명했다. 기사를 써 주듯 라이팅을 하는 것처럼 진행되다가도 어느 순간 대관 업무가 넘어왔다. 여기서 필자는 ‘아, 조직들은 나를 아직 기자 출신으로 쓰고자 하는 구나”라는 것을 깨우쳤다. 더불어 내가 어느 자리에 나를 포지셔닝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이야기를 들은 한 멘토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을 포지셔닝하려면, 각 자리를 알아야 한다.” 즉, 직접 여러 자리를 두루 거쳐보며 스스로를 포지셔닝해 보라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창업을 이야기했다.

필자가 직접 창업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창업 멘토링을 받고, 창업을 실제로 기획해보면서 조직에 필요한 역량을 리스트업 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내게 맞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살필 수 있었다. 가령 하고 싶은 업무가 기획자라면, 기술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록 좋다. 이를 토대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개발자들과도 말이 통할 수 있다. 조직원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주고, 이를 잘 아울러서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려면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협업 능력이었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마치 연구 도메인을 정하듯이 자신의 롤을 보다 구체적으로 좁혀가고, 이를 수행할 수 있게끔 부족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 또 의미가 있는 지 계속해서 모니터링 해야 한다. 연속성 있는 연구를 해 나가고, 그 연구를 자신의 색채로 메워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를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박사과정은 단순히 공부 기간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다. 석사과정의 다음 스텝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맞닥뜨릴 수 있는 일

결혼을 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출산과 육아다. 혹자는 대학원에 가면 아이 낳아 기르기도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심지어 퇴사를 할 때도 아이 낳고 공부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출산을 할 거라면 회사를 다녔다”고 말한다. 특히 큰 언론사의 경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유급휴가이기 때문에 적지만 수입도 꾸준히 유지된다. (오히려 애가 안 생겨서 못 낳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더구나 아이가 태어난 뒤 드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맞벌이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일 분 일 초가 아까운(그러나 블로그에 글은 남기는) 상황에서 꽤나 치열하게 연구를 하고 있는 이 욕심많은 필자가, 과연 어느 시점에 출산을 할 수 있을 지도 상당히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출산을 한 여성을 대학원생으로 받는 것에 대해 꽤나 부정적인 분위기도 풍긴다고 한다. 말했듯이 프로젝트도 해야하고, 연구논문도 최대한 많이 써서 내야 하는데 난데없이 출산이니 육아니 하면서 연구실에 잘 나오지 않으면 남은 사람이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직에서도 이런 반응은 똑같이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한(외국은 안 나가 봤으니 모르겠다만) 이 말은 어디에서나 나올 것이다.

하지만 조직을 떠나, 개인입장에서 봐도 출산과 육아는 사실 그리 달가울 수 만은 없다. 일단 개인 연구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이쪽 학문은 특히 6개월 단위로 흐름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해도 트렌드를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해 3월 학회 때는 소셜 미디어 분석이 대세를 이루다가 9월 학회에 이르러서는 드론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올 3월 학회에서는 VR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오는 9월 학회 때는 보나마나 머신러닝을 주축으로 하는 온갖 기술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시라도 쉴 틈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졸업 후 진로에도 출산은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개인 스케쥴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고, 따라서 육아에 보다 더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화학 약품을 처리하거나 방사선 기기를 쓰는 타학과의 경우 사정은 아주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이 개인 선택이다. 다만 오직 육아만을 생각해 조직에서 나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한다면, SWOT 표라도 그려서 정확하게 실익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세상 돌아가는 것으로부터의 소외감

돈을 벌다 안 벌고, 사람을 만나다 안 만나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 연구실에서 만날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나 알게 된다. 점점 엉덩이는 무거워져서 남들 만나러 밖에 나가기도 귀찮은 순간이 온다. 필자는 회사를 관두자 마자 모든 사내 단체 카톡방에서 나와 해방감을 맛봤다.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연합뉴스, YTN 등의 푸시알림도 모두 껐다.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한 넉 달 쯤 지났을 땐 사람이 그리웠고, 뉴스가 궁금했다.

실제로 많은 연구원들이 바깥 소식을 궁금해하지만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편협한 곳이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게 된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개인적으론 신문과 방송을 두루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곧장 신문을 신청했고, 틈틈이 옛 사람들을 괴롭혀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곤 했다. 소외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극복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그걸 토대로 세상 이슈에 대해서도 자꾸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도 말했듯, 내 연구가 이 세상에서 의미있게 여겨지려면, 연구자도 이 세상을 알아야 하는 법.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좋은 연구가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딜가나 이견이 없다.

공부나 해 볼까?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4>

4편에서는 다시 험난한 공부 이야기로 겁을 주겠다.

<4> 보고서 좀 써 봤다고 논문쓰며 재지 마라 – 공부편 3 –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글 쓸 일이 참 많다. 보고서에 쓰는 것도 글이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당연히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인 전개와 주장하는 바, 혹은 설명하는 내용이 뚜렷이 드러나야 하는 한 편의 논술이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경우 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글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학계에서 쓰는 글 쯤이야… 무어 어렵겠느냐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대학원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다. 절대 만만하지 않다.

사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풀 페이퍼(HCI 학회에서는 10장 짜리 형식을 모두 갖춘 논문을 풀-페이퍼 라고 일컫는다)를 쓰지 못 했다. 석사과정 중 풀 페이퍼를 제출해 유수의 학회에서 채택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아무래도 학사 때부터 끊김 없이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경우에나 그나마 가능성이 보인달까. 필자는 입학이후 10개월만인 지난 7월 초에야 처음 영어로 페이퍼라는 것을 써 봤다. 기껏 2장 짜리 숏 페이퍼지만, 실제 장수로 따지면 A4용지로 다섯장 분량이었다. 그에 앞서 지난 겨울에는 한국어로 텍스트 분석 내용을 토대로 10장 짜리 ‘논문 느낌의’ 페이퍼를 써 본 적이 있다.

어렵다. 논문 쓰기 또한 손에 익어야 하는 글쓰기다. 논문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고, 그에 따르는 근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내가 왜 이 논문을 쓰게 됐고 여기서 소개할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이 논문이 왜 새로운지를 뒷받침할 기존 연구들은 무엇이 있는지,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실험, 인터뷰 등),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그리고 이 연구의 한계점과 앞으로 어떻게 연구를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 등으로 전개할 수 있다. 말은 쉽다.

이에 앞서, 한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강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서 어떻게 쓰면 르포 기사이고, 어떻게 쓰면 논문인 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정확히 그 차이를 지적했다기보다는, ‘르포처럼 쓰지 마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사실 기사를 쓰는 것이나 논문 연구를 하는 것이나 과정상에선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그 글의 형식이 매우 다르다. 그것을 깨우친 게 지난 숏 페이퍼 작성 과정에서였다.

숏페이퍼로 말할 것 같으면, 모 학회의 포스터(Poster) 세션용 글이었다. 평소 관심있었던 연구와 실험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시험삼아 써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제출 이틀 전까지 낑낑대며 썼고, 교수님도 한 번 봐주겠다고 들고 가선 하루가 다 지난 뒤에야 “시간이 없어 고칠 수가 없다”며 알아서 내라고 하신 그런 논문이다. 그 때 교수님의 말이 이것이었다. “너무 에세이같아요. 아카데믹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아카데믹 글쓰기, 레시피는 있다

그 말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의 한 장을 읽고 나서 아주 완벽하게 이해했다. 타 학교 박사과정 친구에게 추천받아 읽은 책인데 <Human Computer Interaction: An empirical research perspective>의 8장, Writing and Publishing a Research Paper이라는 챕터였다. 아카데믹 라이팅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더 나아가 Justin Zobel의 <Writing For Computer Science>라는 책을 통해 어떤 표현은 쓰면 안 되는지, 띄어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표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어로 저술된 영어 논문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많다. 특히 표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한 권 쟁여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을 보고 나니 제출했던 그 숏 페이퍼를 다시 거둬들이고 싶을 정도로 내 논문은 참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기사 쓰듯 빚어놓은 글이었지, 아카데믹한- 소위 말하는 정형화된 글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내가 논문 시작 순간부터 써 내려가던 Abstract는 논문을 모두 쓴 뒤에 형식에 맞게 정해진 글자 수만큼 써야 하는 것이었다. 단지 글 전체를 간추린 요약문인 게 아니라, 이 글을 보게 될 사람에게 안겨줄 첫 인상 같은 부분이던 셈이다.

논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라이팅 책만 먼저 봤다고 해서 숏페이퍼가 이백프로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려 무작정 한 번 써 본 뒤 읽고 다시 써 보는 것이 백 번 도움이 됐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 번 써 보길 추천한다.

더불어 영어 논문을 쓸 때 전문 업체의 교열을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질적인 차이가 상당히 있다곤 하나, proof reading으로 검색해 나오는 곳 중 적당해 보이는 곳 하나를 골라 이용해보길 추천한다. 내가 쓴 글이 아주 새빨갛게 토막난 채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관사, 부정관사 사용법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에 대한 지적까지 아주 깨알같다. 물론, 그들이 논문을 다시 써 주지는 않는다. 문장만 더 깔끔하게, 표현은 좀 더 공식적인 것으로 바꿔줄 뿐이다. 가끔 그들이 고쳐놓은 것이 틀린 문장일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은 연구자 본인이 지는 것이다.

협업, 그 어렵고도 간지러운 것

논문을 쓰기에 앞서 일단 연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베스트 초이스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함께 아이디어를 키워가며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 주변에는 관심사가 같은 연구원이 없었다.

학사를 마치고 바로 석사, 박사로 진학한 이들을 따라잡기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협업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은 공부를 하던 가닥이 있기 때문에, 학습 능력도 비교적 뛰어나다. 뒷모습만 봐도 공부를 하는 태가 다르달까. 하지만 사회에 물 들었던 사람들은 의자에 앉는 것 부터가 일단 고역이다. 의자에는 앉았으되, 그 다음으로 해야할 것이 바로 협업인데, 그것이 필자에겐 상당히 힘든 과제였다.

개인적으로 직업병으로 판단한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일은 내 몫, 남은 못 믿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자 생활이라는 것이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진다. 기록은 끝까지 남는다. 물론 방송 취재 기자를 하다보면 촬영기자와 오디오맨, 차량 기사님, 편집기자, CG디자이너 등이 함께 어우러져 1분 30초 짜리 기사를 만들어 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취재 내용 자체는 온전히 취재기자가 판단하고 써 내려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남에게 자료를 모아오라거나 대신 무얼 알아오라는 등의 지시는 내려본 적도 없고, 그럴 배짱도 없다.

그 성격이 대학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문제는 ‘그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연구실 분위기를 보면 너도 나도 한 주제에 달려들어 누군가는 실험을 맡고, 누군가는 분석을 맡고, 다른 한 명은 라이팅(writing)을 맡고, 한 쪽에서는 포스터를 디자인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볼까 떠올렸을 땐 이미 각자 어느 곳에서 한 몫 씩 하고 있었다.

논문은 당일 밤 8시 뉴스에 나가는 기사가 아니다. 리비전을 할 시간도 충분하고, 토의를 거칠 수 있는 여유도 어느 정도 확보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더 나은 아이디어로 나아갈 수 있다. 상대가 어리다거나, 혹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이트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오히려 “저 누나는 우리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보다”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연구실은 사회 그 어느 조직보다도 좁고 밀폐된 공간이다. 뒤에서 또 이야기 할 일이 있겠지만, ‘낮 말은 앞 사람이 듣고 밤 말은 뒷사람이 듣는’ 구조가 바로 대학원 연구실이다. 협업은 필수다. 옵션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퇴사후 석사과정 생들이 유독 혼자서 끙끙대며 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네트워킹도 물론 활발하게 하려면 할 수 있다. 열 명 남짓 연구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옆 연구실, 타과 같은 분야 연구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종종 열린다. 그뿐 아니다. 해외 학회에 나가면 유독 한국인끼리 마주치는 일이 많다. (솔직히 한국인끼리는 서로 잘 알아보지 않나.) 한국인의 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학회 때 못 가 본 게 조금 아쉬웠다. 이 자리에서 연구 동향도 파악하고, 또 같이 연구를 진행할 동료를 찾을 수도 있다고 한다. 가끔 해외 논문을 보면 여러 대학 학생들이 뭉쳐 연구를 진행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이같은 네트워킹을 거쳐 뭉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학회에서 좋은 연구로 입소문이 나면, 네트워킹을 하자고 콜 해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